[한마당] 살인의 작명

태원준 2023. 8. 21.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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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한범덕 당시 청주시장은 간부회의에서 연쇄살인범 이춘재를 언급하며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청주에서 처제 강간살인을 저질러 수감 중인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특정됐기 때문이다.

마침 전 남편 토막살인범 고유정의 거주지가 청주여서 연관검색어로 오르내리던 차에 이춘재 사건까지 터지자 비상이 걸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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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논설위원


2019년 9월 한범덕 당시 청주시장은 간부회의에서 연쇄살인범 이춘재를 언급하며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청주에서 처제 강간살인을 저질러 수감 중인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특정됐기 때문이다. 마침 전 남편 토막살인범 고유정의 거주지가 청주여서 연관검색어로 오르내리던 차에 이춘재 사건까지 터지자 비상이 걸린 거였다. ‘범죄도시’로 낙인찍히겠다는 위기감에 청주시는 이춘재와 고유정이 청주 출신도 아니고, 연쇄살인과 토막살인이 청주에서 벌어진 일도 아님을 알리는 홍보전에 나서야 했다.

남편을 계곡물에 익사케 한 이은해의 ‘계곡살인’은 당초 ‘가평계곡 살인사건’으로 불렸다. 그러자 가평 여러 계곡의 관광업소마다 “거기가 그 계곡이냐”는 예약자들의 전화가 잇따랐고, 화들짝 놀란 가평군이 검찰에 “사건 명칭에서 ‘가평’을 빼 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2012년 수원 20대 여성 납치살해와 2016년 안산 토막살해 사건도 범인 검거 후 두 도시의 요청에 ‘오원춘 사건’ ‘조성호 사건’이 됐다. 지난해 부산 서면의 귀갓길 여성 강간·살인미수 사건을 일컫던 ‘부산 돌려차기’, 2016년 부천에서 끔찍한 자녀 살해 사건이 잇따르자 등장했던 ‘부천 아동학대’란 말 역시 각 도시 관계자들을 전전긍긍케 했다.

살인사건에 지명을 붙여 부르는 관행은 변사체 발견지 관할 경찰서가 사건을 맡는 경찰 내부 규정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런 작명의 대표적 피해자는 역시 화성 사람들이다. 30년 넘게 범죄도시 낙인에 시달렸고, 그 학습효과로 도시마다 살인사건 작명에 예민해졌다. 원주시는 내달 개봉하는 영화 ‘치악산’ 제작사에 “치악산과 무관한 창작물임을 표기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로 했다. 가상의 ‘치악산 18토막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발등의 불은 서울 관악구에 떨어졌다. ‘신림역 흉기난동’에 ‘신림동 강간살인’이 겹쳐 낙인 우려가 한층 커졌다. “차라리 ‘관악산 강간살인’이라 불러 달라”는 관악구의 요청이 눈물겹다. 어서 범인 신원을 공개해 명칭을 바꿔야겠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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