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손열음∙ 연광철이 찾았다…통영 '녹음의 명당'된 까닭

김호정 2023. 8. 2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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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개관 통영국제음악당, 음반 녹음 활발
"한국에서 소리 가장 좋은 홀" 음향에 매혹
자연환경과 시설도 합격점
지난해 10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실황 음반을 녹음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리허설 장면.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유럽 아티스트들이 녹음을 많이 하는 런던의 스튜디오는 녹음만 하는 커다란 공간이다. 또는 독일의 옛날 교회 형태의 건물들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비교를 위해 유럽의 예를 들었다. “그런데 이곳은 직사각형 형태의 진짜 공연장인 데다가, 모든 시설이 신식이다. 이런 곳에서 녹음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가 말한 공연장은 경남 통영의 통영국제음악당. 손열음은 지난해 여기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18곡)을 녹음했다. 다소 즉흥적이었다. 지난해 1월 같은 곳에서 플루티스트 조성현과 음반 프로듀서 최진과 녹음을 했다. “스케줄을 체크하니 통영국제음악당과 최 감독 모두 비는 날짜들이 있었다. 이때다 싶어 나도 녹음을 하겠다고 했다.” 장소의 스케줄에 맞춰 음반을 녹음한 경우다. 그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남쪽 끝의 이 공연장에 음악가들이 모여든다. 각종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서다. 거쳐 간 이들의 명단이 화려하다. 피아니스트 백건우ㆍ김대진ㆍ손민수ㆍ선우예권, 첼리스트 양성원ㆍ김민지ㆍ이정란ㆍ박유신,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ㆍ한수진, 성악가 연광철 등이 녹음을 마쳤다.

통영국제음악당은 2014년 문을 열었다. 내년이 10주년이다. 녹음이 시작된 때는 2년 후인 2016년. 시작은 한국 연주자가 아니었다. 영국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가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사계’ 음반이 첫 번째다. 호프는 2015년 통영국제음악당 무대에서 공연한 후 음향에 반했고, 1년 후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의 제작팀과 함께 통영에 왔다.

이후 한국 연주자들이 통영을 ‘녹음의 전당’으로 장식했다.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2018~20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을 녹음했고, 백건우가 쇼팽 녹턴 전곡을 2018년, 슈만의 작품들을 2020년 녹음했다. 지난달에는 베이스 연광철이 한국 노래로만 된 첫 음반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했고 10월 발매 예정이다. 지난해 10월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통영에서 광주시립교향악단과 베토벤 ‘황제’를 공연한 실황 음반이 발매와 동시에 1만장 판매를 기록했다.

지난달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한국 가곡을 녹음하는 베이스 연광철과 피아니스트 신미정. [사진 풍월당]


음악가들이 통영으로 오는 이유는 무엇보다 음향이다. 지난달 녹음을 마친 연광철은 “자연적으로 울리는 음향이 한국에서 가장 좋은 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리가 좋기로 유명한 빈의 무직페라인,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에 견줘 통영이 뒤지지 않는다. 직사각형의 공연장에서 소리가 앞으로 잘 나간다.” 연광철ㆍ손열음처럼 많은 음악가는 직사각형(슈박스ㆍshoebox) 형태로 된 공연장의 음향을 선호하고 통영은 그중에서도 사랑받는다.

통영의 녹음 대부분을 담당한 최진 감독은 이 공연장의 소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보통 공연장의 음향은 한 번 울린 소리의 에너지가 100분의 1로 줄어드는 시간, 즉 잔향 시간을 기준으로 삼는다. 1.8~2.6초 정도가 되면 좋은 공연장이라 하는데 통영은 그 기준에 드는 평균 2.25초(공연장이 꽉 찼을 때 1.9초)다.

하지만 최 감독은 잔향 시간만큼 중요한 것으로 공연장 벽의 재질ㆍ모양, 그리고 공연장의 크기를 꼽았다. “악기에서 바로 들리는 직접음, 그리고 주변의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1차 반사음이 가장 중요하다. 통영국제음악당의 옆벽은 원목으로 마감이 돼 있는데 직접음을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독특한 1차 반사음을 만들어낸다.” 또 공연장의 크기도 적당하다고 봤다. 통영국제음악당의 콘서트홀은 총 1309석으로 보통 콘서트홀 크기인 2000여석보다 작은 편이다. 무대도 가로 18m, 세로 12m로 크지 않은 직사각형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28m×14m의 부채꼴이다. 최진 감독은 “한 악기가 연주하는 독주부터 18~19세기 작곡된 오케스트라 작품까지 최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크기”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녹음 이후에 기술적인 보완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최 감독은 최근 있었던 한 피아노 녹음을 들려주며 이를 설명했다. 이 녹음에는 무대와 객석에 마이크를 모두 16개 사용했다. 녹음 음원에 각각의 마이크에서 잡은 소리를 추가해 넣을 때마다 음향은 겹겹이 풍성해졌다. “추후 작업을 많이 하지 않고 콘서트홀에서 들리는 그대로 넣는 것이 요즘 녹음의 추세다. 통영에는 마이크를 적절한 곳에 설치해 놓으면 인위적인 잔향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

매년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며 음반 녹음 장소로 각광 받고 있는 통영국제음악당.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물론 음향만으로 녹음의 명당이 될 수는 없었다. 접근성, 경치, 편의성이 함께 했다. 서울에서 7시간 걸리던 곳이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완전 개통 이후 4시간 거리로 가까워졌다. 통영항 바다가 보이는 공연장은 음악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수도권의 공연장에 비해 대관료가 저렴하고 녹음이 가능한 시간도 상대적으로 많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의 김소현 예술사업본부장은 “공연장으로서 좋은 공연만큼이나 좋은 음반 발매도 중요하다고 본다”며 “녹음한 음반이 나왔을 때 공연으로 연결하는 식으로 선순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도 통영에는 음악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10월 소프라노 한경성이 피아니스트 하르트무트 횔과 함께 하고 11월엔 한국의 대표적 현악 4중주단인 노부스 콰르텟이 통영 무대에서 녹음을 예정하고 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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