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을 싸워온 농민들의 투쟁을 아십니까
[정윤섭 기자]
▲ 해남 우수영항 조선시대에는 서남해 연안과 섬지역을 관할하였던 전라우수영이 있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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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영항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뱃길
우리나라 서남해 섬들은 대부분 목포를 중심으로 뱃길이 연결된다. 목포라는 항구를 중심으로 방사형의 항로가 연결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역 섬사람들의 생활권이 대부분 목포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육지의 교통이 발달하고 육지와 섬이 다리로 연결되면서 목포를 중심으로 하였던 뱃길이 점점 바뀌어 가고 있다.
최근 해남의 우수영항에서 인근 장산, 신의, 하의도를 연결하는 여객선 항로가 새로 개통돼 인근 섬으로 가는 뱃길이 훨씬 다양해졌다. 지난 6월 26일부터 우수영항에서 장상도, 신의도, 하의도를 연결하는 449톤급 드림아일랜드호가 하루 세 차례 운항을 하고 있다. 이로인해 목포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1시간 가까이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일찍이 우수영은 서남해 연안과 섬 지역을 관할했던 전라우수영이 자리한 곳이다. 예전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듯 현재 전라우수영성도 복원이 연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 하의도로 가면서 만나는 염전들 신의면에 속한 상태도, 하태도는 전국최대의 천일염 생산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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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지나다 보면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져 있는 염전의 끝없는 행렬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의도로 가는 중에 보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소금밭의 행렬이 독특한 섬의 풍경을 만들어 준다. 이곳 신의면에 속한 상태도, 하태도 그리고 하의면에 속한 하의도를 합하여 '하의3도'라 부른다.
염전은 주로 상태도와 하태도에 많고 하의도에도 염전은 있지만 농사를 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곳은 섬이지만 농토가 많아 농업이나 염전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섬이 간척을 하기 유리한 갯벌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오래전부터 간척을 해 염전을 운영하거나 농사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토지가 많은 때문인지 하의3도는 오래전부터 자신들이 일군 토지를 권력자들이 빼앗자 이를 찾기 위해 부단한 투쟁을 해왔던 '하의3도 토지탈환 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 김대중 대통령 생가 하의도 북쪽 후광마을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생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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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도에 도착해 하의도로 가기 위해서는 2017년 6월 개통된 삼남대교를 지나야 한다. 이 다리가 연결되면서 상태도, 하태도 하의도가 하나의 생활권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하의도 하면 많은 사람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떠올린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정치인 중 하나다. 군부정권의 독재정치에 목숨을 걸고 맞서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생가는 섬의 북쪽 하의면 후광마을에 있다. 후광은 김대중 대통령의 호이기도 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고향마을에서 자신의 호를 지었다고 한다. 생가가 있는 곳 앞쪽은 지금은 간척을 하여 염전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바닷가였다.
지난 2009년 돌아가신 지 8월 18일로 벌써 14년의 시간이 흘렀다. 생가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하게 이어지고 있다. 입구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동상이 자신의 생가를 지키는 듯 서 있다. 생가로 들어가는 돌담에는 그의 정치적 여정을 말해주는 듯 기억에 남을 사진들이 돌담을 따라 전시돼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하의도라는 섬에서 출생했다는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를 상징하는 인동초처럼 하의도의 바다와 땅과 자연이 그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의도는 '평화의 섬'이기도 하다. 평화의 섬은 평생 평화통일과 민주화를 외쳤던 김대중 대통령의 삶을 느끼게 하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하의도의 서남쪽에 있는 죽도에는 큰 바위 얼굴이 있다. 옆모습이 사람의 형상과 매우 닮았는데 그 모습이 김대중 대통령을 떠오르게 한다.
▲ 하의도 큰바위 얼굴 옆모습이 사람의 얼굴과 흡사하며 김대중 대통령을 떠오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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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하의도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의3도 토지탈환운동'이다. 섬이지만 하의도는 간척을 하여 농토가 많아 오래전부터 토지를 벌기 위해 사람들이 섬으로 찾아들었다. 그리고 힘들게 땅을 개척하여 농토로 만들어 갔다.
김대중 대통령 생가가 있는 곳으로 가다보면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이 있다. 하의3도 주민들이 350여 년 동안 자신들의 토지를 돌려받기 위해 싸웠던 흔적들을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이다.
이 토지탈환운동은 조선 인조 때부터 시작해 해방후 까지도 지속된 가장 긴 농민항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의도 농지탈환운동의 역사는 선조의 딸 정명공주까지 올라간다. 선조의 대를 이은 인조가 정명공주에게 하의도 땅 24결에 대한 절수(일종의 토지소유권)의 권리를 주면서부터 하의도 농민과 토지 소유자 간에 긴 항쟁의 시간이 이어진 것이다.
▲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 하의3도 농민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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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3도 토지탈환 운동은 인조 때부터 시작해 해방 후까지 이어지면서 긴 항쟁이 이어지고 있어 이 이야기는 토지를 되찾기 위한 농민들의 서사시 같기도 하다. 이 항쟁의 이야기를 김학윤 선생이 <하의도 350년 농민운동사>(2006년)란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농민운동 기념관 앞 뜰에는 농민운동과 관련한 기념비 10여 기가 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비중에 하나가 일본인 변호사 고노부스노쓰케를 기리는 비다. 1908년 당시 토지소유자였던 풍산홍씨와의 소작료 징수에 대한 소송제기에서 이 일본인 변호사는 하의도 농민들의 입장에서 변론하고 결국 농민들이 소송에서 승소해 소유권을 되찾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하의도 토지는 당시 일제강점기하에서는 한때 토지 소유자가 일본인이어서 항일운동의 성격을 띄기도 했는데, 하의도 농민항쟁은 당시 중앙의 여러 언론들이 다룰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띄고 전개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따가운 뙤약볕 아래서 소금을 만들어 내는 섬사람들의 모습은 여행자들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지만 그 내면 속에는 고달픈 일상의 노동이 숨어 있다.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려 했던 남다른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 하의도 농민운동 기념비 농민운동기념관 옆에 있는 이 기념비들 중에는 일본인 변호사가 농민들을 변호하여 준 것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도 있어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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