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덕의 AI Thinking] 인간 속마음까지 꿰뚫는 진짜 ‘2AI’ 등장, 언제 가능할까
감성은 없어 ‘데카르트의 오류’에 빠져
윤리적 표준 가진 인간을 롤모델 삼는
알고리즘 짜면 부작용 우려 사라질 것
인간은 간혹 감정이 격해지면 이성의 스위치가 꺼지곤 한다. 우신예찬으로 잘 알려진 르네상스기 사상가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감성은 이성보다 압도적으로(대략 24대 1 정도로) 강력하며, 분노와 욕망이 연합하면 ‘지성의 신(神)’에 대항할 강력한 폭군이 된다고 묘사했다. 그는 지성이 감정과 욕망에 대해 얼마나 우월한 통제력을 갖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이 크게 좌우된다고 봤다. 우리 인간은 주체할 수 없는 격정이 두려워서 냉철한 ‘인지기계’(즉 인공지능)를 만든 것일까? 감정을 제거하면 인간의 의사결정은 더 합리적이고 완벽해질까?
‘데카르트의 오류’를 쓴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미국 버몬트에서 있었던 청년 피니어스 게이지의 두뇌 손상 사고를 관찰하면서 “감성이 선택의 행선지를 표시한다”는 ‘신체 표지 가설(Somatic Marker)’을 내놓는다. 25세 청년 게이지는 유능한 리더였다.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우아한 행동으로 동료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어느 날 그는 터널공사 감독 중 쇠파이프에 의해 두개골이 관통되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생존했으나 감정 기능에 심한 손상을 당했고, 우아한 행동과 품격은 사라지고 거친 언사와 행동만 남아 주변을 놀라게 했다. 감정 기능이 손상되면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마지오는 신체적 감성이 없으면 결코 이성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감성에서 분리된 이성을 ‘데카르트의 오류’라고 명명했다. 오늘날 인공지능(AI)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AI는 인지적 존재(“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와 감성적 존재(“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이에 어디쯤 있을까. AI는 인간에게 최상의 연산 능력과 스피드를 보강해주고, 데이터와 연산에 기반한 인지 능력 증강에 열중한다. 하지만 감정과 격정이 완벽히 배제되고 분리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는 ‘순수 이성’을 가진 성직자와 ‘순수 감성’을 가진 예술가를 대별시키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대개 두 요소가 공존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성직자도 있고, 신앙심이 깊은 예술가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결국 AI도 감성과 완벽하게 분리된 세상을 꿈꾸기보다는 감정과 이성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인간 세상을 전제로 모델을 세우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현재까지 AI는 인지 능력 강화에 치중하고 있지만 감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AI의 선구자 마빈 민스키는 AI를 ‘생각하는 기계’로 정의하면서도 “기계가 아무런 감정이 없이 지능을 가질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감성 기계’(emotion machine)로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같은 맥락에서 AI의 3대 천왕으로 불리는 미 뉴욕대 얀 르쿤 교수는 “감정은 지능의 일부”이며 “감정 없이 지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후 미 MIT 미디어랩 로잘린드 피카드 교수는 ‘감성 AI(Affective AI)’ 기술로 감정을 프로그래밍하는 방법론들을 개발해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스타트업들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이집트 출신의 제자 라나와 함께 보스턴에 설립한 감성 AI 주식회사 어펙티바(Affectiva)다. 어펙티바는 운전자 상태와 탑승자 경험을 모니터링해 도로 안전과 탑승자 경험을 개선하고자 했다. AI로 수면이 부족한 운전자를 위해 차가 중앙차선을 유지하도록 하거나 주의가 산만해진 운전자의 속도를 조절케 해준다.
인간의 감정에는 사랑, 놀라움,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등 수백 가지의 스펙트럼과 잠재적 신호가 있다. 일부는 단어를 통해, 일부는 제스처를 통해, 또 일부는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마찬가지로 MIT 미디어랩에서 생겨난 코기토라는 회사는 목소리를 AI 기술에 녹여서 감정을 분석한다. 코기토는 콜센터 상담원이 고객 상담을 할 때 음성분석을 통해 전화 톤을 조절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감성 AI는 정서적으로 경직돼 있어 의사소통이 어려운 자폐증 환자에게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제공해 표정이나 미묘한 신체 언어를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밖에도 바이오에센스는 웨어러블을 사용해 스트레스나 통증을 감지하고 대응하도록 향기를 방출해주기도 한다. 이같이 감성 AI는 의료, 교육, 안전, 돌봄, 소통, 동기 부여 및 감정 조절, 그리고 우울증 진단 등에 적용된다. 이런 맥락에서 디지털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획득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챗GPT가 언어에 대한 감성과 맥락 지능을 고려하듯이, 앞으로 AI는 인지 능력 극대화만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포용해야 할 고민을 안고 있다. 감성 AI 그 자체가 윤리적 표준을 가진 인간을 롤모델로 알고리즘을 짤 수 있다면 강(强) AI에 대한 두려움이나 AI윤리에 대한 우려도 사라질 것이다. 미 스탠퍼드대 에릭 브리뇰프슨 교수는 AI 기술이 인간의 분석적 두뇌뿐만 아니라 사회적 두뇌를 연결해야 할 것으로 봤다. 이런 열망을 담아 존 헤븐스는 ‘심장이 뛰는 감성 인공지능(Heartficial Intelligence)’을 출판하기도 했다.
여기서 상상력을 하나 더 추가해보자. ‘감성 AI’ 모델은 속마음을 읽는 알고리즘도 개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의 진짜 속마음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MRI도 마음을 꿰뚫어 보지는 못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표정을 잘 관리하면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겉으로는 웃으면서 예리한 칼이나 총을 지니고 다니기도 한다. 마음을 철저히 숨기고 분노를 삼키면서도 미소를 짓는 후흑학(厚黑學)의 달인이 신사로 인식되기도 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감성 AI(Affective AI)’에는 A가 두 개 있다. 그래서 ‘2AI’로 부르고자 한다. 흉흉한 시절에 진짜 2AI를 상상해본다. 말이나 표정뿐만 아니라 진짜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고 읽어내는 ‘제2의 카메라, 2AI’는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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