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죽인 자리에 'X'…수천만 경악시킨 머스크 진짜 꿈은?

문상혁 2023. 8. 20.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4년 전 일론 머스크가 만든 온라인 뱅킹 회사 'X 닷컴(X.com)'이 '파랑새'의 마지막 날갯짓으로 이어질지 누가 알았을까. 지난해 10월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뒤 올해 초 회사명을 '엑스(X)'로 바꿀 때만 해도 트위터의 로고이자 상징인 파랑새는 살아남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의 이름을 X로 바꾸기 직전 올린 글. 머스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X'가 좋다″고 썼다. 일론 머스크 X(옛 트위터) 캡처.

하지만 지난 24일(현지시간) 전 세계 트위터 이용자들은 파랑새 대신 생소한 글자 X와 마주해야 했다. 전날 머스크가 트위터 본사에 'X자' 조명을 띄운 지 하루 만이다. 2006년 트위터 창립부터 함께한 파랑새가 역사 속으로 날아간 이유는 뭘까.


머스크 “저는 ‘X’가 좋아요”


한국의 카카오톡, 일본의 라인 등과 같은 채팅·뉴스·금융 등 전천후 기능을 갖춘 '슈퍼 앱(Super App)' 구상 때문이란 시각도 있다. 하지만 주로 알파벳 24번째 철자에 대한 남다른 머스크의 ‘애착’ 또는 ‘집착’이란 해석이 더 많다. 3년 전 전처인 유명 가수 그라임스(35)와 낳은 아들의 이름(X Æ A-12 머스크)에도 X를 넣은 건 ‘장난’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당시 머스크는 아들이 태어난 뒤 팟캐스트에서 ‘X’는 미지수란 뜻이라고만 설명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가 공개한 트위터 본사에 비친 X자 조명. 일론 머스크 X 캡처.

사실 아들뿐만 아니다. 자식 같은 회사 이름에도 머스크는 X를 빼놓지 않는다. 스페이스 X(우주선 개발업체), 테슬라 모델 X, xAI(AI 스타트업) 등등. 머스크는 트위터 이름을 X로 바꾸기 직전, 트위터에 “미묘한 단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X’라는 글자를 좋아해요”라고 고백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좋아하는 철자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모른다고 하겠지만 일론 머스크는 명확하다. X다”라고 전했다.

머스크의 유별난 ‘X 사랑’은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머스크가 두 번째 창업 회사로 설립한 X.com이다. 당시 그는 전 재산이었던 1200만 달러를 출연해 세계 최대 온라인 은행을 기획했는데, 꿈이 1년 만에 좌절됐다. 업계 경쟁자인 컨피니티(Confinity)와 2000년 합병했기 때문이다. 컨피니티는 현재 미국 간편결제 서비스 업체인 페이팔(Paypal)의 전신이다.

김영옥 기자

그런데 이제 X.com을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면 X로 접속한다. 2017년 페이팔 측으로부터 X.com의 도메인을 되산 머스크는 당시 트위터에 “저에게 중요한 감정적 가치(Sentimental Value)를 갖고 있는 것”이라며 “트위터를 인수한 이유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앱, X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트위터의 변화를 예고했다. 결국 24년 전 과거의 'X.com'이 현재의 X로 재현된 셈이다.


“그래서 트위터 뭐라고 불러?”


머스크의 X 사랑이 이끈 사명 변경은 IT 업계에선 전례를 찾기 어렵다. 뉴욕타임스(NYT)는 “단순히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이지만, 머스크는 업계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전했다. 수천만 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소셜미디어가 앱 이름을 바꾼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메신저 서비스인 스냅챗(Snapchat)은 2016년 회사명을 ‘스냅(Snap)’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앱 이름은 그대로 ‘스냅챗(Snapchat)’이다. 페이스북(Facebook)도 마찬가지다. 2021년 모회사 이름을 메타(Meta)로 바꿀 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앱 이름은 유지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등 IT 기업들은 사명을 바꿔도, 주력 브랜드만은 유지했다”며 “우리는 지금도 구글에서의 검색을 ‘구글한다(googling)’”고 이번 사태를 빗댔다.

페이팔(Paypal)의 창업자 피터 틸(왼쪽)과 일론 머스크.가 페이팔 로고가 적힌 컴퓨터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은 모습. 머스크는 2017년 페이팔 측으로부터 X.com 도메인을 되샀다. AP=연합뉴스

그래서 가장 회의감을 느끼는 건 열성적인 X 이용자들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NYT는 ‘그래서 트위터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제 트위터에 글을 올린다는 동사의 ‘트윗(tweet)하다’, 인용한다는 뜻의 ‘리트윗(Re-tweet)하다’ 등을 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한 이용자는 자신의 계정에 “트위터의 독특한 매력을 모두 파괴한 행위”라면서 “이렇게 쉽게 버리는 건 이상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X’는 공식적으로 “‘트윗(tweet)’을 ‘게시글(post)’로 바꾸고, ‘리트윗(Re-tweet)’은 ‘리포스트(Re-post)’라고 부르자”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이를 외면하고 대안 찾기에 집중한다. 한 이용자는 ‘게시글’ 대신 트윗(Tweet)에서 X를 끼운 ‘지츠(Xeets)’를 X 측에 제안했다.


미국의 ‘카톡’ 꿈꾸는 X


NYT는 “머스크의 X는 중국의 위챗(Wechat), 일본의 라인(Line), 한국의 카카오톡(Kakaotalk)을 꿈꾼다”고 전망했다. X 이용자가 게시글을 공유하면서 저녁 식사를 주문하고 또 돈을 어디론가 송금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머스크의 구상이란 설명이다. 특히 머스크는 지난해 5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중국의 위챗을 롤모델로 콕 집었다. 머스크는 “중국에서는 ‘위챗’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다”며 “위챗은 트위터에 페이팔(결제 서비스)을 더한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 ″트위터 인수는 모든 것을 위합 앱, X를 만들기 위해서다″라고 적은 글. 일론 머스크 트위터 캡처

머스크의 비전만 보면 X로 바꾸는 것이 맞는다는 옹호론도 나온다. 미 산타클라라 대학의 쿠마르 사란지 교수는 악시오스에 “대량 해고로 조직 구조를 바꾸고 수익 모델을 변경한다면 이름도 바꾸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아직까진 ‘성급한 리브랜딩(Rebranding)’이란 의견도 적지 않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태는 머스크가 트위터 사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업계 의견을 전했다.

머스크의 슈퍼 앱 시도가 불발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간 메타, 우버, 스냅 등이 슈퍼 앱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아시아와 미국의 문화적 차이, 서구의 반독점 규제, 기존 금융산업의 발달 등이 슈퍼 앱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머스크의 시도를 두고 “돈키호테적”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인 셈이다.

문상혁 기자 moon.sanghyeo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