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거치며 사라진 '바둑이'…멸종됐다 돌아온 사연
‘달랑달랑달랑~ 달랑달랑달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동요 ‘바둑이 방울’에 등장하는 단어 ‘바둑이’는 삽살개의 한 종류로, 한때 한반도에서 광범위하게 살고 있던 토종개다. 짧은 털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마치 대국이 펼쳐지고 있는 바둑판처럼 보인다고 해서 바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54년 광복 후 처음 만들어진 국어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동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바둑이는 한국인에겐 친숙한 동물이었다. 조선시대 화원 김두량(1696~1763)이 그린 ‘견도(犬圖)’에도 바둑이와 생김새가 같은 개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바둑이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자취를 감췄다. 그 많던 바둑이는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이런 물음 속 최근 사라졌던 바둑이가 복원됐다. 바둑이는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을까. 경북 경산시에 위치한 한국삽살개재단의 하지홍 이사장과 건국대 줄기세포재생공학과 박찬규 교수의 연구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모피 얻으려 조선 토종개 싹쓸이한 일제
우선 한반도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삽살개가 사라진 것은 일제의 수탈 때문이었다. 1940년대 일본이 전쟁에 필요한 가죽 공급원으로 조선의 토종개들을 마구 잡아들였는데, 그중에 바둑이도 포함돼 있었다. 일제는 1938년부터 2차 대전으로 패망한 1945년까지 일본군이 전쟁 물자로 쓸 모피를 얻으려고 ‘조선원피주식회사’라는 별도 법인까지 만들어 한반도 토종개 150만 마리 이상을 잡아들였다고 한다.
털 짧은 얼룩무늬 삽살개서 바둑이 복원
이렇게 사라졌던 바둑이가 돌아왔다. 한국삽살개재단에서 40년 이상 삽살개를 보존·연구하는 과정에서 1% 미만의 드문 확률로 짧은 털과 얼룩무늬를 가진 새끼가 태어나면서다. 하 이사장은 짧은 털과 얼룩무늬를 가진 개가 그려진 조선시대 그림을 생각해 냈다. 여러 그림과 문헌을 살펴본 끝에 그는 이 얼룩무늬 개가 한동안 사라졌던 바둑이임을 알아냈다. 하 이사장은 “얼룩무늬는 물론 누운 귀, 풍성한 꼬리털, 큼직한 골격 등 외형이 똑같았다”고 했다.
하 이사장은 한반도 대표 토종개였던 삽살개처럼 바둑이도 복원해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자연 교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건국대 줄기세포재생공학과 박찬규 교수 등 연구진과 함께 바둑이 복제에 나섰다.
박 교수 연구팀은 바둑이를 복원하기 위해 비교적 털이 긴 삽살개 중 얼룩무늬를 보이는 개체만 골라 교배했다. 바둑이 품종으로 볼 수 있는 새끼가 태어났고 복제연구가 이뤄졌다. 이후 2018년 첫 복제에 성공했고 올해까지 50마리 이상의 집단을 형성한 집단 복원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체세포 복제나 인공 수정을 통해 소수의 바둑이 개체가 태어난 적은 있지만 바둑이의 유전적 형질이 고루 나타나는 집단을 꾸린 것은 처음이다.
박 교수는 “조선시대 민화 등 기록에 나오는 한국 토종개 바둑이를 전통유전육종학적 기법으로 복원해 품종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연구진은 지난 6월 8일 ‘한반도 토종견 유전자분석 연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해당 연구는 국제 학술지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도 공개됐다.
진돗개·동경이 등 한국 토종개 기원도 밝혀
연구팀은 한국 토종개의 기원을 밝혀내기도 했다. 삽살개, 진돗개 등 극동아시아의 5개 품종의 유전체를 분석하면서다. 연구진은 총 25마리의 유전체 서열을 고대 개와 늑대 등 211마리 갯과 동물의 것과 비교했다. 약 2000년에서 1만년 전 사이 한반도로 이동한 한국 토종개 중 진돗개와 동경이는 동남아 혈통, 삽살개는 북방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된 유라시아 혈통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기원전 2800년 북방 초원 지역에서 한반도로 유목민이 유입된 시기와 동남아의 벼농사 기술이 한반도에 들어온 시기가 토종개의 기원과 일치한다”며 “고대 인간의 이동 경로를 유추하는 데 개의 혈통 연구가 중요한 만큼 이번 연구가 한국인의 정체성 이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경산=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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