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설계자도 중재자도 없는 각급 대표팀 차출협의, 남은 건 혼란과 걱정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국제 축구의 시각에서 아시안게임의 위상은 높을 수 없다. 특정 대륙에 국한한 종합대회인데다 연령별 대표팀이 참가한다. 올림픽과 달리 FIFA가 대회 운영을 관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적 상황, 국내 스포츠의 시각은 다르다.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에서의 국위 선양과 개인 목표 달성, 그리고 금메달 획득 시 주어지는 병역 혜택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에게도 아시안게임은 해당 연령대의 엘리트 선수들이 군문제를 해소, 유럽 진출의 문을 넓혀, A대표팀을 비롯한 시스템 전체의 순환을 이끈다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유럽파와 A대표팀 핵심 중 군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선수들의 차출 여부는 늘 이슈다. FIFA가 차출을 보장하지 않는 대회임에도 대한축구협회가 유럽파에 와일드카드까지 불러 정예 멤버를 짜는 이유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9월 19일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1차전을 통해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게임(24세 이하+와일드카드) 대표팀은 3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목표로 가기 위한 진통은 이번에도 비슷하다. 이강인으로 대표되는 유럽파의 차출 문제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소속팀으로부터 차출 허가를 받아도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훈련 시간 확보를 위해서는 A매치 데이 소집 일정이 겹치는 A대표팀과의 협의해야 하는데 이것도 지지부진하다.
앞서 대회들과 비교하면 이 시기는 유럽파를 비롯한 해외파의 합류 시점 조율에 가닥이 잡혀야 한다.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김학범호는 대회 보름 전 최대 현안이던 손흥민의 차출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당시 손흥민은 소속팀 토트넘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일정을 소화하고 13일 자카르타 현지로 오는 것이 확정됐다. 와일드카드였던 황의조(당시 감바오사카)는 8월 6일 왔고, 유럽파였던 황희찬(당시 레드불잘츠부르크)과 이승우(당시 엘라스베로나)는 8월 8일 합류했다. 황희찬의 경우 당초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 출전 건이 걸려 있었지만, 협의가 잘 되며 조기 합류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삼중고다. 일단 유럽파의 차출 협상 문제다. 정우영, 홍현석, 박규현도 있지만 최대 과제는 이강인이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의 차출 요청이 공식적으로 파리생제르맹 측에 도달한 상태다. 마요르카에서 이적 당시 파리생제르맹 구단은 이강인 측의 요청으로 9월 아시안게임 차출 건을 인지하고 있던 터다. 그런데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이 문제를 뒤늦게 알게 됐고, 아직 감독의 최종 컨펌이 나오지 않았다. 이강인의 개막전 활약상에 네이마르의 이적, 음바페의 뒤늦은 1군 훈련 합류 등을 감안하면 차출 의무가 없는 대회로 한달 가량 선수를 보내는 걸 주저하는 소속팀 감독의 사정도 이해는 된다.
다음은 A대표팀과의 차출 협의다. 위르겐 클리스만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9월 유럽으로 원정을 떠나 웨일스,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을 치른다. 이 시기가 아시안게임 대표팀 소집 시기와 겹친다. 현재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뽑혀 있는 유럽파 4명은 A대표팀에도 이미 뽑힌 선수다. 이강인은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의 두 차례 A대표팀 소집에 모두 뽑힌 핵심 자원이다. 정우영은 3월, 홍현석과 박규현은 6월에 A대표팀에 갔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9월 유럽 원정에 이강인을 포함한 3명을 A대표팀에 뽑을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해당 선수들은 9월 15일 경 항저우로 들어갈 수 있다.
세번째 변수가 진짜 문제다. 현재 황선홍 감독은 아시안게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모두 이끌고 있다. 아시안게임이 1년 연기되면서 대회 준비 일정이 파리올림픽 지역 예선 일정이 겹쳐졌다. 예년 같으면 아시안게임 보름을 앞두고는 일부 유럽파를 제외하고는 선수들이 소집돼 훈련과 평가전으로 조직력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황선홍 감독이 그 시기에 창원에서 열리는 올림픽 예선(AFC U-23 아시안컵 1차 예선) 3경기까지 병행해야 한다. 훈련에 집중할 여건도 애매한 상황에서 A대표팀과 겹치는 주력 선수들의 합류 시점이 미궁에 빠지며 아시안게임 준비는 혼란만 거듭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전에 평가전을 치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나마 완전체 형태로 훈련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것도 답이 없다. 9월 19일 쿠웨이트와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르는 대표팀은 9월 14일을 전후해 항저우로 건너간다. 현재 대회 조직위가 16일부터 훈련장 사용을 허가하겠다고 하지만 이 역시 변수가 많아 실제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다. 여러모로 한국에서 최대한 훈련하고 준비를 마쳐 들어가야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A대표팀과 아시안게임 대표팀 간의 중재가 요원하지만 6월 이후 2달 넘게 제자리 걸음이다. 보직을 보면 장외룡 부회장(기술 및 각급 대표팀 부문), 황보관 대외기술본부장,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이 중재자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존재감이 거의 없다는 전언이다. 그럴만도 하다. 장외룡 부회장은 지난 3월 사면 파문 이후 수뇌부가 교체되며 축구협회로 왔다. 황보관 본부장과 뮐러 위원장은 그 전에 있었지만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답답한 황선홍 감독은 차두리 A대표팀 어드바이저를 통해 차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호소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A대표팀 우선 원칙만을 고집하고 있다. 차두리 어드바이저는 클린스만 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FC서울 유스 총괄디렉터라는 본직과 함께 대표팀 업무를 임시직으로 겸임 중이다. 오죽 답답하면 그럴까 싶지만, 한편으로는 비정규직 관계자를 통해 문제를 해소해야 하는 게 정상적인 그림이 아니다.
대표팀 운영에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각급 대표팀의 요청, 이해 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설계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파울루 벤투 감독이 떠나고 A대표팀을 중심으로 한 현재 축구협회의 운영에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 위기와 갈등 국면에서 역할을 발휘할 인물의 부재 상황이다. 현재 클린스만 감독의 근무 형태와 외유 논란도 문제의 본질은 같다. 그런 행태를 저지하고, 경고할 책임자가 없다. 클린스만 감독을 평가하고, 대표팀 사령탑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쥔 기술파트의 책임자가 없으니 원격지휘에 문제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수의 차출을 놓고 충돌할 경우 각급 대표팀 감독의 이기적인 입장은 조정해야만 한다. 한국 축구의 총량적 이익을 위해 A대표팀이 양보할 때가 있고, 각 연령별 대표팀이 물러서야 할 때도 있다. 감독 개인의 영광을 위한 협의를 하라는 게 아니다. 한국 축구를 위한 거시적 관점에서 아시안게임 차출 갈등은 일찌감치 결론을 내야 했다.
결국 이 문제는 정몽규 회장이 나서야 해결 가능한 분위기까지 오고 말았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의 실제 주체였던 정몽규 회장의 의견과 메시지 말고는 차출 문제에서 A대표팀의 양보를 이끌 방도가 없다. PSG로 이적하며 한층 주목도가 높아진 이강인의 참가와 금메달 획득이라는 과제가 걸린 만큼 결국은 어떻게든 해결이야 되겠지만, 명확한 체계와 방향성을 갖춘 시스템 없이 회장의 원맨플레이에 운명을 걸어야 하는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는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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