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사라져도, 물길과 철길이 남긴 추억은 남는다
골목을 걷는 것은 동시대를 기억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다. 그 안에 우리네 삶의 오늘과 내일, 어제가 있다. 골목길 TMI는 골목의 새로운 변화와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옛 송도역에서 송도유원지까지 추억을 따라 걸었다. 매립으로 소금기 가신 새 땅에는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짭조름한 삶이 흐르고 있었다. <기자말>
[글 최은정·사진 유승현]
▲ 수도권 지하철 송도역을 출발하는 열차 |
ⓒ 유승현 포토그래퍼 |
철길이 남긴 추억
"협궤열차의 기적 소리에 새벽잠 털어낸 발걸음 소리 가득했었던, 이슬도 채 마르지 않은 어스름 송도의 5일 장터. 어느덧 뉘 좌판에선 마수걸이 흥정이 시작되고, 일면식 없는 인연이어도 먼우금 갯벌마냥 노동으로 갈라진 손금 하나로 마음이 열리곤 했었다." - <멀고도 가까운 먼우금 사람들>
1973년 남인천에서 송도 구간이 끊기면서 옛 송도역은 수인선의 종착역이 됐다. 그 시절 송도역 앞은 안산, 시흥, 군자 등에서 건너온 촌로와 다라이를 인 아낙들이 곡식과 생선을 펴고 흥정을 벌여 늘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수인선이 폐선하면서 이 모습은 사라졌다. 길 건너 대로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상인들은 건물 뒤편으로 밀려나 새로운 터전을 만들었다. 현재의 송도역전시장이다.
2대째 역전쌀상회를 운영하는 임동환(66) 상인회 회장은 옥련동 일대가 북적이던 시절의 기억이 선명하다. 어머니는 역전 장마당(반짝시장)에서 노점을 했다. 수인선 따라 보따리 상인들이 이고 오는 미곡을 도매로 매입해 장사를 했다. 역전시장으로 자리를 옮기고도 오래된 단골들 덕분에 꽤 북적였는데, 이제 시대가 변했다.
"1990년대까지 시장 골목에 사람이 바글바글했어요. 여름이면 유원지에 놀러 온 피서객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여기 와서 수박을 몇 통씩 사 가고." 송도유원지, 수인선 철길, 반짝시장 등 임 회장은 사라진 것들이 못내 아쉽다.
▲ 송도역전시장의 오늘 |
ⓒ 유승현 포토그래퍼 |
▲ 옛 송도역 |
ⓒ 유승현 포토그래퍼 |
양지마을 설탕공장 사람들
송도역전시장에서 송도고등학교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비류대로를 따라 걷는 길, 대로변의 고층 상가 건물 뒤로 작고 낮은 지붕을 맞댄 마을들이 이어진다.
비류대로 154번길 일대, 반듯반듯한 길 따라 양옥집이 수십 채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에서 직원들 사택으로 지어 분양한 단지다.
1985년, 서달산의 나지막한 봉우리를 평평하게 깎고 그 위에 쌍둥이처럼 똑같은 1층짜리 단독주택을 지어 올렸다. 예로부터 양지마을이라 불리던 자리에 설탕공장 사람들이 새 마을을 이뤘다. 정한철(78)씨도 그때 이사왔다.
"남향은 평당 12만 5000원, 골목 안쪽 집은 10만 5000원. 제일 끝은 8만 원씩. 추첨을 해서 됐어요. 근데 그때가 지금 해양경찰서 자리 땅값이 6만 원 할 때예요. 그 곱절이었으니, 고급이었어요."
처음엔 대중교통도 없어서 통근 버스가 직원들을 실어 날랐다. 나중에서야 시내버스 노선이 지나갔다. 시내버스 정류장 근처에 홍어횟집 골목에서 가끔 회포를 풀었다. 197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까지 홍어횟집들이 성황을 이뤘다.
원래 이름은 조개고개 삼거리였다. 동양화학이 바다를 매립하기 전까지 이 동네는 바닷가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개가 아주 흔했다. 반 시간만 허리를 굽혀주워 담아도 망태기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각종 어패류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조개고개 건너편엔 새인천풀장이 있었다. 동양화학에서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잠시 운영했던 노천풀장이다. 이곳의 행락객들도 조개고개에 와서 허기를 달래곤 했다.
