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만난 남자와 여자, 이 영화가 말하는 것

조영준 2023. 8. 1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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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85] 영화 <너의 순간>

[조영준 기자]

 영화 <너의 순간> 스틸컷
ⓒ 영화로운형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사진작가 정후(우지현 분)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안고 있다. 캠핑카 한 대를 이끌고 전국을 돌며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듯 보이지만 그의 시간은 지금도 여전히 그 기억에 묶여 있다. 바다를 향해 조금씩 멀어져 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기억 속 어딘가에 날카롭게 걸려 있기 때문인지, 남겨진 사진 속의 이미지로 정확하게 기억되어서인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홀로 여행 중이던 영(옥자연 분)도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해왔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남겨진 사진 한 장뿐. 그마저도 너무 오래된 날의 증거일 뿐이지만 그 한순간을 붙잡은 채로 살아왔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은 정후의 캠핑카로 몸을 피해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사진을 매개로 그해 여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영화 <너의 순간>은 지난 202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바 있는 작품이다. 당시의 개봉명은 <유령 이미지>였다. 물성으로 존재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진과 그 사진 속의 이미지를 함께 표현한 듯 보인다. 이 타이틀은 2017년 출간된 사진가 겸 칼럼니스트 에르베 기베르의 동명 서적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사진으로 존재하지만 사진만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이미지가 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한 것이다. 두 작품이 공유하는 개념에 가깝다. 그리고 이제 이 작품은 <너의 순간>이라는 이름을 얻어 조금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자 한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보다는 영화 속 두 인물이 사진을 대하는 마음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조금 더 내밀한 감정으로.

02.
영화 속 정후와 영은 모두 떠다니는 인물이다.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과 상황에 따라 흘러 다닌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정후는 자신의 의지에 따른 정박(碇泊)에, 영은은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는 부유(浮遊)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의 출발점만 보더라도 명확히 알 수 있다. 단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고향과 부모의 곁에 자리하지 않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부산에서 태어났어도 어린 시절 일본으로 '보내진' 삶을 살았다. 다시 이야기하면, 한 사람은 돌아갈 자리가 있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그 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버지 상일(이상일 분)의 친구가 운영하는 부산의 한 사진관 역시 그런 정후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다. 유명한 사진작가로 이미 자신의 이름을 알린 정후의 아버지 덕에 남자는 엄마의 사진이 보고 싶을 때마다 이 사진관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단 하나, 손바닥 크기만한 사진 한 장에 모든 기억을 묻고 살아가고 있는 여자와는 같을 수 없는 입장이다. 두 사람의 차이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정후와 영이 공유하고 있는 상실과 슬픔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차이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는 사진을 대하는 지점에 상이(相異)한 부분이 생기게 된다. 압축하자면, 현재를 붙잡는 수단으로 사진을 찍고자 하는 영과 과거를 재생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대하는 정후의 태도 사이의 거리다.
 
 영화 <너의 순간> 스틸컷
ⓒ 영화로운형제
03.
두 사람의 첫 만남을 다시 상기해 보자. 파도가 치는 갯바위 위에 홀로 서 있던 영의 뒷모습을 정후가 자신의 카메라로 몰래 촬영하면서 두 사람은 만나게 된다. 셔터 소리에 의해 영이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사실 정후의 입장에서도 그 촬영은 '몰래'라는 단어보다 '홀린 듯이'라는 단어가 조금 더 어울리는 경우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이 기억하는 엄마라는 존재의 마지막과 닮아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에 대해 영은 처음에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다가와 사진을 지워달라고 하지만 뒷모습 한 장면만 남기게 해 달라는 정후의 부탁을 못 이기는 척 들어준다. 다음날에 자신의 모델이 되어달라는 부탁도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 있는 등대들 배경으로 찍어주세요. 등대들 전부."

