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능에 상처입고, 감독까지? FC서울의 복잡한 사정

이준목 2023. 8. 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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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잼버리 이후 뒤숭숭한 구단 분위기... 불명예 퇴진으로 이어지나

[이준목 기자]

프로축구 FC서울이 대혼돈에 빠졌다. 잼버리 사태의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추락하는 팀성적, 팀동료들끼리의 내분, 팬들의 비난 등 온갖 악재가 겹쳤고 심지어사령탑까지 일방적인 자진사퇴를 발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며 축구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23 하나원큐 K리그1 27라운드 대구 FC와의 홈경기가 열린 지난 8월 19일은, 서울에게는 잊기힘든 악몽같은 하루가 될 전망이다. 서울은 이날 경기에서 2-2로 비겼다. 전반에 잡은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후반 36분 대구 에드가에게 뼈아픈 동점골을 내주고 승점 1점에 만족해야했다.

훼손된 잔디, 훼손된 팬심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1만7천800명의 관중이 입장하면서 서울은 올 시즌 누적관중 30만2천65명을 기록, K리그1 12개 팀 가운데 '누적 관중 30만' 기록을 가장 먼저 돌파하는 기쁨을 누리며 인기 구단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인기와 별개로, 관중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최근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폐영식이 긴급하게 서울월드컵 경기장으로 변경되고 케이팝(K-POP) 콘서트가 열렸다. 무대설치와 다수의 관람객들로 인하여 경기장 내에 설치됐던 잔디가 훼손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정부는 예산을 투입하여 복구를 약속했지만, 행사 이후 첫 경기였던 대구전에서는 곳곳에 땅이 파인 자국과 새로 깔린 잔디가 뒤섞여 그라운드 높낮이가 불규칙한 부분들이 어쩔수없이 눈에 띄었다. 이는 자연히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줬다. 현재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다보니 이전과 같은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축구팬들은 무능한 행정과 정치의 뒷수습에 스포츠와 축구가 일방적으로 희생당한데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어야했다. 안익수 서울 감독도 대구전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잔디를 보고 싶지 않았다. 스포츠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거기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 스포츠가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어떤 메시지를 주며 한 국가를 이끌어가는 과정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았으면 한다"며 이례적으로 정부 기관에 강한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설상가상 서울의 팀분위기도 최근 좋지 않다. 서울은 이날 대구전까지 5경기 연속 무승(3무 2패)의 부진에 빠졌다. 또한 대구전에서는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두고 팀원들이 기싸움을 벌이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프리킥 찬스에서 팔로세비치와 한승규가 서로 공을 빼앗으며 갈등을 빚었다. 다행히 팔로세비치가 프리킥을 양보했고, 프리킥은 제3자인 김신진이 키커로 나서서 골망을 흔들며 전화위복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리드를 지켜지 못하면서 해피엔딩이 되지는 못했다.

또한 이날의 경기 결과와 최근의 부진에 불만을 품은 서울 팬들은, 대구전이 무승부가 끝나자마자 선수단에 불만을 표출했다. 홈팬들에게 인사를 하러온 선수들 앞에서 야유를 보내는가 하면. 단체로 '안익수 아웃' '안익수 나가'를 외치기도 했다. 벤치 근처에 있던 안 감독은 팬들의 반응에 다소 감정이 격해진 모습을 보였고 주변에서 애써 말리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최근 걸핏하면 감독 아웃 구호를 외치거나 비난 걸개, 버막(버스 가로막기) 등을 시전하는 K리그의 무례한 팬 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승리를 갈망하고 분발을 촉구하려는 팬들의 심경도 이해는 되지만, 집단의 '분풀이식' 실력행사로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모욕하고 압박하는 관행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독 사퇴의 속내 

하지만 정작 이날의 가장 하이라이트 장면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안익수 서울 감독이 대구전 종료 이후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격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안 감독은 경기후 기자회견에서 미리 준비한 사퇴문을 낭독하며 "서울이 더 발전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팬들과의 약속이자 제 마음속 다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추구했던 바를 이루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다"라며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안 감독은 사전에 구단과 사퇴에 대한 어떤 상의도 전혀 나누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사퇴 통보에 서울 프런트와 팬들, 취재진도 모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라커룸에서 안 감독의 사퇴 소식을 접한 서울 선수들도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익수 감독은 2021년 시즌중 강등 위기에 몰려있던 서울에 부임하여 구세주로 등장해 7위로 잔류를 이끌었고, 지난해에는 9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최근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4위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올시즌 K리그에서는 수원 삼성이 이병근 감독과 결별하고 김병수 감독을 영입했고, 전북은 김상식 감독이 사퇴하고 딘 페트레스쿠 감독을, 강원FC도 최용수 감독이 사퇴하고 윤정환 감독이 부임하는 등 이미 여러 차례 감독교체가 이루어진 바 있다. 프로스포츠는 성적이 좋지않거나 팀분위기 전환이 절실할 때 감독 교체가 불가피한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서울은 현재 강등권도 놓인 것도 아니고, 심지어 올해는 지난 두 시즌과 달리 파이널A 진입도 유력한 상황이었다. 파이널 라운드 진입 전까지 6경기밖에 남지않은 시점에서 굳이 감독이 물러날만한 명분도 타이밍도 맞지않았다.

팬들의 비난 때문에 안 감독의 사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해석도 무리가 있다. 물론 평소 서울 팬들의 무례한 태도나 상습적인 압박이 결코 잘한 일은 아니지만, 이는 현재 K리그에서 안익수 감독이나 서울에서만 유난히 더 가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날만해도 오히려 선수단을 격려하거나 감독을 응원하는 목소리를 낸 팬들도 적지않았다. 애초에 비판도 응원도 일상인 프로 감독이, 팬들과 트러블이 좀 있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거취를 결정한다는 것부터가 상식에 맞지않는 처신이다.

문제의 핵심은 안익수 감독이 이날 경기전부터 사퇴문까지 미리 준비해놓을만큼 이미 팀에 마음이 떠나있었다는 것이고, 정작 구단이나 선수단과는 사전에서 어떤 교감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는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지도자로서 지극히 실망스럽고 무책임한 결정이었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책임진게 아니라 도피한 것이라는 격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은 이로서 시즌의 중요한 고비를 앞두고 또다시 큰 혼란을 피할수 없게 됐다. 이로서 서울은 2018년 황선홍 감독을 시작으로 최용수-김호영(대행)-박진섭-안익수 감독까지 5년간 수많은 지도자들이 시즌중에 불명예 퇴진하며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징크스를 이어가게 됐다. K리그 최고 인기구단인 서울이 어쩌다 구단-감독-선수-팬들이 저마다 따로노는 '콩가루 집안'이 되었는지, '남탓'만 하기전에 각자 스스로부터 먼저 성찰해봐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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