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으로 떠난 주인공... 이 드라마의 놀라운 대처
[김성호 기자]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국 현지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전 세계 수출계약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렇게 나아간 드라마가 세계 각지에서 대박을 쳤다. 한국도 마찬가지, 케이블채널 OCN 방영임에도 평균 2%를 훌쩍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청률은 갈수록 올라 마지막회에선 순간시청률이 5%를 넘어섰다. 외국드라마 역사상 최고 시청률이었다.
내로라하는 스타가 출연하지도,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이지도 않은 작품이기에 의외의 흥행이었다. 영화 한 편의 평균 제작비가 1억 달러를 훌쩍 넘어선 시기에 13부작 사극을 찍어내며 7000만 달러를 쓰지 않았으니 저예산이라 해도 좋을 작품이었다. 비교적 몸값이 싼 영국과 호주 출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들을 적극 캐스팅한 덕이었다. 엑스트라 동원 대신 저렴한 CG영상을 많이 활용했음에도 작품성엔 별 지장이 없었다.
▲ 스파르타쿠스: 투기장의 신들 포스터 |
ⓒ starz |
주인공의 투병, 그로부터 탄생한 역작
첫 시즌의 성공은 후속작 논의로 이어졌다. 그러나 모든 게 순조롭진 못했다. 호사다마라고, 악재가 닥친 것이다. 두 번째 시즌을 위한 시나리오가 준비될 즈음이었다. 주인공 스파르타쿠스를 훌륭히 연기한 앤디 위필드가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한국에선 방송인 허지웅의 투병으로 널리 알려진 질환이었다. 위필드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두 번째 시즌에 앞서 나온 <스파르타쿠스: 투기장의 신들>은 이 같은 환경에서 제작된 스핀오프물이다. 주연배우가 일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시리즈를 이어가기 위해 고육지책을 짜낸 것이다. 주변인을 주인공으로 삼는 스핀오프로 위필드가 일어날 때까지 버티겠다는 심산이었다. 시리즈의 마지막회차에 위필드를 등장시키면 다음 시리즈로의 전환도 순조로울 터였다.
▲ 스파르타쿠스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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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배경은 첫 시즌으로부터 수년 전의 카푸아다. 훗날 바티아투스 양성소의 주인이 되는 퀸투스는 아직 아버지 티투스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애송이다. 아들이 평민인 루크레티아와 결혼하는 걸 반대했던 아버지는 끝내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후 악화된 건강으로 따뜻한 남쪽으로 요양까지 가게 되니 양성소는 퀸투스 부부가 맡아 운영하게 된 것이다. 그래봐야 카푸아에선 이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양성소지만 퀸투스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자족하는 아버지와 달리 야심만만한 청년이 아닌가.
퀸투스의 곁엔 아내인 루크레티아와 친구 솔로니우스가 있다. 저를 우습게 보는 이들에 대항하고, 아직 저를 믿지 못하는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하여 퀸투스는 제가 믿는 이들과 함께 양성소 운영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 스파르타쿠스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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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오프의 교본이 된 역대급 사극
<투기장의 신들>은 성공한 드라마의 스핀오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본 같은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다소 떨어진 조연들에게 맛깔나면서도 완결성 있는 이야기를 입히고, 그로부터 전체 이야기에 깊이를 불어넣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주인공을 둘러싼 캐릭터 하나하나에게 사연을 불어넣고, 그로부터 극 전체를 흥미롭게 하는 것이다.
스핀오프가 잘 쓰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캐릭터가 잘 짜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평면적인 주변인물에게서 한 편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본 이야기에선 그저 조연으로 지나치는 인물이지만 이들에게도 보여질 만한 삶이 있었음을 이 드라마는 일깨운다. 챔피언이 되어도 무엇 하나 소유할 수 없는 노예의 삶이라거나 아버지와 다른 기질을 가진 아들의 거듭 좌절되는 열망 따위의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로운가 말이다.
▲ 스파르타쿠스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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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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