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성적 아팠지만 그 땀은 헛되지 않을 것”

박구인 2023. 8. 2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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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 지소연이 말하는 월드컵과 여자축구
지소연이 지난 3일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팬들을 향해 손인사를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개인 통산 세 번째 여자월드컵 출전을 마친 한국 여자축구의 레전드 지소연(32·수원FC 위민)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제는 국가대표팀뿐 아니라 본업인 소속팀의 리그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다. 이달 초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월드컵 얘기에 그는 진한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항저우아시안게임, 파리올림픽 아시아 예선 등이 다가온다. 선수 모두가 낙심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지소연은 자신이 몸담은 한국 여자축구에 변함없는 애정을 보였다. 그리고 여자축구 전체의 발전을 갈망하고 있었다.

지난 15일 경북 문경시민운동장에서 소속팀 전지훈련을 소화 중인 지소연을 만났다.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을 마친 그는 지난 5일 귀국했다. 지소연은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하고 바로 구단 일정에 합류했다. 늘 그랬던 것 같다”며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짧은 시간 내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2010년 일본 고베 아이낙에 입단한 지소연은 2014년 잉글랜드 첼시로 옮겨 8년간 활약했다. 해외 무대를 누비던 그는 지난해 5월 수원FC에 전격 합류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흥행에 힘을 보태고 국내에서 차근차근 월드컵을 준비하며 성적을 노린다는 판단에서였다. 세 번째 월드컵을 향한 열망은 그만큼 컸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많았을 터다.

지소연은 “최선을 다했지만 경기가 안 풀리는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우리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라며 “3경기가 너무 금방 지나갔다. 지난 4년간 월드컵을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기대 이하 성적으로 마치니 사실 허무하고 굉장히 무기력했다”고 털어놨다. 다만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흘린 땀들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성적을 떠나 어린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긍정적 요인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 월드컵에 대해 지소연은 “지난 두 차례 대회보다 더 아팠다”고 표현했다. “이른바 ‘황금세대’가 마지막이었고 진짜 마지막 대회였던 선수들도 있었다. 다음 세대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어린 선수들이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좋은 걸 많이 남겨주고 싶었다.”

지소연은 조소현과 함께 한국 선수 A매치 최다 출전 기록(148경기)을 쓰고 있다. 오랜 기간 대표팀 에이스로 뛰다보니 어느덧 고참 선수가 됐다. 책임감도 막중해졌다. 그는 “어렸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축구만 생각했다”며 “막상 언니가 되어보니 후배들을 이끌어가는 것뿐 아니라 팀에 신경쓰게 되는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사력을 다한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국은 2패 후 우승후보 독일과 1대 1로 비겨 유종의 미를 거뒀다. 지소연은 “패배가 쌓이니 심적 부담이 컸지만 독일전을 포기하진 않았다. 5골차 승리를 해야 했지만 1골 넣으면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며 “마지막인데 후회없이 다 보여주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누구도 독일이 우리와 비겨 탈락할 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차례 월드컵을 경험하는 동안 세계 무대는 많이 달라졌다. 지소연은 “콜롬비아는 8강까지 간 이변의 팀이 됐고,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모로코도 많은 투자가 이뤄져 전력이 급상승했다. 우승후보였던 미국과 독일은 중도 탈락했다”며 “상향평준화된 팀들이 많아져서 방심하면 순간 격차가 벌어진다.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여자축구를 보면 4년마다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모로코와의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상대 수비를 따돌리고 드리블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면서 한국 여자축구가 월드컵 결과를 떠나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자축구=지소연’이 아니라 뒤를 이을 후배 선수들이 빨리 나와야 한다. 천천히 하나하나씩 많은 것들이 변화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월드컵 후 불거진 ‘세대교체론’에 대해선 “기량을 갖춘 젊은 선수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다. 저변이 약한 상황에서 억지로 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의견을 말했다. 이어 “다음 세대 친구들이 잘해주길 바란다. 환경이 바뀌고 저변이 확대되면 우리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고 당부했다.

요즘 국내 스포츠계에선 여자축구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목에서 여자선수 풀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 얘기가 나오자 지소연은 되레 기자에게 “만약 딸이 있다면 축구나 배구, 골프 중에 어떤 운동을 시킬 건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골프를 시킬 것 같다”고 답했다.

지소연은 “안타깝지만 다들 그런 식으로 연봉 등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 같다. 요즘 자녀도 1명씩만 낳는 추세고, 운동시키는 것조차 고민하는 시대”라며 “그나마 축구는 프로리그라도 있어 나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국내 여자축구 선수가 1500명도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런 인프라로 월드컵에 나간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대단한 것”이라며 “이 정도 저변으로는 한계가 있다. 유럽·아프리카 팀들은 굉장히 발전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월드컵 기간 지소연의 ‘라스트 댄스’가 시작됐다는 말이 많았다. 지소연은 “사실 저는 마지막을 언급한 적 없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다음을 생각해보진 않았다. 4년 뒤면 서른여섯 살이 되는데 몸 관리를 잘하면 벤치에는 앉을 수 있진 않을까”라면서도 “이제 무조건 월드컵에 뛰겠단 욕심은 없다. 후배들이 올라오면 당연히 물러나야 하고 다음 세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드컵으로 휴식기를 가졌던 국내 여자프로축구 WK리그는 오는 22일부터 재개된다. 팀당 18경기씩 치른 현재 수원FC는 2위(승점 33점)에 올라 있다. 정규 21라운드까지 3경기가 남아 있고, 화천 KSPO가 1위(37점)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까지 통합 10연패를 달성한 인천 현대제철에 두 팀이 도전장을 내민 모양새다.

지소연은 “월드컵 기간 소속팀을 많이 비웠지만 동료들과 함께 한 시간이 길어서 문제는 없다”며 “현재까지 팀 성적은 나쁘지 않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리그를 치르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무엇보다 자력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인천의 우승을 저지하는 게 목표다. 인천의 기나긴 독주 체제를 깨야 WK리그가 발전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지소연은 “인천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많고 우승 경험도 많다. 플레이오프나 챔피언결정전에 간다면 만날 것 같다”며 “그래도 올해는 다른 팀이 우승하면 좋겠다. 수원FC의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내 최초로 남자팀과 여자팀을 모두 운영 중인 수원FC와 같은 팀이 많아지길 바란다고도 했다. 전 소속팀도 남녀팀을 모두 운영하는 첼시였다. 지소연은 “남자팀과 여자팀이 함께 움직이면 서로 도움받는 부분이 많다. 서로의 경기를 응원하고, 팬들은 더 많은 선수들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며 “여자축구 홍보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소연은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을 찾고 있었다. 그는 “월드컵 끝나고 보니 서른두 살이 됐더라.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 하면서 후배 육성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마 은퇴하고도 축구계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진 축구만 했다면 미래의 삶을 위한 생각이나 공부도 조금씩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문경=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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