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천상의 궁전, 스리랑카 시기리야
‘사자의 바위산’이라는 시기리야는 자연 바위이자 요새이며 고대의 궁전이었다. 고대 스리랑카의 왕자 카샤파는 부왕을 죽이고 477년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인도로 망명한 이복동생의 복수가 두려워 천혜 요새인 이곳에 왕궁을 짓고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나름 치밀한 대비도 무용지물, 18년 후 침공한 이복동생에 패해 자결하고 말았다.
열대 정글의 평원 위에 높이 180m의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정상부는 4000여 평의 고원으로 왕궁의 기초와 조각상과 빗물을 가두는 저수조가 남아있다. 산 아래 평원에는 성곽도시를 만들어 수도로 삼았다. 도시에서 왕궁으로 오르려면 웅장한 사자문을 통과해야 한다.
현재 거대한 두 앞발만 남은 사자상에서 시기리야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낭떠러지에 설치한 좁은 계단과 동굴을 통해 천상의 궁전으로 간신히 오를 수 있다. 이 절벽의 통로는 500명의 압사라(천상의 여신)를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했다. 현재 18명만 남았으나 사실적 묘사로 매우 감각적인 미인상이다. 중간 ‘거울벽’에는 가장 오래된 싱할라어 시구가 남아있다.
산 아래 평원의 고대 유적지는 물을 주제로 한 전원도시였다. 5개의 성문을 가진 도시 성벽에는 이중으로 해자를 둘렀다. 크고 작은 방형의 연못을 대칭적으로 배열해 도시의 중심축으로 삼았고, 비정형적 연못을 삽입하여 자연스러운 경관도 만들었다. 사자문으로 오르는 진입로에 자연 암석을 이용한 바위 정원도 가꾸었다. 첫 천년의 세계 도시유적으로 가장 창의적인 사례라 꼽는다.
스리랑카의 연대기 『쿨라밤사』는 카샤파를 가장 어리석은 패륜아로 기록했지만 전혀 다른 기록도 전한다. 시기리야는 부왕 대에 건립한 별궁이었고, 왕위 승계도 정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희대의 난봉왕으로 이곳을 쾌락의 궁궐로 바꾸었고 끝내 내연녀의 독살로 멸망했다고 전한다. 어떤 권력도 민심을 외면하면 천상의 왕국이라도 망한다는 희망은 변하지 않는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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