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현일 "국민은 달려가는데 정치가 못 따라가고 있다…아노미 상황" [4류 정치 청산 - 연속 인터뷰]

정도원 2023. 8.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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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시정·국정을 두루 경험한
민주당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
"탄탄한 실력으로 검증받은 아래로
부터의 인물 발굴해야 공천혁신"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1995년 '베이징 발언'으로부터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과연 그 사이에 우리 정치는 4류에서 조금이라도 랭크가 올랐을까. '헌정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1대 국회의 모습을 보며, 일말의 기대마저 내려놓는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과연 우리 정치, 우리 국회, 우리 정당은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야 '4류 정치'를 청산하고 선진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데일리안은 '4류정치 청산'을 주제로 하는 연속 인터뷰를 통해 그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열한 번째 순서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국회 보좌관·서울시 정무보좌관·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에 영등포구청장까지 20년째 현실정치에 몸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채현일 전 구청장을 만났다.

구청장 시절 '영등포의 50년 숙원'
영중로 불법노점 8개월에 해결해 주목
"기업형으로 10개씩 운영하는 분도…
'38만 구민 응어리' 흔들림없이 해결"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내년 총선 서울 영등포갑 출마를 선언한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이 영등포구 관내의 한 카페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채현일 전 구청장은 지난달 31일 내년 총선 서울 영등포갑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민주당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151명의 기초단체장을 당선시켰으나, 지난해 정권교체 직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63명이 당선되는데 그쳤다. '바람'으로 떨어진 인물 중에서는 지역에서 "아깝다"는 평을 듣는 경우도 있다. 채 전 구청장이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채 전 구청장의 재임 중 업적으로는 수십 년째 불법 노점으로 뒤덮여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서는 걸을 수 없었던 영등포 역전 영중로를 '탁 트인 거리'로 정비한 게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 영중로 정비 직후 기초단체장인데도 중앙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을 정도다. 기초단체장 출신 중에 처음으로 총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게 된 자신감의 배경에는 이러한 '성과'가 있다.

영중로 정비 얘기를 꺼내자 채 전 구청장은 "수십 년 동안 별다른 제재 없이 영업했는데, 노점상들이 반발했다"며 "담당하는 부서는 가로경관과인데 승진도 되지 않고 근무평정도 좋지 않아 직원들이 선호하지 않고, 승진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로 가지를 않아서 직원들의 의욕이 떨어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수십 년 동안 되지 않았던 '50년 숙원 사업'이 본인이라고 손 대자마자 스르륵 풀린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어 "(가로경관과 직원) 그분들께 갔더니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고, 이것을 손대면 내게 어떤 해악이 올 것인지 안되는 이유만 설명하더라"면서도 "취임 여론조사에서 '영등포역앞 불법노점 정리'가 압도적 1위였을 정도로 38만 구민의 응어리였는데, 어떻게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채 전 구청장은 '기피 부서'였던 가로경관과를 '핵심 부서'로 재탄생시켰다. 일을 제대로 하면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와 보상은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가로경관과가 도로과 등 여러 유관부서와 협의하고, 기획과·홍보과·총무과 등 기존 핵심 부서들의 지원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반발도 더욱 노골화 됐다. 채 전 구청장은 "노점을 정비하려는 과정에서 맨 처음에는 회유, 그 다음에는 저항, 심지어 협박과 압력도 있었다"며 "당에서도 '우리가 서민을 위한 정당인데 서민이 하는 노점을 손대면 어떻게 하느냐'는 연락을 해오는 분들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런데 막상 노점상들의 재산조회를 해보니 막연한 인식과 현실의 차이는 컸다. 채 전 구청장은 "노점을 하는 분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분들이 많더라"며 "기업형으로 10여 개를 운영하는 분들도 있어서, 어려우신 서민들이 (노점을) 한다는 인식과는 차이가 많았다"고 전했다.

정비 과정에서 부부 재산 합산 4억 원 미만인 20여 개의 노점만 합법화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보호하는 한편, 나머지 80여 개의 노점은 평화적으로 정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채 전 구청장은 이들을 상대로 "여유가 있는 분들은 정상적으로 상행위를 하시라"며 "영중로에 가게를 내고 있는 분들은 수억 원의 권리금과 수백만 원의 월세를 내는 분들인데, 노점이 가로막고 있으니 장사가 되겠느냐"고 거듭 설득했다.

결국 '영등포의 50년 묵은 숙원'이라 불리던 불법 노점 문제가 8개월만에 기적적으로 해결되기에 이르렀다. 채 전 구청장은 "노점이 100여 개가 있으니 비가 오면 다니지를 못할 지경이었고, 버스 탈 때 '전쟁 수준'이라 사람들이 위험한 수준이었다"며 "8개월만에 흔들림 없이 해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구민들의 바람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영중로 정비에서 대화의 주제는 제2세종문화회관으로 옮겨갔다.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 강남권의 예술의 전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제2세종문회회관'을 영등포에 유치해 '문화의 삼각벨트'를 이루려는 채 전 구청장의 구상은 사실상 확정 단계에 이르렀다가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돌연 엎어졌다.

