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없는' 클린스만 감독, 정말 괜찮은가
[이준목 기자]
▲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6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A매치 4경기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와 향후 대표팀 운영 방향 등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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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Lame duck)은 흔히 정치나 사회적으로 권력누수 현상을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보통 한 조직의 리더가 그 영향력과 권위를 상실하여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가는 상황을 오리가 발을 절며 걷는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보통은 임기말에 접어든 정권을 풍자할 때 자주 쓰이는데, 레임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해당 조직과 리더의 상황이 위태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르겐 클린스만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현재 상황은, 마치 전형적인 레임덕을 연상시킨다. 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정책 수행과 리더십에 문제가 생겼을 때. 또한 그에 대한 대중과 여론의 신뢰가 크게 떨어져있다면, 이는 곧 레임덕 상황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그가 축구대표팀의 수장으로 부임한 지는 이제 겨우 5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축구 대표팀 감독 역사상 수많은 국내외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보통 실패한 감독이라고 할지라도 부임 초기 최소 몇 달간은 '허니문' 기간을 가진다. 감독은 선수와 팀을 파악하고 자신의 색깔을 입힐 시간을 가지고, 이 기간에는 언론이나 팬들도 가급적 비판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된다.
그런데 클린스만 감독처럼 부임 반년도 안 된 사령탑이 벌써부터 이 정도로 잡음이 많은 것도, 이 정도로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진 경우도 전무후무하다. 그리고 그 모든 원인과 책임은, 결국 클린스만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
성적부진 등 논란 속에 선 클린스만 감독
클린스만 감독은 현재 성적부진과 근무태만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을 달성했던 전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클린스만호가 출범 이후 거둔 성적은 4경기에서 2무 2패,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성적이야 아직 부임 초반이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선수선발, 전술, 경기력 등에서 별다른 차별점이나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게 더 문제였다.
이후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여론이 더 악화된 진짜 원인은, 그의 워크에식(직업윤리, 성실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과 계약하며 '국내 상주'를 조건에 포함시켰다. 대표팀 감독이라면 그 나라에 상주하면서 대표팀을 전담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전임 벤투 감독을 비롯한 히딩크, 아드보카트, 베어벡, 본프레레, 슈틸리케 등 역대 감독들 모두가 성패를 떠나 그 본분에 충실했다.
그런데 클린스만은 부임 5개월 동안 한국에 정확히 67일 만을 머물렀고, 그보다 훨씬 많은 90일 이상을 자택이 있는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에서 보내고 있다. 나름 이유는 유럽파 한국 선수들에 대한 점검, 아시안컵 조추첨 참가, 개인 휴가 등으로 다양했지만, A매치 평가전 일정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을 원격 근무 혹은 재택근무로 대체한 셈이다. K리그 선수들에 대한 점검은 국내에 상주하고 있는 코치들이 대신 전담했다. 대한축구협회 측은 클린스만이 한국에 얼마나 머물러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건은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는 점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지난 3월 선임됐을 때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현역 시절 당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었고, 감독으로서 2006년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독일 월드컵에서 3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미국 대표팀의 16강 진출 등 표면적으로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정작 내부적인 평가는 그리 좋지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불성한 근무태도와 기행이었다. 클린스만은 독일과 미국 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자주 개인적인 사유로 자리를 비웠고 유럽파 우대, 보수적인 선수선발 등으로 언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심지어 2020년 독일 헤르타 베를린 감독 때는 미국에서 자신의 SNS를 통하여 일방적인 감독 사퇴와 계약파기를 발표하며 독일 축구계에서조차 금지어로 전락했다.
한국대표팀 부임 기자회견에서도 과거행적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솔직히 인정했고, 한국에서는 집도 구해서 상주하며 근무하겠다고 분명히 약속했다. 그런데 부임 5개월 이후 클린스만 감독의 행보를 보면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행동은 한국축구와 팬들에 대한 기만이기도 하다. 우려의 시선에도 클린스만 감독을 영입해놓고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있는 축구협회 역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국가대표 축구 감독의 역할
심지어 최근 클린스만 감독이 글로벌 스포츠 매체 'ESPN'에 패널로 출연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더 큰 논란을 초래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ESPN과 자택에서 화상 인터뷰로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해리 케인 등 슈퍼스타들의 이적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한국대표 선수인 손흥민과 김민재에 대한 언급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유럽축구의 동향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현재 클린스만 감독의 본업인 한국축구대표팀 사령탑이지 해외축구 평론가가 아니다. 아시안컵과 월드컵 예선같은 중요한 일정들이 다가오고 있고 대표팀 성적도 부진한 상황에서 그가 지금 신경써야 할 것은 메시나 케인에 대한 품평이 아니라, 바로 한국 선수들의 동향과 한국축구의 미래였다.
만일 그가 만일 평소에 본업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면 ESPN의 일회성 출연 정도가 큰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클린스만이 월드컵까지 육성하고 관리해야 할 '자신의 선수들'은 대부분 유럽이 아닌 K리그와 한국에 있다. K리그가 현재 한창 시즌중이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과 A대표팀간 선수차출 문제 등 중요한 현안들이 버젓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대표팀 감독이 해외 자택에서 해외축구 논평이나 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가대표 축구 감독의 역할이란 단지 A매치나 국제대회가 있을 때만 벤치에 앉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고 전술을 실험하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철학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이 대표팀 감독의 사명이다. 클린스만 감독의 태도는 한국축구에 대한 책임감과 존중의 부족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클린스만 감독의 리더십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럽파 선수들에 비하여 국내파 선수들은 K리그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대표팀 감독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는 박탈감을 느낄 수 있고, 이는 국내파와 유럽파간의 위화감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클린스만 감독의 행보에 대한 불신과 비판여론이 깊어질수록 덩달아 대표팀 선수들 역시 적지않은 부담을 안게 된다. 그 결과는 결국 클린스만호의 조기 레임덕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더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축구협회의 분명한 입장표명과 함께, 클린스만 감독을 통제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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