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방선기 (15) 노조 뜻 전하려다 하 목사에게 노여움 사고 실직까지…

양민경 2023. 8. 2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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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서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행복했다.

일단 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배우려는 열의를 가지고 온 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랬고, 잡지를 편집하고 글을 쓰는 것도 즐거웠다.

1990년 두란노서원 직원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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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서원 직원이 노동조합 결성하자
개인적으론 반대지만 원만한 해결위해
선의로 한 행동이 배은망덕하게 비쳐져
방선기(왼쪽 세 번째) 일터개발원 이사장이 1990년 두란노서원 야유회에서 직원들과 함께한 모습.

두란노서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행복했다. 일단 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배우려는 열의를 가지고 온 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랬고, 잡지를 편집하고 글을 쓰는 것도 즐거웠다. 일도 재밌는데 안팎에서 인정도 받으니 그야말로 신이 났다. 먼저는 나를 추천한 하용조 목사가 그랬고 세미나에 참가한 여러 목사와 성도 역시 나와 내 사역을 인정하고 지지해줬다.

당시 어느 모임에 가든지 소개를 하면 내 이름을 아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나를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언짢아졌다. 인정에 취하다 보니 교만해졌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변한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나를 손보셨다. 1990년 두란노서원 직원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일이 생겼다. 이 소식을 듣고 정말 당황했다. 하용조 목사는 이에 대로(大怒)했다. 나는 세속 사회에서 회사 직원이 노조를 결성하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회나 기독교 기관에서 노조를 결성하는 건 찬성할 수 없었다. 신앙 공동체에서 일어난 갈등을 법정에 호소하는 셈이어서다. 나는 노조를 결성한 이들에게 하 목사에게 뜻을 잘 전할 테니 결정을 내려놓을 것을 종용했다.

내 생각이 와전됐던 것일까. 하 목사는 노조의 입장을 전하는 나를 이들의 대변자라 여겼다. 선의로 한 행동이 그분께 배은망덕한 행위로 비친 것이다. 이 사건을 전하러 간 그때가 두란노서원에서의 마지막이었다. 교만해진 내게 하나님이 내린 징계였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나는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 심적인 고통이 컸다. 지금껏 일이나 학업에서 승승장구해온 나로선 처음 겪는 실패였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나를 버렸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인 고통도 무시할 수 없다. 가족을 위해 새 일을 찾아야 하는데 당장 대책이 없었다. 장래가 어둡게 느껴졌다.

이전에 2~3일 정도 금식기도를 한 일이 있다. 실직한 이때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인지라 10일 금식기도를 결행했다. 내 생애 가장 긴 금식기도였다. 이때 금식기도에 관해 많은 걸 배웠다. 금식하며 기도하면 기도가 술술 잘 나올 줄 알았다. 정작 금식을 하니 힘이 빠지고 정신이 혼미해져 제대로 기도할 수 없었다. 10일간 금식기도를 마치고 돌아왔지만 문제가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 고난의 기간은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교만했던 내가 겸손하게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를 하게 됐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하나님이 다른 사역을 맡기고자 나를 두란노서원에서 내보냈다는 걸 알게 됐다. 다른 사역은 바로 일터 사역이다.

두란노서원을 나와 갈 곳 없는 내게 대학부에서 같이 활동한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자기 회사에서의 사역을 제안했다. 직원을 대상으로 설교한 적은 있었지만 거기서 사역하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의류회사에서 목사가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대안이 없어 제안을 수락하고 이랜드에 들어갔다. 새로운 사역의 문이 열린 것이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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