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새로운 돈줄 죈다…제일 아픈 곳 찌르는 한·미·일 카드

정영교, 박현주, 이세영 2023. 8. 2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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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3국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연 공동성명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 합의한 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푸른 오솔길을 걸어오는 한·미·일 정상의 웃는 모습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에 비하면 약 한 달 전 이른바 전승절(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온갖 불법 무기들을 늘어놓은 열병식 주석단에 나란히 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리훙중(李鸿忠) 중국 공산당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의 '쓰리 샷'은 허상에 가까웠다. 지금의 필요에 따라 한자리에 모여 웃고 있지만, 북한은 자금줄 마련을 위해서라면 우방인 중·러조차 가리지 않고 온갖 해킹에 나서고 있다는 걸 셋 모두 모를 리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위해 오솔길을 함께 걷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25전쟁 정전협정 기념일(북한은 전승절이라 주장) 70주년인 지난달 27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 등과 함께 주석단에서 열병부대를 사열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리고 한·미·일 정상은 그런 김정은의 제일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 3국이 함께 '사이버 범죄 차단' 카드를 꺼내 대북 압박 악화에 방점을 찍었다.


사이버 '돈줄 죄기' 나선 한·미·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서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자금원으로 사용되는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는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돈줄로 떠오른 암호 화폐 해킹을 비롯한 사이버 범죄를 겨냥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따라 3국은 북한의 불법적인 사이버 활동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일 사이버 협력 실무그룹'(Trilateral Working Group)도 신설한다. 한·미·일 국가안보실(NSC)이 주도하며, 다음 달 회의를 열 방침이다. 북한의 사이버 자금줄을 콕 짚어 봉쇄하기 위한 위한 3국 간 최고위급 플랫폼이 탄생하는 셈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 간에는 이미 NSC 차원의 '사이버안보 고위운영그룹'(SSG)과 외교부와 국무부 간 '북한 사이버 위협 대응 실무그룹' 등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모두 범정부적 협의체로 전자의 경우 백악관 사이버국 뿐 아니라 국무부, 국방부, 법무부, 국가안전보장국(NSA),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측 주요 정보당국 고위급 인사들도 다수 참여했다.


중·러 딴지에 '정예군'만 모여 압박


이번에 신설되는 한·미·일 사이버 협력 실무그룹은 이처럼 기존에 존재하던 한·미 간 협의체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보다 큰 틀에서 사이버 정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 그간 북한 사이버 위협 관련 논의는 한·미 양자 협의 위주로 이뤄졌는데, 여기에 일본까지 힘을 실으며 보다 촘촘하게 김정은 정권의 돈줄을 죄는 게 가능해진 셈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특히 북한의 사이버 범죄는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존 제재 망으로는 옭아매지 못하지만, 그 자체로 범죄를 구성하기 때문에 각국의 사법 체계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현재 안보리 추가 제재는 중·러가 번번이 막아서고 있지만, 사이버 범죄는 새로운 제재가 없어도 단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의에선 중·러의 방해에 맞서 한·미·일이 '정예군'으로 나서 북한의 불법 행위를 직접 단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한·미·일이 김정은 정권을 실질적으로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는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한·미 차원의 대북 사이버 범죄 대응에 일본까지 가세하면서 북한이 느끼는 압박감은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17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개최한 북한인권 공개토의에서 탈북민 김일혁씨가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北인권 압박 공조도


공동성명은 북한 인권 문제도 비중 있게 다뤘다. 3국 정상은 "우리는 북한 내 인권 증진을 위해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또 "납북자, 억류자 및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한다"라고도 밝혔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일관되게 유지해온 기조가 반영된 대목이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김정은 정권의 인권유린 사례를 담은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했고,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립 10주년과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을 맞아 내달 15일 서울에서 북한인권 국제세미나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또 공동성명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고도 밝혔는데, 해당 문구는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한 데 이어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도 처음으로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뉴스1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지지를 확고히 받아냈다는 점에서 외교적 성과로 볼 수 있다"며 "한·미·일이 한반도의 통일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는 차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20일 오후까지 한·미·일 정상회의와 관련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관망하는 분위기다. 회담 결과를 분석하는 동시에 중국·러시아와 의견을 나누며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만큼 이번 공동성명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한은 한·미·일 정상회의 직전인 지난 18일 밤에도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의 전략정찰기가 동해 상의 경제수역 상공을 침범했다며 "물리적 대응"을 거론하며 위협을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오는 21일부터 시작하는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 등을 명분으로 삼아 무력 도발을 감행하면서 대미·대남 강경노선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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