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한국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 130년
한국 사회 현실 그대로 드러내
역대 국제 엑스포 무대를 보면
치밀한 국가 브랜드 전략으로
기획한 일본 전시관 돋보여
1893년 세계박람회에 등장한
한국은 당시 존재감 없었지만
지금 문화적 소프트파워 커져
새만금 잼버리 사건 계기로
'준비돼 있어라'는 스카우트
모토를 우리 모두 다시 새겨야
새만금 스카우트잼버리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투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전 정부와 현 정부 사이에 늘 부재했던 인수인계, 지방자치정부의 시대착오적 업무수행 능력과 예산 낭비, 인사 실패로 인한 장관들의 행정능력 부족,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브랜드 이미지에 민감한 한국인들의 시민의식과 한류 소비 주체인 세계 청소년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등 현재 한국 사회의 불균등한 현실이 드러난 여름이었다.
한국이 국제 엑스포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93년 미국 시카고 세계박람회였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400번째 해를 기념해 콜럼비안 엑스포로 더 잘 알려진 행사다. 참여 국가는 비록 열아홉에 지나지 않았지만 6개월간 2700만명이 다녀간 19세기 최대 규모 국제행사였다. 1791년 체코 프라하에서 처음 시작된 엑스포가 본격적으로 동서양의 기술, 문화가 조우하는 국제행사로 자리잡은 것은 1851년 영국 런던 세계박람회부터였다. 엑스포는 제국 열강들이 막강한 기술 문화적 역량을 선보임으로써 자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만든 근대적 전시행사다. 콜럼비안 엑스포는 시카고 도심 잭슨공원 일대에 거대한 테마파크를 조성해 뉴욕 다음가는 미국 제2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야심찬 기획으로 오늘날 시카고가 건축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콜럼비안 엑스포에서 최고의 인기를 끈 국가는 일본이었다. 목수 24명과 미리 재단된 목재를 시카고로 보낸 일본은 여러 달에 걸쳐 교토 우지의 사찰 평등원의 봉황당을 본뜬 대규모 목조건물 세 채를 완성했고 63만 달러 경비는 전액 일본이 부담했다. 일본이 미국과 대등한 수준의 문화국임을 선포하고 우방국에 기념비적 선물을 남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호숫가에 지어진 새의 날개를 형상화한 봉황전은 시카고박람회 최고 명물이 됐다. 세 채의 건물 내부는 도쿄예술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일본 역사 흐름을 재현한 인테리어로 꾸몄고 별도 찻집에서는 일본식 다도를 선보이며 방문객들에게 차를 대접했다. 철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관람차와 광활한 박람회장을 누비느라 피로에 지친 관람객들에게 일본 전시관은 색다른 휴식을 주는 공간으로 기억됐다.
훗날 어떤 학자들은 일본의 이런 전략이 동양의 신비를 강조하는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했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일본은 이미 1850년대 런던, 파리 엑스포 때부터 효과적인 국가 브랜드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런던 엑스포에는 미니어처 일본 마을을 만들어 일본인들의 생활과 다도를 재현하고, 파리 엑스포에는 전통무희 수십 명을 파견해 무용을 선보이는 식이어서 시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일본 박람회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은 1850년대부터 엑스포 전시공간이 건축 역량과 문화적 정체성을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끈 군함 앞에 강제적으로 교역을 시작한 일본이지만 1980년대 ‘워크맨’으로 상징되는 소니시대까지 일본의 브랜딩 전략은 치밀하게 준비되고 기획된 결과물이었다. 오늘날 유럽과 북미 명문대학의 동아시아학과에는 수많은 지일파 학자들과 일본학 전공자들이 포진해 있다. 한류는 관심을 끌고 있지만 한국학은 여전히 부침을 겪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 조선의 황제 고종은 조총을 보냈다. 당시 열강들에 휘둘리고 있던 한반도의 불안한 현실 속에 강한 군사력을 열망했던 황제의 심정이 담긴 애잔한 상징물이었다. 자국의 최신 문물이라는 취지에는 부합했으나 대규모 전시관들 속에서 조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미국인들의 이목을 끈 것은 조선사절단의 특이한 복색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당도해 시카고로 이동할 때까지 미국인과 신문기자들이 주목한 것은 조선 관료들이 쓰고 있던 특이한 모양의 갓, 실크도포, 두루마기의 풍성한 소매자락이었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몰랐고 우리 문화에 자긍심을 가질 수 없었던 슬픈 조선의 현실이었다.
그로부터 130년이 지난 올해, 한국의 문화적 소프트파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저변이 확장되고 있다. 스카우트잼버리 참가자인 10대 청소년들은 미래 자국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인재들이고 그들의 올여름 한국 경험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준비돼 있어라(Be prepared)”는 스카우트 모토를 우리 모두 다시 새길 시점이다.
우미성(연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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