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캠프 데이비드, 회의는 끝났어도 한국엔 새로운 시작
“(대통령 입장) 2분 전입니다(Two minutes left)!”
지난 1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 야외 뜰에 마련된 한ㆍ미ㆍ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장. 한 백악관 직원이 세 정상의 회견장 입장이 임박했음을 알리며 크게 소리쳤다. 공동 기자회견이 예정된 오후 3시에서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백악관을 출입하는 NBC 베테랑 기자 켈리 오도넬 등 현장에서 라이브로 보도하고 있던 방송 기자들이 “이제 곧 3국 정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중계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벌써 네번째 만남…자연스러운 쓰리샷
화창한 날씨에 환한 햇살, 선선한 바람까지 더해 때 이른 가을 정취마저 느껴지게 한 캠프 데이비드 야외 회견장. 짙은 푸른색 계통의 캐주얼한 정장에 노타이 차림으로 회견장 연단에 선 3국 정상은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각별한 인간적 유대감을 드러냈다. 이들끼리 따로 만난 게 벌써 네 번째니 쓰리샷(3명이 나오는 구도)이 충분히 자연스러운 듯 보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의 모두 발언 중 “우리가 함께할 때 3국은 더 강해지고 세계는 더 안전해진다”는 한마디는 한ㆍ미ㆍ일 3국 협력 공동선언에 담긴 원칙ㆍ정신이 집약된 말로 들렸다. 정상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도 이번 정상회의가 갖는 전환사적 의미를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ㆍ인권ㆍ법치라는 핵심 가치에 기반한 한ㆍ미ㆍ일의 강력한 가치 연대는 더 평화롭고 번영하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동중국해ㆍ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 등을 차례대로 거론한 뒤 “이런 상황에서 한ㆍ미ㆍ일 3개국의 전략적 협력 잠재성에 꽃을 피우는 것은 필연이자 시대의 요구”라고 했다.
미 대통령과 가족이 휴식을 취할 때 찾는 캠프 데이비드는 평소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역사적 현장을 급히 타전하는 각국 내외신 기자들과 행사 주최 측 관계자 등으로 큰 장이 선 듯했다.
“한국 입장 반영해 중국 대목 톤 다운”
3국 정상회의가 열린 로렐 로지 인근에 마련된 임시 프레스센터에서는 ‘캠프 데이비드 원칙ㆍ정신ㆍ공약’ 등 3개의 뼈대로 이뤄진 3국 공동선언의 도출 과정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한 일본 언론 기자는 “미국과 일본 측은 중국을 겨냥한 더 센 메시지를 내길 원했는데 한국 입장을 반영해 일정 부분 톤다운이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3국 간 물밑 조율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고심이 있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정상회의 전날 미 백악관 고위 관계자가 사전 백브리핑에서 “3국 공동 위협 상황이 발생할 경우 3국 간 협의할 ‘의무’를 서약할 것”이라고 했었는데, 최종 발표된 문안에서 ‘공약’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합의 문안을 정상회의 직전까지 조율하는 과정에서 신중한 입장을 원하는 한국 측 요구가 반영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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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언론 관심 집중…실시간 보도
이날 3국 정상회의 과정을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방송 등 미 주류 언론은 실시간으로 주요 상황을 라이브 보도했다. 워싱턴 DC 정가에서도 모처럼 여야 정파를 넘어선 초당적 환영 성명이 나왔다. 공화당 소속 마이클 매콜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미 하원 외교위는 “한ㆍ미ㆍ일 3자 관계 격상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과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이라며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반응들은 그만큼 미국이 이번에 동아시아 지역 내 3국 협력의 틀을 마련함으로써 자국이 구상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큰그림의 기반을 다지는 데 성과를 거뒀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 관리가 남은 과제
한ㆍ미ㆍ일 정상회의가 매년 적어도 한 차례 이상 열리게 되면서 한국은 국제사회의 주역이자 주요 당사자 위치로 격상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주어질 과제도 막중해졌다. 그중 하나가 대(對)중국 갈등 변수 관리다. 중국은 19일 대만 주변 해역ㆍ공역에서 합동훈련을 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한ㆍ미ㆍ일 3국 정상이 중국을 ‘지역 내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가로막는 세력으로 지목하고 양안(兩岸ㆍ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 지 약 6시간 만이었다.
북ㆍ중ㆍ러 밀착 구도가 심화하는 상황에 긴밀히 대비해야 하는 것도 남은 과제다. 3국 협력의 새 장을 연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이번 정상회의가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인 이유다.
캠프 데이비드=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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