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의 K컬처] “무결점이 완벽을 만든다는 환상”

2023. 8. 1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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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에 민감한 한국문화 ② 연예인의 품격
김치, 강남스타일, BTS, 영화 기생충 등 일과성 이벤트들에 머물렀던 세계의 관심이 이제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K컬처로 대변되는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현상들, 그리고 그들의 명과 암을 사회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반추해 봄으로써 한국문화의 본성을 재조명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또 리젝티드(rejected)를 먹었다. 논문을 리뷰하는 인간들은 내 연구의 가치를 애써 평가절하한다. 글이 이상하다는 둥, 실험에 치명적 오류가 있다는 둥, 내가 통계를 잘 모른다는 둥, 그들이 열심히 써준 리뷰글에는 비난이 쏟아진다. ‘그래, 너 잘났다’, ‘이 인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구먼’으로 시작해 곧 ‘아무래도 난 먹물 할 체질이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대학원을 가는 게 아니었는데…’ 등 원초적인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벌써 십여 년 넘게 교수 생활을 하고 있건만, 특히 이른 오전에 받는 게재 불가 메일로 하루를 망치는 날이 종종 있다. 역설적이지만, 나도 다른 이들의 논문을 읽고 자주 그런 리뷰를 쓴다. ‘어디 하나 걸리기만 해라’하는 심정으로 글을 읽을 때도 있다. 실험 설계나 논리의 흐름에 명백한 오류를 찾아내는 경우, 게재 불가 판정을 내림에 있어 저자에게 덜 미안하기도 하고, 주로 내 결정에 대한 근거를 밝히면 되므로 리뷰를 쓰는 일도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학계에서는 과학적 엄밀성을 이유로 그 누구의 어떤 연구도 비판의 대상이 되며, 이를 통과해야만 학자들만 아는 좁은 지면을 통해 그나마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러면 어떤 연구들이 출판될까. 물론 기존의 이론체계를 뒤엎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새로운 발견, 웬만한 사람은 구할 수 없는 데이터 등이 빛을 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수는 많지 않다. 논문 대부분이 출판에 이르는 이유는 치명적 결함이 없거나, 비판할만한 요소가 적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잘나서가 아니라 못나지 않아서 통과표를 받는 구조다. (물론 학계의 논문출판 과정에 대한 이 같은 묘사는 아직 학자로서의 경험이 일천한 필자의 사적 견해를 포함하고 있으며, 따라서 학계의 지배적인 출판문화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요즘 한국문화가 이와 유사하다. ‘걸리면 죽는다’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감시하고 있는 듯한 싸늘함, 어떨 때는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시쳇말로 ‘틀면 나오는’ 유명 인사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털끝만한 흠결이라도 공개되는 날엔 수년간 힘겹게 쌓아온 커리어가 하루아침에 녹아내린다. 중학교 때 같은 반 학생을 때려서, 고등학교 때 학폭위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어서, 혹은 일진 행세를 하며 누군가를 왕따시켰다는 이유로 대중으로부터 버림받는 연예인들이 부지기수다. 잠시 활동을 중단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남은 삶을 일반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해자가 대중의 인기를 누리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꼴을 그저 앉아서 보고만 있기는 어려울 게다. 미디어에서 그들을 볼 때마다 잊고 싶던 그 기억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될 테고, 또 그때마다 학교에서 배웠던 인과응보의 룰을 비웃는 듯한 현실에 분노할 것이다. 가해자들의 당시 비행에 대해 폭로하는 행위는 피해자 자신을 살리려는 방어기제이며 이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는 ‘지금’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법을 저지른 공인을 처벌하거나 낙인찍는 것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그깟 시간이 무슨 대수냐고, 그것이 과거든 현재든 비행은 비행이니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답해보라. 공인의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 대중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효기간은 도대체 몇 년인가. 당신을 생각하며 매일 밤 이불킥을 해야 하는 이가 이 땅 위에 단 한 명도 없을까. 연예인에게 일반인보다 더 강도 높은 윤리의식을 강제하는 것은 타당한가.

내가 신인 연예인이라면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일 것 같다. 매일 밤잠을 청하기 전 어렸을 적 일들을 떠올리며 당장 찾아가 미리 사과해야 할 친구나 지인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내일 당장 누군가가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일을 인터넷에 폭로할지 모른다. 폭로의 전조가 보인다면 이를 어떻게 막을지, 막지 못한다면 내 과거를 깔끔하게 인정할지, 잡아뗄지, 역공을 가할지 기획사 사장님과 깊게 상의해봐야 한다.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힌 나는 연예인으로서의 본업에 몰입하기 힘들다. 푸념 섞인 의문은 계속된다. 대중은 나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와 목소리를 좋아했던 것 아닌가. 나는 왜 과거의 일들로 스크린 뒤에 숨어 이기죽거리고 있을 낯모르는 이들에게 욕을 먹어야 하는가. 당신들은 그때 거기에 없지 않았나. 그대들은 진정 나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나.

우리 곁에는 착한 연예인들이 참 많다. 우리가 거르고 걸러 윤리성을 인정받은 인격의 끝판왕들만이 연예계에 남았기 때문이다. 아직 검증이 덜 된 신인들은 무죄 추정의 원칙(innocent until proven guilty)에 따라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하루하루 착한 마음과 자세로 방송에 임한다. 마치 무대에서 의자가 하나씩 빠질 때마다 탈락자가 나오는 놀이에서처럼 우리가 미디어에서 만날 수 있는 연예인들의 수는 점점 작아진다. 빼어난 재주와 실력을 갖추었어도 과거의 비행 한 건이면 더 이상 그들의 춤과 노래, 연기를 보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대상과 분야에 관계없이 인간성을 최상위의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실력이 출중한데 인간성‘도’ 좋아서가 아니라 인격이 훌륭한데 실력‘도’ 좋아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노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겸손하지 못한 가수, 배꼽 빠지게 웃기지만 막말 때문에 구설이 많은 희극인, 귀신같이 공을 잘 다루지만 고등학교 후배들을 때린 적이 있는 스포츠 선수는 대중매체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과거사가 새롭게 밝혀져 출연 중인 시리즈물에서 통편집 당하는 연예인들도 많다. 이미 촬영을 마친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당사자가 나오는 장면을 골라내거나 모자이크 처리하여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만든다. 어찌할 수 없이 주어진 방송 규정을 따라야 했을 담당 피디와 편집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범법자를 두둔하려거나 그들에게 가해지는 처벌이 부당하다고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법적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그들을 욕하고 미워하는 것은 오로지 미디어 소비자 개인의 자유이다. 필자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엄격한 윤리기준이 직무와 관계없이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고, 이것이 미디어를 통해 준(準)제도화되는 듯한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주위에는 착한 아니, 착하기만 한- 정치인들도 많다. 지난 20대 대선에서도 유권자들은 공약이나 정책으로 후보자의 정치적 자질과 능력을 판단하지 않았다. 특히 투심을 잃은 중간자들은 그저 둘 중 누가 덜 더럽고, 덜 파렴치한지를 가려내는 데 전념해야 했다. 오십 평생 살아오며 신용카드를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거나, 군 면제를 받은 아들의 엑스레이 사진을 품에 지니고 다니던 정치인도 기억난다. 이런 기이함을 단지 그들의 용의주도함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한국인의 정서에 밝고 이를 셈하여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평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인간이 덜되었다는 이유로 한국은 응당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재능들을 너무 쉽게 내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돌아봤으면 한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김상연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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