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뒤 정계 진출?…내부고발자 바라보는 정치권 '내로남불'

성지원 2023. 8.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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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류 정치인 흉내를 내고 있다.”(신원식 국민의힘 의원)

고(故) 채수근 상병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과정에서 ‘윗선’의 외압 의혹을 폭로한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여권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박 대령은 앞서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한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를 국방부의 이첩 보류 지시에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가 집단 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됐다. 박 대령은 조사 결과를 이첩하는 과정에서 국방부가 특정인을 제외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여권은 폭로의 ‘순수성’을 의심한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1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본인이 처리한 결과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니까 갑자기 군인 신분으로서 언론에 나가서 인터뷰를 하고 본인의 일방적인 주장을 국민에게 호소함으로써 본인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며 “이건 전형적으로 정치인들이 하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박 대령이 정치를 생각하지 않고선 저렇게까지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게 여권 내 시각이다.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

역대 정부의 내부고발자는 이처럼 “정치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부터 사곤 했다. 2018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으로 일하다 비위 의혹으로 검찰 수사관에 복귀한 후 조국 민정수석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무마 의혹 등을 폭로했던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대표적이다.

당시 청와대는 김 전 구청장의 폭로에 대해 그의 비위 의혹을 들며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고 비판했다. 김 전 구청장은 이후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강서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공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지난 5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구청장직을 상실했는데,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2014년 ‘정윤회 문건’ 논란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비판을 받았다.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던 조 의원은 이른바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을 정리한 청와대 내부 문건을 유출한 인물로 지목되자 언론 인터뷰 등에서 문건이 신빙성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청와대는 “검찰수사를 앞둔 본인들의 갖가지 주장들”(민경욱 대변인)이라며 조 의원 주장을 평가절하했다. 이후 문건 유출 혐의로 기소된 조 의원이 2016년 민주당에 입당해 총선에 출마하자, 청와대는 “불순한 의도로 문건을 유출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조 의원은 2021년 무죄가 확정됐다.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 동향'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조응천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2014년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참조인 조사를 위해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처럼 '결과적'으로 당사자들이 정계에 진출한 경우가 없진 않았다. "정계진출을 염두에 두고 내부 고발 또는 폭로를 했다"는 의심이 어쨋거나 사후적으로 맞아 들어간 셈이다. 하지만 모든 케이스가 꼭 그렇지는 않았다. 여야가 자기 입맛에 따라 내부고발자를 옹호하거나 비난하곤 했다. 그래서 내부 고발자에 대한 태도 역시 여야가 '내로남불'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태우 전 구청장의 폭로에 비판적이었던 민주당은 앞서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에 대해선 강하게 옹호했다. 그에 대한 당시 여권의 비판을 “진실을 알리려는 모든 이들에 대한 압박이자 민주주의를 저버린 행동”(백혜련 의원)이라 지적하며 장 전 주무관을 옹호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8년 청와대가 기획재정부에 적자국채 발행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에 대해선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망둥어)도 뛰는 것”(홍익표 당시 민주당 수석대변인)이라며 맹비난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2018년 신 전 사무관에 대해 “이번 폭로는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는 젊은이들의 절규”(정용기 당시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라고 추켜세웠던 국민의힘은 현재 박 대령에 대해선 정치적 의도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1992년 군 부재자 투표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내부고발했던 이지문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는 “공익제보는 여야나 좌우,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정부든 맞이하는 숙명”이라며 “공익제보에 대해 입맛에 맞게 판단하고 제보자를 공격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말한 내용의 팩트를 철저히 조사하고 따져보는 게 국회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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