이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두 사람의 심리와 과거를 의미하는 메타포를 곳곳에 설치하기 시작한다. 영이 등대에 집착하는 이유는 역시 자신이 부유하고 표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고 높은 파도에 길을 잃은 배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불을 밝히는 존재가 자신에게도 필요했으니까. 앞서 그녀에게 사진이란 현재를 붙잡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을 모델로 삼고 싶다는 정후의 부탁을, 어쩌면 정체조차 알 수 없는 남자의 말을 영이 쉽게 믿게 되는 것 역시 정후의 사진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붙잡고 싶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04.
갯바위와 영의 뒷모습, 그리고 항상 같은 드레스만 고집하는 정후의 태도는 엄마의 기억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같은 가족사로 이어진다. 아버지에 의해 사진을 처음 접했고 배운 것이나 다름없으며, 그의 직업적 성공으로 인해 많은 것을 누렸음에도 그의 존재를 정후가 용서할 수 없는 데에는 역시 엄마가 존재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성공하기 위해 가족을 방치한 대상이자 엄마의 죽음과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인물로 기억하는데, 이는 자신이 사진을 바라보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과거를 재생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영과 맞서는 지점이라면, 철저한 통제와 의도에 의해서만 아름다움이 촬영될 수 있다는 생각은 우연에 의해 좋은 사진이 완성될 수 있다는 아버지의 철학에 맞서는 부분이다. 실제로 정후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나 의도가 아니면 촬영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모델이 되는 대상의 의상까지도 매번 같은 드레스로만 제한하고자 한다. 영화의 제일 처음에서 등장했던 고객이 남자가 입으라고 건넨 옷을 보고 박차듯 자리를 떠난 이유를 이제는 알 것도 같다. SNS 등을 통해 이때까지 그가 촬영해 왔던 샘플 속 다른 인물들과 같은 옷이 그녀에게도 주어졌을 테니까.

문제는 정후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균열이 바로 이 지점, 자신이 홀린 듯이 빠져있는 사진 속의 대상과 그 프레임 바깥에 실재하는 인물의 거리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의 처음 타이틀이었던 유령 이미지의 개념이 활용된다.) 실제로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공간은 사진 속 프레임의 공간과 달리 모든 것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통제할 수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가 모두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진 속의 장면들조차 어떤 우연이 개입되어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결국 사진이라는 것이 빛의 예술이고 그 빛을 조절하는 것이 작가의 능력일 테지만, 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완벽히 제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너의 순간> 스틸컷
ⓒ 영화로운형제
05.
영화의 전체 구조는 액자식 구성에 가까운 모습을 취하고 있다. 시작 지점에서 한 여자(영)의 사진과 노인(남자의 아버지)의 사진을 뒤적이던 정후의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에 놓인 아버지의 귀천(歸天) 이후 발인을 앞둔 날 밤에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장면과 이어진다. 물론 두 장면은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다. 처음의 장면이 남자가 가진 문제를 처음 드러내고 이야기를 펼쳐내는 페이지라면, 마지막의 장면은 모든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장(章)에 해당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사진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하던 영이 정후의 아버지를 찾아가면서 두 사람은 크게 다투게 되지만 결과적으로 여자가 이 두 장면 사이에 놓이게 된다는 부분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정후는 아버지의 작업실 안에 남겨져 있던 필름을 통해 자신의 기억에 왜곡된 부분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말해왔던 '통제'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통제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통제였음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현실과 프레임 사이의 균열 사이에 갇혀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영의 행동, 아들이 만들어 놓은 아버지와 자신 사이의 결계를 깨고 들어가는 과정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영이라는 인물이 두 남성을 화해시키기 위해 활용되는 소비적인 인물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영은 두 사람 사이에서도 존재하고 있지만, 처음에서 이야기했듯이 정후와의 관계 사이에서도 자신의 모습으로 오롯이 서 있는 인물이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영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그녀에게 사진이 잃어버린 공간과 시간을 붙잡아 두는 대상임을 더욱 명확히 하며 사진이라는 매개의 역할이 단지 하나로만 규정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각자의 사정과 환경에 따라 그것을 대하는 마음과 의미는 모두 다를 수 있으며, 그것은 정후와 영 두 사람의 사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영화 <너의 순간> 스틸컷
ⓒ 영화로운형제
 
06.
"우리는 모두 뭔가를 잃어버렸다. 어떤 사진도 잃어버린 시간을 불러올 수는 없었다."

영화 전체가 마치 하나의 사진과도 같은 느낌이다. 하나의 이미지로 간략하고 직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길고 복잡한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사진. 감독은 이 개체가 갖고 있는 여러 특징적인 부분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개인의 고독과 신념 등의 존재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타인을 오롯이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함께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 그 이야기를 모두 가늠할 수 없듯이 우리 모두의 삶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시간을 조금 더 가까운 자리에서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할 때, 그제야 조금은 그의 순간에 닿을 수 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부분이지만, 이 이야기가 모두 끝난 뒤에도 두 사람 정후와 영에게는 각자의 사진이 또 남게 될 것이다. 그중 어떤 사진은 또 다른 과거를 재생하기도 할 것이고, 내일의 현재를 붙잡는 매개가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사진 몇 장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 찍히기도 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우연에 의해 완성되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은 하나의 장면이 닿을 수 있는 그런 여러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남기기 위해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모두가 떠난 뒤에도, 내가 혼자 남겨지고 난 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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