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캠프 데이비드 시간
화면에 비치는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 별장은 소박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한·미·일 삼국 지도자가 내놓은 결과물은 화려했다. 향후 이행 상황과 결과에 따라 역사가 ‘캠프 데이비드 시간’으로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캠프 데이비드 ‘정신’ ‘원칙’ ‘공약’으로 명명된 9100자 분량의 문서는 제도화, 안보, 대북, 경제, 지역·글로벌 협력 등 5개 분야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복합 문서이나 몇 가지 핵심 특징을 선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삼자 또는 양자 관계 안정을 위해 제도화를 시도한다. 연 1회 한·미·일 정상회담과 다수의 장관급 회의를 정례화한다. 사실 한·미·일 협력이 직면한 최대 변수 중 하나는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재대결 가능성이 현재 유력하다. 주권주의에 기반한 고립주의를 미국 우선주의로 포장하고, 동맹을 비용 편익으로만 몰아붙이는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세계는 다시금 충격에 빠질 수 있다. 이번에 명문화한 합의에 따라 한국과 일본 정상은 트럼프를 만나 협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갖게 된다. 한·일 관계에도 적용된다. 산적한 양국 문제로 관계가 다시금 틀어져도 정상 수준의 대화 채널은 유지돼 반전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둘째, 인도·태평양 지역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기제가 마련됐다. 이번에 채택된 3자 협의에 대한 ‘공약’은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서로 신속하게 협의”하게 돼 있다. 안보와 관련된 역내 도전은 북핵, 대만, 남중국해 등이 대표적이다. 위기 시 한·미·일 정부가 구체적 대응을 협의할 길을 열었다. 아무리 부인해도 대만해협에 본격적 위기가 발생하면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이미 인도·태평양 지역을 하나의 전구(戰區)로 상정하고 유사시 전진 배치된 역내 미군 전력을 통합해 운영한다. 풀어쓰면 대만 혹은 한반도에 심각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미국은 주한미군, 주일미군 등 모든 자산을 동원해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루’를 피하려는 시도가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상황이 발생하면 이번 문서에서 합의한 것처럼 “정보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동조화하며, 대응조치를 조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안보에 결정적 위해가 가해진다고 판단한다면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입장을 표명하고 조율하면 된다. 무조건 대만해협 사태에 한국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일방적 주장보다는 실제 상황을 상정하고 협의해 조율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경제 분야에서 유의미한 합의가 보인다. 최첨단 먹거리인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기술,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등에서 한·미·일 ‘기술표준’을 마련키로 했다. 작년 11월 합의로 신설된 ‘한·미·일 경제안보대화’라는 기제를 활용할 것도 확인했다. 첨단산업의 기술표준을 선점하면 자연히 그 분야를 선도하게 된다. 한국이 포기할 수 없는 기회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숙제도 남아 있다. 작년 11월 선언과는 달리 ‘중화인민공화국’이 직접 호명되면서 남중국해 해양 영유권의 불법성을 지적했다.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대만 문제의 경우 ‘힘을 통한 현상변경 반대’는 빠졌고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넘치는 불법성을 과시하는 러시아는 차치하더라도 중국과 관계 정립을 위한 노력이 배가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한·미·일이 포괄적 합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 인권, 법치’ 등의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한·미·일이 가치가 내재한 주권 존중, 영토 보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꾸준히 추구한다면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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