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그냥 날려보내던 탄소, 이젠 잡아 땅속에" SK E&S가 호주서 쏘아 올린 넷제로
②다윈 LNG 터미널
SK E&S 10년간 1.5조 투자
민간기업이 개발부터 참여
연평균 130만t 국내 첫 도입
환경단체·원주민 설득 관건
탄소 국경 통과 합의도 과제
“그동안은 이산화탄소를 공기 중에 그냥 다 날려 보냈어요. 대기 탄소 배출량 제한도 없었어요. 그런데 2050년엔 기업들에 탄소 수치를 ‘0’으로 맞추라고 하잖아요. 앞으로는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저장할 거예요. 이렇게 해서 생산한 액화천연가스(LNG)를 저희는 ‘저탄소 LNG’라고 표현합니다.”
16일 오후 호주 북부 끝 도시 다윈 시내에서 차로 40분 달려 도착한 다윈 LNG 터미널. 거대한 철제 설비들이 수많은 파이프로 연결된 이곳에선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CCS) 설비 건설을 위한 부지 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원엽 SK E&S CCS사업개발팀 매니저는 “200만㎡(60만평) 크기의 다윈 LNG 터미널엔 유휴부지가 50%정도 있다”며 “이 공간을 CCS 설비와 바로사 가스 액화 설비로 채울 예정”이라고 했다.
광구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는 주로 메탄으로 이뤄져 있다.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는 지하층에는 석탄 같은 화석연료도 함유돼 있을 수 있다. 메탄을 고압·저온에서 액화시키는 과정에서 메탄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할 때, 이산화황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고 가스를 정제할 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지금은 동남아시아 동티모르 해상에 있는 바유운단이라는 광구에서 천연가스를 뽑아내 이곳으로 가져와 액화 처리한다. 바유운단은 가스 고갈로 올해 말 생산을 종료한다. 바유운단 가스의 이산화탄소 함유량은 6%다. 2025년부터는 이산화탄소 18%를 함유한 바로사 가스가 이곳으로 온다.
바로사 가스전은 국내 최대 LNG 민간 사업자 SK E&S가 개발 단계부터 참여한 새 천연가스 광구다. 우리나라로 도입 예정인 LNG는 연평균 130만t으로, 국내 전체 소비량의 3%다. 민간기업이 해외 가스전 개발부터 참여해 직접 가스를 뽑아 국내에 들여오는 최초 사례다. SK E&S는 10여년간 총 1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SK E&S는 이 사업에 CCS 기술을 도입한다. 바로사 가스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380㎞ 신규 파이프를 통해 다윈 LNG 터미널로 보내고, 그곳에서 LNG를 만들면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500㎞ 파이프를 통해 바유운단 폐가스전으로 운송해 지하 3㎞ 사암층에 영구히 저장한다. 이산화탄소 연 1000만t을 저장할 수 있다. 호주 오트웨이 국제 CCS 실증센터의 상용화 버전인 셈이다.
SK E&S는 바로사 가스전 지분 37.5%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호주 2위 에너지기업 산토스(50%)가 최대주주이고 나머지 12.5%를 일본 발전회사 제라(JERA)가 가져갔다. 바유운단 가스전 최대주주도 지분 43.4%를 보유한 산토스이고, 이어 SK E&S(25%), 일본 인펙스(11.4%), 이탈리아 에니(11%), 도쿄 티모르 씨 리소스(9.2%)까지 5개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 주주로 있다. SK E&S는 추가로 다윈 LNG 터미널의 액화 설비 사용권을 확보하기 위해 다윈 LNG 프로젝트 지분 25%를 4000억원에 인수했다.
리차드 힝클리 산토스 청정에너지 및 CCS 개발 총괄이사는 “이산화탄소 연 60만t을 20여년간 포집 시설로 잡아냈다”며 “말하자면 탄소 포집은 이미 검증된 기술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포집 설비를 추가로 설치해 200만t의 탄소를 잡아내 바유운단 폐가스전에 묻을 예정”이라고 했다.
다윈에서 바유운단으로 탄소를 운송할 때 쓰는 파이프는 바유운단에서 다윈으로 천연가스를 운송할 때 썼던 파이프다. 제3자 기술 전문 업체로부터 파이프를 25년 이상 추가로 사용해도 된다는 검증을 받았다. 유영찬 산토스 한국대표는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게 바로사 사업 최대 장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내외 환경단체와 원주민의 반대로 현재 바로사 가스전 시추 작업은 지난해 9월부터 멈춰있다. 공사 중단으로 인한 하루 손실액은 200억원이다. 1심과 항소심 모두 법원은 '(업체측이)협의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원주민 손을 들어줬다. 호주 연방정부의 가스전 개발 전문감독기관인 해양석유환경청(NOPSEMA)이 2018년 바로사 해상 사업 제안서(OPP)를 승인했지만 이를 뒤집은 것이다. 현재 바로사 가스전 사업자들은 원주민 설명회 등을 열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SK는 올해 말에는 공사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시추 작업, 이동식 시추선(MODU) 등 부유식 해상구조물 등으로 인한 소음공해와 시추 운용에 사용하는 인공조명으로 인한 해양생태계 교란 등을 우려한다. 산토스는 ‘2023 바로사 가스 프로젝트 시추 자료집’에서 “선박 소음원으로부터의 잠재적인 해양 동물에 대한 영향은 12km 이내로 제한되며 종 수준에서는 중대한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높고 거대한 이동식 시추선에서 나오는 빛은 52㎞ 떨어진 곳까지 퍼지지만 거북 등 해양동물 번식지역은 138~700㎞ 이상 떨어져 있다”며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사항을 준수하고 선박 온실가스 배출도 최소화할 것”이라고 했다.
환경단체에선 반대하지만 호주 정부는 지지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5월 출범한 노동당 정부는 올해 3월 온실가스 다배출 시설의 감축 의무를 대폭 강화하는 ‘세이프가드 메커니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크리스 보웬 호주 기후변화·에너지부 장관은 서면 인터뷰에서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은 에너지 전환의 일부이고, (탄소 배출을)줄이기 어려운 산업 부문에서 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이것이 호주 정부가 CCUS 관련 산업을 지원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다윈이 속해 있는 북준주도 이 사업을 넷제로(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중간 과정에서 필요한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탄소 국경 통과에 대한 합의는 풀어야 할 과제다. 호주 다윈 LNG 터미널에서 동티모르 바유운단 폐가스전으로 탄소를 보낼 때 국경을 통과한다. 이를 위해 호주와 동티모르가 국가 간 협정 후 국제해사기구(IMO)에 통지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조승현 SK E&S CCS사업개발팀 팀장은 “관련 법안이 6월 하원에서 발의됐고 이달 3일 하원에서 통과됐다”며 “다음달 중 의회가 재개되면 상원에서도 속도감 있게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SK E&S의 최종 목표는 수소 시장 선점이다. 바로사 가스전에서 생산된 저탄소 LNG는 국내로 들어와 대부분 청정수소 생산을 위한 원료로 활용된다. SK E&S는 충남 보령 LNG 터미널 인근 지역에 들어설 블루수소 플랜트에서 2026년부터 연간 25만t의 블루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역시 포집 후 전용 수송선을 통해 바유운단 가스전으로 보내 영구히 저장한다는 계획이다. 또 자체 이산화탄소 전용 수송선을 이용해 향후 용선료 변동 등 장거리 해상 운임비용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윈=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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