이와 관련, 채 전 구청장은 "20년 동안 방치됐던 기부채납 구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는 하지만, 그 대신 서울시가 수천억 원의 건립비를 부담하고 시설유지관리비 전액을 부담하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제적 이득인데 재검토가 된다니까 황당할 뿐"이라며 "어떤 정치적인 해법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고, 나중에 차차 준비를 해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선출직 경험 없는 대통령, 의원 경력
없는 대선후보…국민의 정치불신 표현
국민은 엄청나게 빨리 달리고 있는데
정치가 4류다.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이 구청장 재임 당시 영등포역전 영중로의 불법 노점 장비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데일리안DB

채현일 전 구청장은 2004년 총선으로 구성된 17대 국회 때부터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몸담았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오랫동안 현실정치를 지켜본 채 전 구청장에게도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0선' 여야 대선후보와 당대표의 출현은 미증유의 영역이었다. 그는 이를 우리 국민들의 기성 정치권을 향한 불신과 정치개혁 열망의 표현으로 해석했다.

임기를 마쳐가고 있는 21대 국회를 향해 채 전 구청장은 "총선 7개월을 앞두고 여야를 합친 21대 국회가 전체적으로 잘했느냐 본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상당히 실망을 했을 것"이라며 "정치 불신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본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아울러 "선출직 경험 없이 평생 동안 검사만 했던 사람이 출마하자마자 대통령이 되는 정치현실, 그리고 우리 민주당도 의원 경력이 없는 사람을 대선후보로 내세웠고, 더 나아가서는 무관의 30대 청년이 당대표가 됐다"며 "우리 국민들이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정치개혁을 바라는 열망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채 전 구청장은 이같은 상황 속에서 갈등의 조정, 대화와 타협이라는 본연의 '정치'가 실종돼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 국민들의 변화의 속도를 '4류'에 머물고 있는 정치가 따라잡지 못하면서, 일종의 아노미 상태가 초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채현일 전 구청장은 "정치가 사라졌다. 정치인의 대표는 대통령인데, 그분이 정치를 부정하는 존재론적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며 "전쟁 중의 적과도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만나서 대화할 때는 대화하는 법인데, 대통령이 야당 대표도 만나지 않는 이같은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다"고 표정을 굳혔다.

이어 "'검찰' 표시가 된 파란 상자만 TV에 연일 나오고 있다. 압수·수색·체포·구속… 조그만 사건만 터져도 수사한다고 한다"며 "잼버리 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현안에 경찰·검찰·감사원·사정기관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없다. 이 정도인 적은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산업화·민주화 이후 국민들은 엄청나게 빨리 달려가고 있는데 정치가 4류다. 정치가 못 따라가고 있다. 아노미"라며 "옛날 같은 경우에는 혁명이 일어나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느냐. 국민들께서 선거를 통해서, 표를 통해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청장 시절 성과와 실적을 바탕으로
내년 총선 서울 영등포갑 출마선언
"'탁 트인 영등포' 연장선상서 '탁 트인
정치'로 영등포갑 새로이 해보이겠다"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이 영등포역앞 영중로 일대의 불법 노점을 정비한 직후, 보도 청소 작업을 직원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안DB

여야 모두에서 서로 '수도권 위기론'을 말하는 이 때, 채 전 구청장도 내년 총선의 승패는 서울·수도권에 달려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그 중에서도 자신이 출마를 선언한 서울 영등포갑은 '표심의 리트머스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바라봤다.

채현일 전 구청장은 "내년 총선에서 여야가 가장 치열하게 싸울 곳이 서울"이라며 "지난해 대선에서 0.73%p를 졌는데, 서울에서 30만 표를 진 것이 그대로 전국 선거 패배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수도권에서 상당히 팽팽한 것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민주당이 지고 있는 것"이라며 "20대 청년들과 중도층의 표심이 예전 같지 않아 이런 것이다. 서울의 청년들과 중도층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영등포갑은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사통팔달의 철도망이 형성돼 예로부터 호남·충청·영남 전국팔도 유권자가 모여있는 곳"이라며 "인구비로 봐도 청년과 중장년·노년 세대가 골고루 분포해 있어, 영등포가 전국 선거에서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수 있고 총선의 바로미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서울 영등포, 그 중에서도 원도심에 해당하는 영등포갑에서 채 전 구청장은 자신이 해야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채현일 전 구청장은 "여의도는 과거 비행장이 있었던 자리에 국회와 방송국·금융특구를 들이면서 시범아파트를 지어 공동주택단지를 만들어보는 등 어떻게 보면 지금의 '신도시'를 처음 만들어본 곳"이라며 "반면 갑구는 1899년에 영등포역이 생겼으니까 구한말 이래로 영등포의 원도심인데, 화려했던 구도심에 이제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내가 구청장에 취임하고나서 '탁 트인 영등포'를 만들었다. 그러한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탁 트인 정치'로 낡고 노후한 영등포갑을 새롭게 해보이겠다"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정치가 아니라, 탄탄하게 준비되고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성장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정치를 보여드리겠다"고 자신했다.

이런 측면에서 채 전 구청장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정치혁신·공천혁신의 중요성에도 방점을 찍었다.

채현일 전 구청장은 "어느날 갑자기 셀럽이 된 유명인, 저명인사가 정치를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며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정치의 시대다. 지방자치·지방분권의 시대에 지방정부 출신들이 새롭게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새롭게 변화와 혁신한 모습으로 승리를 하려면 결국은 '공천 혁신'"이라며 "실력과 컨텐츠를 갖춘 검증된 인물, 지방정부에서 탄탄한 실력으로 검증을 받은 채현일 같은 사람, 이런 인물들을 새롭게 발굴해서 내세우지 않으면 수도권, 특히 서울 선거에서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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