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중독 예방교육'과 '주식투자 교육'을 동시에? 부끄러운 세태
[서부원 기자]
▲ 최근 고등학교에서는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
ⓒ flickr |
최근 학교마다 부쩍 늘어난 교육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전문가가 직접 학교를 찾아와 대면 교육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영상 자료를 반복 시청하도록 해 아이들의 경각심을 유도한다. 담임교사의 훈화와 상담도 이어지고,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와도 소통한다.
청소년 대상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이 그것이다. 정부의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도박 중독 문제가 이미 간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지금 도박에 빠져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아이는 없지만, 웬만한 인터넷 도박 사이트는 대부분 알고 있다.
교실에서 버젓이 어느 사이트가 가입하기 쉽고, 확률이 높은지 정보를 교환하는 아이들도 있다. 누가 얼마를 베팅해 벌었는지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고, 별 관심이 없던 아이들까지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한다. 대화가 무르익어가다 보면, '베팅 고수'는 일약 '인싸'로 등극한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는 도박
도박이 학교폭력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른이고 아이고 돈을 빌리고 갚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는 건 피할 길이 없다. 학칙상 액수와 상관없이 학교 내 금전 거래는 모두 불법이어서 아이들이 쉬쉬하는 통에 사달이 벌어지고 나서 알려지는 게 다반사다.
도박과 관련된 학교폭력 사안은 100% 학부모들끼리의 다툼으로 전이된다. 특히 거래 금액이 큰 경우, 왕왕 양측에서 변호사까지 동원해 법적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학교가 어찌 손써볼 수 없는 상황인데도, 예방 교육 실시 여부를 따져 교사의 책임을 묻는 건 불문율이다.
그나마 학교폭력으로 비화하면 사안에 따라 엄한 처벌을 받게 되지만, 혼자 도박하다 발각되는 경우엔 학부모가 알게 되는 게 가장 큰 벌이다. 생활지도위원회를 열어 선도하지만, 교내외 봉사활동과 예방 교육 이수 등이 사실상 학교가 내릴 수 있는 처분의 전부다.
예방 교육의 효과는 거의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아이들 수백 명을 한데 모아놓고 진행하는 강의는 그저 '교육을 위한 교육'일 뿐이다. 경청하는 아이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대부분은 채 10분도 못 견디고 엎드려 잔다. 하물며 비대면 영상 교육은 차라리 '자습 시간'이다.
그런데도 전국의 모든 학교가 일사불란하게 실시한다. 주상 같은 정부의 지침을 일선 학교가 거스를 순 없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사달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면책 수단이기 때문이다. 결재 서류를 꼼꼼히 챙기고 행사 사진을 남기는 건 그래서다.
이렇듯 학교에 '주어진 일'은 다하고 있지만, 나날이 도박에 빠져드는 아이들은 늘어만 간다. 민망한 고백이지만, 적어도 도박 중독에 관한 한 면피를 위한 대비 외엔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부디 학교를 시끄럽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 주식 투자 교육은 문제가 없을까? |
ⓒ pixabay |
공교롭게도, 최근 주식 투자 등 금융 교육을 교육과정의 필수 교과로 지정하자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기존의 시답잖은 경제 교육을 지양하고, 현실 생활에 보탬이 되는 내용으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학부모들은 물론, 일부 교사들까지도 가세하는 모양새다.
그러잖아도 웬만한 학교마다 주식 투자 관련 동아리가 꾸려져 있고, 특히 상경 계열로 진학하려는 아이들에겐 필수 과정처럼 여겨진다. 근래엔 비트코인 등 암호 화폐에 관한 관심도 크게 늘어 따로 모여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어렵다는 금융 관련 용어도 척척 설명해낸다.
언제부턴가 주식 투자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보편화됐다. 어느 기업의 주식이 오르고 내렸는지는 요즘 교사들끼리의 흔한 대화 주제다. 원칙적으로 교사는 겸직이 금지되어 있지만, 근무 시간만 아니라면 주식 투자를 법적으로 문제 삼긴 어렵다. 국내외 주식 시장에 대한 전망은 어느덧 학교에서조차 필수교양이 됐다.
듣자니까, 평소 월급보다 주식 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이 더 많은 교사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교사가 부업'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더는 어색하지 않은 현실이다. 그들 중에는 국내외 경기의 변동을 정확히 꿰뚫고 투자처를 해외로까지 넓혀가는 전문 투자자도 적지 않다.
내친김에 부동산 거래와 투자 등과 관련된 지식조차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말까지 심심찮게 들린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에 뭐든 알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거다. 학교에서 금융과 부동산을 한데 묶어 배우도록 하면 효과적일 거라며 구체적인 방안까지 내놓고 있다.
학교의 한쪽에서는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식과 부동산 투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친다. 아무리 도박은 불법이고 주식과 부동산 투자는 합법이라지만, '돈 놀음'이라는 점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거칠게 말해서, 둘은 '깻잎 한 장' 차이다.
교육이 이율배반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어떻게 하면 큰돈을 쉽게 벌 수 있는지를 가르치면서, 도박은 안 된다고 하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학칙을 끌어와 엄포를 놓고 중독의 위험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돈벌이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현실에선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부모는 '인생 대박'을 꿈꾸며 매주 로또를 사서 긁고, 교사는 퇴근하자마자 주식과 부동산 시세 분석에 여념이 없다. 이젠 열 살도 안 된 초등학생조차 세상 사는 데 돈이 최고라고 선선히 말한다. 이렇듯 각박한 세태에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아이들이 도박판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기성세대가 로또를 사고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한몫 챙기려는 심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가난한 이들이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사회가 온통 돈벌이에 혈안이 된 현실에서 '욕망에 충실한' 아이들을 나무랄 순 없다. '바닷게의 우화'를 떠올릴 때다.
형식적인 예방 교육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던진 한 아이의 말이 죽비처럼 매섭다. 기성세대가 그의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아이들의 도박 중독을 멈춰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뜻이어서 교사로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으로 불거진 윤석열 대통령 처가 식구들의 부동산 거래 실태가 온 국민에게 알려졌잖아요. 저는 노선 변경의 배후나 불법 여부보다 대통령의 친인척조차 부동산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도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점이 훨씬 더 충격적이에요. 그래놓고선 국민에겐 열심히 땀 흘려 일하라고 한다면, 과연 말이 먹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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