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붑은 패션, 비키니는 경범죄냐"…모호한 과다노출 기준
“언더붑(가슴 아랫부분이 드러나는 의상)은 패션이고, 비키니는 경범죄인가요?”
지난 11~12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마포구 홍대입구역 등에서 이뤄진 ‘비키니 라이딩’을 기획한 김지수 MIB 대표는 지난 17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물었다. 성인물 제작·제공 업체 MIB 소속 배우 3명(채아ㆍ민주ㆍ주희)과 유튜버 하느르(본명 정하늘)씨는 이틀간 비키니를 입은 채 오토바이 뒤편에 앉아 서울 번화가 곳곳을 누비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유튜브 쇼츠 등에 올라온 이들의 라이딩 영상은 20일 현재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의 1차 목적은 ‘노이즈 마케팅’을 통한 홈페이지 홍보다. 그러나 김 대표와 배우들은 “단순히 홍보만을 위해서 처벌을 각오하고 나선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성인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컸다”면서다. 김 대표는 “지난해 비슷한 일로 처벌을 받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경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배우들에게 의도를 설명하니 흔쾌히 응해줬다. 단순히 홍보만을 위해서였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고, 염모 MIB 마케팅 부장 역시 “회사 홍보 목적도 있겠지만 성인 문화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성인배우 채아(31)씨는 “일종의 퍼포먼스일 뿐 사회 통념상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적과 관계 없이, 이들 모두 법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김 대표가 언급한 ‘지난해 일’은 7~8월 인플루언서 임그린씨와 유튜버 ‘BOSS J’가 비키니를 입거나 상의를 탈의한 채 강남역과 이태원역 주변에서 오토바이를 탄 일로, 당시 참가자들은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죄로 입건돼 같은 해 11월 검찰로 송치됐고 지난 5월 약식기소됐다. 이번 비키니 라이딩 당시에도 서초경찰서와 강남경찰서에 총 4건의 112 신고가 접수됐고, 경찰은 라이딩이 시작된 지 20여분만에 이들을 붙잡아 입건했다. 적용 혐의 역시 지난해와 같은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이다.
해당 조항은 공개된 장소에서 성기ㆍ엉덩이 등 신체 주요 부위를 노출해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에게는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과다노출로 경찰에서 즉결심판 또는 범칙금 처분을 받는 경우는 매년 250건 이상이었고, 올 1~7월만 해도 192건에 달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비키니 등 노출 있는 차림은 수영장이나 도심에서 열리는 퀴어 축제만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은 문제가 안 되고 길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건 안 된다는 기준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때와 장소 따라 다른 적용… 과다노출 기준 모호
김 대표의 주장처럼, 실제 이들의 처벌을 둘러싸고 일각에선 논란이 일고 있다. 과다노출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 주요 논쟁거리다. 실제 비키니 라이딩 사건 사흘 후인 지난 15일 오전 1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에선 노출이 심한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한 스탠딩바 앞에선 상의를 아예 탈의한 채 문신을 드러낸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고 있었지만, 이들에 대한 단속이 이뤄지진 않았다.
상의를 벗은 채 가게 앞에 서 있던 호주 국적 남성 A씨는 “클럽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이 정도 노출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홍대입구역 인근 클럽 앞에서 줄을 서있던 임모(29·여)씨는 비키니 라이딩에 대해 “바바리맨처럼 성기 전체를 노출한 것도 아닌데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남성들은 상의를 벗는 경우도 많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법조계 내에서도 과다노출 혐의 적용 기준이 모호해 사건마다 자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법에선 다른 사람이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느끼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판사 출신인 김병찬 변호사는 “노출 의상을 보는 사람마다 불쾌감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므로 보는 수사관마다도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성별에 따라 판단이 다르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같은 신체 부위를 비슷한 수준으로 노출해도, 성별에 따라 판단이 엇갈려서다. 해당 법 조항에는 노출해선 안되는 부위를 ‘성기ㆍ엉덩이 등 신체 주요 부위’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 창원지방법원은 뒷면이 티팬티인 여성용 핫팬츠를 입고 카페를 돌아다닌 남성에 대해 ‘엉덩이가 대부분 드러나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과다노출 혐의를 인정하고 15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하진규 변호사는 “여성의 경우 엉덩이가 드러나는 짧은 하의를 입었다고 과다노출로 처벌 받은 사례를 찾기가 어려워서, 이 사건도 처벌이 안될 것으로 예상한 법조인들이 많았다”며 “성별에 따라 더 엄격하게 적용한 사례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똑같이 ‘공개된 장소’라도 어떤 경우엔 처벌 받고 어떤 경우엔 단속조차 이뤄지지 않는 등 공간적 기준 역시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 변호사는 “비키니는 해변에선 다들 입는 옷인데 도시에선 입으면 처벌한다는 건 수사 기관의 지극히 자의적인 판단”이라며 “바닷가에서 몇 ㎞ 떨어져야 도심으로 볼 수 있다는 기준도 없다. 법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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