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중국'놈'?... 아이들에 퍼지는 혐오 정서
[서부원 기자]
135명(90%) vs. 15명(10%).
조악한 자체 통계일지언정 자못 놀라운 결과였다. 이렇게 극단적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수업 시간 손들어 조사한, 중국과 일본, 두 나라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혐오도 차이다. '둘 중 어느 나라가 더 싫으냐'는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솔직한 답변이다. 물론, 두 나라가 좋다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만약 중학생들과 초등학생들에게 묻는다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면, '100:0'이 됐을지도 모른다면서 키득거리기도 했다.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는 '현재' 중국이 벌이고 있는 짓에 견주면 '새 발의 피'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 서울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에 남아 있는 1920년 3월께로 추정되는 의열단 창립 초기 단원들의 모습. 사진 속 마지막 줄 오른쪽부터 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김기득. 중간에 앉은 이가 정이소. 오른쪽 하단에 따로 붙은 사람이 김익상이다. |
ⓒ 국사편찬위원회 |
일제강점기 의열투쟁 관련 수업 도중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통치에 맞선 의열투쟁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는, 우리 현대사에서 나름 비중이 큰 부분이다. 약산 김원봉이 주도한 의열단과 백범 김구가 창설한 한인애국단의 활동이 주요한 내용이다.
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경찰서 등 일제 통치기관을 폭파하고, 일본인 고관대작과 매국노, 밀정 등을 처단하려는 의열단원의 결기는 교과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홀로 일본 경찰과 치열한 시가전을 벌이다 끝내 남은 총알 한 발로 자결한 김상옥 의사와 나석주 의사의 삶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스러져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한인애국단의 활약상도 의열단 못지 않다. 그들은 '한 사람을 죽여서 만 사람을 살린다'는 기치를 내걸고 의열투쟁에 나섰다. 일본 천황을 저격하러 떠나며 애써 웃어 보이는 이봉창 의사의 모습과 '장부는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윤봉길 의사의 기개 앞에 누구든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핏빛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들의 반응은 해가 갈수록 심드렁해져만 간다. 일제의 무자비한 통치와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해 더는 비분강개하지 않는다. 숱한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역사적 의미를 수험용 지식으로 암기할 뿐,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는 데까지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납작해지는 역사인식
'역사교육의 형해화'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것이 심해질수록 역사 인식이 납작해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윤봉길 의사가 1932년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졌다는 건 잘 알지만, 의거의 배경과 영향, 나아가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교훈에 대해선 무관심하다는 거다. 시험에 나올 것만 외우고 끝내는 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와중에 친일 잔재 청산이나 6.25 전쟁 전후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 등 진상규명이 필요한 과거사가 시나브로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이유로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냐'는 독설이 무람없이 나온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건 전가의 보도다.
요즘 아이들은 친일파 문제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배반했다는 건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의 죄과는 역사의 법정에서 다뤄져야 할 내용이라는 것이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그들은 이미 '역사 속 인물'이 됐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반응은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냐'는 기성세대의 강퍅한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만시지탄이지만, 해방 직후 친일 청산이 실패한 역사의 후과다. 교과서의 내용이 소략한 까닭인지, 그들은 친일 청산의 실패가 극심한 좌우 대립 속에 6.25 전쟁으로 귀결됐다는 사실을 쉬이 납득하지 못한다.
▲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지난 7월 5일 백선엽씨의 동상이 세워졌다. |
ⓒ 조정훈 |
윤석열 정부의 출범 후 친일 청산 문제를 입에 올리기조차 힘들게 됐다. 간도특설대의 장교로 독립군을 때려잡던 '공인 친일파' 백선엽을 버젓이 애국자로 둔갑시키는 마당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동료 교사들 사이에선 수업 시간에 친일 청산 운운했다가 자칫 '빨갱이'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어느새 일제강점기는 아이들의 뇌리에 고려시대 원 간섭기, 심지어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역사로 인식된다. 한 아이는 '고려 때 몽골이 우리를 못살게 굴었다고 지금 몽골을 미워하진 않는다'면서 '일본은 왜 예외냐'는 되바라진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숱한 모순이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됐다는 걸 간과한 셈이다.
확산하는 중국 혐오
세월의 더께로 일본의 허물이 조금씩 잊혀가는 와중에 중국의 '민낯'이 언론과 방송 등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날로 확산 추세인데, 기성세대보다 아이들에게서 더욱 도드라진다. 그들의 입에서 중국인은 중국'놈'이고, 중국이라는 나라 이름도 비하 표현인 '짱깨'다.
아이들이 떠올리는 중국과 관련된 긍정적인 단어란, (이게 긍정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고작 '인구 대국' '문명의 발상지' '풍부한 지하자원' '스포츠 강국' 정도다. 반대로 부정적인 단어는 적자면 한두 페이지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최근엔 더럽고 무례하고 짝퉁이 판치는 곳이라는 기존의 이미지에다 '돈×랄하는 깡패 국가'라는 혹평까지 더해졌다.
"일본 얘들은 대개 깍듯한데, 중국'놈'들은 하나같이 말도 함부로 하고 꼴불견이에요."
"중국이 뿜어내는 굴뚝 연기에 애먼 우리가 미세먼지로 고통을 겪잖아요."
"여전히 억측이 난무하지만, 어쨌든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됐잖아요."
"누구라도 정부에 맞서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가 없애버리는 일당 독재국가잖아요."
▲ 중국의 한 거리 모습. |
ⓒ unsplash |
아이들이 말하는 중국을 그토록 혐오하는 이유다. 일견 타당하지만, 확증편향의 느낌이 없지 않다. 기존의 혐오가 혐오를 더욱 부추기는 꼴이라고나 할까. 사실 그들이 말하는 혐오의 이유가 꼭 중국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으며, 우리가 자성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도 은연중에 가난한 이웃을 얕본다. 우리부터 성찰해야 한다. 일본인은 예의 바르고 중국인은 무례하다고 못 박는 건 섣부른 일반화다. 중국보다 우리로부터 비롯된 미세먼지의 폐해가 훨씬 크다.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됐다고 해서 코로나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중국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억지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지금까지 자유민주당이 정권을 독식해온, 또 다른 의미의 일당 독재국가다.'
이렇게 반론할라치면 아이들은 다짜고짜 왜 중국을 두둔하느냐며 눈을 흘기기 일쑤다. 결국 "그냥 중국이 싫다"는 얼버무림으로 대화가 마무리된다. 보기 싫은 사람이 왜 싫은지 꼭 이유가 필요하냐는 반문이 뒤따른다. 물론, 아이들도 자기 손에 쥔 스마트폰과 옷과 가방, 신발 등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요즘 아이들의 맹목적인 중국 혐오의 근원지는 대체 어디일까. 한 아이는 대번 유튜브를 지목했다. 그들이 즐겨보는 게임 유튜브 등에 중국 혐오를 부추기는 내용이 태반이라는 거다. 거기서 떠도는 혐오 발언이 이내 교실에서도 유행하는 현실을 꼬집으며, 또래들 사이에서 워낙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라 되돌리긴 어려울 거라고 귀띔했다.
과거 '종북 좌파'가 친일파보다 더 나쁘다는 여론이 비등한 적이 있다. 친일파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종북 좌파'로 낙인찍혀 치도곤당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쓰임새를 다하고 사라진 '종북 좌파'의 낙인을 '친중파'라는 용어가 이어받았다. 바야흐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삼국동맹'이 운위되고 있는 지금, 아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홍위병'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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