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법관 ‘SNS 정치글’ 논란, 대책 마련해야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법관의 SNS 정치글 논란이 또 불거졌다. 글 자체만 논란이 됐던 과거 사례와 달리 판결의 공정성 문제로까지 번지며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서울중앙지법 박병곤(38) 판사가 지난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검찰 구형량 500만원을 훌쩍 넘는 징역 6개월을 선고하면서 촉발됐다. 통상 서면심사로 진행되는 약식기소 사건을 법원이 정식 재판에 회부하면 사안을 중대하게 보는 것으로 해석되며, 더 높은 형량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 정 의원에게 실형이 선고됐을 때 이례적이란 생각은 들었지만 법원이 죄질을 따져 결정한 것으로 봤다. 정 의원 선고 형량은 대법원 양형기준에도 벗어나지 않는다.
판결 후 일부 언론은 박 판사의 고교 시절 작성 글 등을 보도하며 정치 편향 의혹을 제기했다. 박 판사는 2003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을 비판하는 온라인 글을 올렸다고 한다. 여권 공세가 이어지자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3일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이런 식의 문제 제기는 사법권 독립, 재판 절차에 대한 국민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하지만 법원이 입장을 밝힌 다음 날 박 판사가 현직 시절에도 정치적 색채를 띤 글들을 SNS에 게시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드러났다. 박 판사는 지난해 3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한 후 페이스북에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적었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후에도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대사가 담긴 드라마 캡처 화면을 올렸다고 한다.
법관도 사람이고 누구나 개인적인 정치적 신념을 가질 수 있다. 이번 사안에서 정 의원에게 선고된 형량이 적절했는지, 판사 개인이 어떤 정치적 성향인지는 사안의 본질이 아니라고 본다. 형량이 과했는지, 유무죄 판단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상급심에서 다뤄질 것이고 판결에 승복하면 된다.
문제는 재판이 불공정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외관을 박 판사의 SNS 글이 만들었다는 데 있다.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은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 ‘법관은 직무 수행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규정한다. 법관이 특정 정치 집단을 편드는 것으로 해석되는 글을 공공연하게 SNS에 올려왔다면, 누가 그 재판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기자가 지금까지 만나 본 판사들은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 SNS는 물론이고 사석에서의 언급도 극히 꺼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정치적 대립이 극심해진 요즘에는 정치적 주제가 거론되는 동창 모임마저 꺼리게 됐다는 판사들도 많다. 무심코 나올 수 있는 언행이 사법부와 재판 신뢰에 티끌만큼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판사를 ‘고독한 직업’이라 부르고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묵묵히 재판 업무에 매진하는 판사들이 대다수다.
신뢰를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특정 판사들에 대해 ‘좌표 찍기’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도 문제지만 법원은 반복되는 ‘SNS 정치글’ 논란이 사법 신뢰를 훼손한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관들의 정치 이슈 관련 SNS 글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윤리교육 강화 방안도 마련했으면 한다. 법관의 SNS 정치글 관련 제재는 2011년 ‘가카새끼 짬뽕’ 등 이명박 전 대통령 비하 게시물을 올렸던 이정렬 전 부장판사가 ‘경고’를 받은 게 사실상 유일하다. 이 같은 사건을 매번 유야무야 넘어가기보다는 정치색을 드러내 사법부 신뢰를 훼손할 경우 엄중 제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법관들도 SNS 글의 무게감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법관 한 명이 적은 SNS 글이 마치 법원의 일반적 의견인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유의해야 한다.
나성원 사회부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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