▲ 가족들의 추억이 깃든 사진들 |
ⓒ 유승현 포토그래퍼 |
▲ 양지마을에서 여생을 약속한 세 사람. 윤종만, 이원달, 정한철 씨(왼쪽부터) |
ⓒ 유승현 포토그래퍼 |
단단하게 뿌리내린 삶
매립으로 소금기 가신 땅 위에 설탕공장이 들어섰다. 바닷가 산업단지에 1970년 제일제당 인천제1공장이, 1979년 대한제당(현 TS제당) 공장이 세워졌다. 일자리를 좇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흘러 들어왔다. 주로 출퇴근이 가까운 신흥동이나 용현동 일대에 터를 잡았다.
이원달(85)씨는 제일제당 부산공장에서 인천공장으로 뽑혀서 왔다. 인사과에 근무해 사택 추진에 다소 관여했다. "사택 부지로 석바위 등기소 자리 등 몇 군데를 고려했는데, 옥련동이 예나 지금이나 살기에 좋았어요. 산자락에 폭 싸여 있어 지형도 아름답고."
제일제당 공장에서는 사탕수수 원료를 수입해 백설표 설탕을 생산했다. "하루에 최고 1500t까지 포장했어요. 12시간씩, 2교대로 쉴 새 없이 돌아갔죠. 7시에 교대하는데 물량이 달리면 9시까지 잔업을 시켜요." 처자식 키울 생각에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돌아보면 평생 한 직장, 그 연으로 옥련동에 뿌리내려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다. "예전엔 골목이 왁자지껄했어요. 집집이 서이씩 너이씩 아이들이 있어서, 친구들 집에 데리고 와 과일 먹으며 공부하고 때 되면 밥 먹고 한식구처럼 살았어요."
▲ 비류대로 154번길 일대 풍경 |
ⓒ 유승현 포토그래퍼 |
물길이 남긴 추억
1990년대까지 피서철이면 역전시장에서 송도유원지까지 행락객이 줄을 이었다. 해변에 빈틈 하나 없이 파라솔이 들어차고 한참 놀다 보면 물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오리배와 보트, 물썰매, 바이킹, 청룡열차 등 더위를 싹 날려주는 놀이시설도 가득했다. 대관람차에 오르면 인천 앞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송도유원지는 한 때 수도권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혔다. 1970년 전국 첫 유원지 시설로 지정된 후 2011년 문을 닫을 때까지 사계절 종합휴양지로 이름을 알렸다. 겨울엔 눈썰매장으로 변신해 사시사철 인기를 끌었다.
세월 따라 풍경 따라, 그 시절 추억도 희미해져가지만 연수구가 송도유원지의 추억 살리기에 나섰다. 2023년 제4회 신 송도해변축제를 7월 29일부터 8월 6일까지 송도달빛공원에서 열어 인공백사장에 물놀이장을 열고 과거 송도유원지에 있던 요술거울, 매표소, 오리배를 재현한 조형물을 곳곳에 배치해 시민들에게 추억을 선물했다.
내친김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도로를 달려본다. 바다가 메워지며 파묻힌 섬의 옛 모습을 가늠해 본다. 지금은 도로와 맞닿은 섬 아닌 섬, 아암도. 한때 아암도는 하루 두 번 입장을 허락하는 바다 위 전망대였다. 그저 섬 하나였지만 그곳에 서 있으면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 청량산에서 내려다본 송도 바닷가 |
ⓒ 유승현 포토그래퍼 |
사진 한 컷, 인천의 기억
구한말 옥련동 일대는 한진마을, 옥골, 독배, 대암 등 자연 마을이 있었던 '원우이면(遠又爾面, 일명 먼우금)'이었다. 일제는 1936년 이 일대를 인천부에 편입하면서 일본식으로 '송도정(松島町)'이라 이름 붙였다.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 유승현 포토그래퍼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송도유원지 |
ⓒ 굿모닝인천 |
[송도유원지]
▲ 아암도해안공원 |
ⓒ 유승현 포토그래퍼 |
[아암도해안공원]
갯벌이 매립되기 전, 송도유원지를 찾은 시민들은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약 500m를 걸어 아암도로 향했다. 아암도 기행은 철을 타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바위섬에 행락객이 덕지덕지 올라앉았다. 그저 섬 하나였지만 그곳에 서 있으면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마땅히 갈 곳 없던 1960~1970년대, 색다른 볼거리를 안겨줬던 아암도는 인천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로 사랑받았다.
▲ 골목길TMI-철길과 물길이 남긴 추억, 옥련동 썸네일 |
ⓒ 굿모닝인천 |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 포토그래퍼
참고문헌 최정학의 <옥련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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