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포족' 증가에 관광지 소비 감소 뚜렷…"차라리 늦캉스 간다"

정진호 2023. 8. 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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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집에서 휴일을 보낸 ‘휴포자’(휴가포기자)가 통계로도 드러나고 있다. 부산 해운대ㆍ전남 여수를 비롯해 국내 주요 관광지 모두 방문자 수와 관광소비가 1년 전보다 감소했다. 치솟은 물가로 인해 소비 여력 자체가 줄면서 여름 휴가가 지갑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적은 ‘늦캉스(늦은 휴가)’를 택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주요 관광지 모두 방문자 줄어


19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관광지출액은 3조589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3조6968억원)보다 1076억원 감소했다. 7월은 휴가철로, 통상 관광지출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지만 올해의 경우 4월이나 5월보다도 전년 대비 관광지출액 감소 폭이 컸다. 관광 관련 지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음료 지출은 지난달 1조8826억원으로, 1년 전(1조9216억원)보다 감소했다.

지역별로 보면 지난달 부산 해운대구 방문자 수는 1년 전보다 4.7% 줄었고, 관광소비 감소 폭은 10.9%에 달했다. 전년 같은 달 대비 방문자 수와 관광소비액 감소 폭을 보면 ▶전남 여수 -21.8%, -15.4% ▶경남 통영 -13%, -14.9% ▶충남 태안 -10.9%, -6.5% ▶제주시 -28%, -16.7% 등이다. 국내 주요 관광지역 모두 방문자가 줄면서 수입이 동반 감소한 모양새다. 같은 기간 서울의 관광소비는 0.9% 감소하는 데 그치면서 여행 없는 여름이었음이 드러났다.


“덜 오고, 많이 주문도 안 한다”


부산 해운대상인회 관계자는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 주차장의 지난달 매출액이 지난해와 비교해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그만큼 사람이 많이 안 왔다는 것”이라며 “식당 얘기를 들어보면 관광객이 온다고 해도 예전처럼 푸짐하게 주문하고 나눠 먹는 게 아니라 지갑 사정 때문인지 각자 배만 채울 정도로 조금씩 시키는 게 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강릉중앙시장 상인회 관계자도 “코로나19가 한참이던 때와 비교하면 좀 낫지만 예전만큼 회복은 못 했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국내 관광 수요가 줄어든 데는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해제되면서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코로나로 출ㆍ입국이 제한되던 때보다 늘었을 뿐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적다. 2019년 6월 해외로 나간 내국인 관광객은 249만6000명이었는데 지난 6월엔 177만2000명에 그쳤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의미다.

지난달 온라인 여론조사 기관 피앰아이가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올해 여름휴가 계획이 있다는 응답자는 27%에 그쳤다. 휴가 계획이 없거나 아직 정하지 않은 응답자(73%) 중에서 ‘비용 부담’을 이유로 꼽은 비율이 34.8%였다.


물가 부담에 얇아진 지갑 탓


이처럼 여름휴가에 지갑을 닫게 한 건 물가 부담이 첫손에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를 기록했는데 콘도이용료(12.6%), 시외버스료(10.2%), 해외단체여행비(6.2%), 놀이시설이용료(4.8%) 등의 전년 대비 물가 상승 폭은 그 2배가 훌쩍 넘었다. 외식물가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5.9% 상승했다. 여기에 ‘히트플레이션’(더위+인플레이션)까지 더해지면서 닭고기와 채소류를 중심으로 장바구니 물가까지 급등했다.

지난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361만7000원으로 지난해 1분기(366만4000원)보다 4만7000원 줄었다. 명목상 소득은 소폭 늘었다지만, 물가를 반영하면 1년 전보다 줄었다는 뜻이다. 가구당 흑자액은 105만9000원으로, 1년 전(126만2000원)보다 크게 줄었다. 통상 휴가엔 생활비를 사용하고 남는 돈을 활용하는데 여윳돈이 충분치 않아졌다는 의미다.


"경비 부담 적은 늦캉스 가자"


이에 경비가 많이 드는 여행 성수기를 피해 9~10월에 휴가를 떠나는 이도 많아졌다. 중3 자녀를 두고 있는 손모(48)씨는 자녀의 시험 기간을 피해 가을에 4박5일 여행을 갈 계획이다. 그는 “어디를 갈지 미리 정해놓지 않았다. 국내든 해외든 경비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이른바 ‘가성비’ 여행을 준비 중”이라며 “9~10월이 상대적으로 한산하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주요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는 손씨처럼 늦캉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글들이 속속 올라온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여름 휴가철인 지난달 말보다 징검다리 연휴인 9월 말 추석 연휴와 10월 개천절 기간(9월 28일~10월 3일) 여행 상품 예약률이 약 20% 높았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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