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든 ‘식량 청구서’… 작년 7억명 굶었다

김지애 2023. 8. 1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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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식량위기 시대
3苦에 고삐 풀린 ‘먹거리 물가’
빈곤국 최악의 기아 위기
게티이미지뱅크


아시아 쌀 가격이 약 1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오렌지 가격도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식량 가격이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상기후, 전쟁, 식량안보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식량 위기가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9일(현지시간) 태국쌀수출협회(TREA)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 쌀 가격의 기준이 되는 태국산 백미 ‘5% 도정 쌀알’ 가격이 이날 t당 648달러(약 85만4000원)를 기록했다.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지난 1년 동안 가격이 거의 50% 상승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쌀 가격이 급등한 이유는 엘니뇨로 강수량이 급감하면서 산출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태국 당국이 농부들에게 물이 덜 필요한 작물을 심도록 촉구하면서 공급이 줄어든 탓도 있다.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이자 전 세계 쌀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인도가 지난달 자국 쌀 가격 상승세를 진정시키고자 비(非)바스마티 백미 수출을 금지한 영향도 있다.

오렌지 선물 가격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CNN이 이날 전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상품선물 거래소인 ICE(대륙간거래소)에서 오렌지주스 선물 가격은 지난해 8월 파운드당 1.81달러에서 9일 3달러까지 올랐다. 미국 플로리다주가 허리케인과 한파 피해를 보면서 오렌지 작황이 악화한 탓이다.

설탕 선물 가격도 지난 4월 파운드당 26.83센트까지 상승, 2011년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설탕 선물 가격은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4월에 비해서는 다소 떨어졌지만 올해에만 약 20% 상승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는 사탕수수 주요 생산 지역인 인도에서 지난 6월 강수량이 적어 공급량이 줄어든 데다 인도가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설탕의 양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쇠고기가 저렴한 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도 가뭄으로 목초지가 황폐해진 탓에 쇠고기 가격이 급상승했다. 폭염과 가뭄이 겹친 남유럽에서는 올리브유 가격이 1년 전의 2배 이상으로 치솟고 있다.

이상기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일부 국가의 식량안보 정책 탓에 전 세계적으로 식량 공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지난 7월은 세계에서 가장 더운 달을 기록했다. 중국 등에서는 폭염이 나타나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했으며, 남부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산불이 맹위를 떨쳤다. 기상예보관들은 지구가 온실가스 배출과 엘니뇨의 재발로 인해 향후 수년 동안 이례적으로 더워지는 기간에 접어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도 등 최대 식량 수출국이 식량안보를 위해 수출을 규제하는 것도 위협 요인이다. 피에르-올리비에 구앙샤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는 “인도 정부의 쌀 수출 금지 조치로 인해 쌀 가격이 상승할 것이며, 올해 전 세계 곡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약 15%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무역 연구기관인 세계무역경보(GTA)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식품 수출에 대한 규제 또는 세금 인상 건수는 지난해보다 62%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176개의 수출규제가 식품, 사료 또는 비료에 적용된다.

이 같은 식량안보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지역 소비자를 식품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정부가 완화하려는 글로벌 식량 부족 유형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지난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유엔 식량 시스템 정상회담에서 각국에 보호주의를 거부하고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더 개방적인 무역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가 세계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식량 공급을 막은 것도 가격 폭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농산물의 해상 수출을 허용한 흑해 곡물 거래를 철회했다. 이 탓에 식물성 기름 가격이 급등하면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3.9로 전월(122.4)보다 1.3% 상승했다.

운송, 공급 등 비농업 비용이 증가하는 것도 식량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지속적인 가뭄으로 파나마 운하, 라인강 등 주요 운송 경로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화주들은 운송량을 줄이거나 다른 운송로를 찾고 있다.

NYT는 세계 식량 가격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상이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특히 이 같은 급격한 식량 가격 변동이 소농과 저소득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엔에 따르면 식량 공급 위기로 지난해 7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직면했다. 24억명은 일 년 내내 충분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에 접근할 수 없는 처지다.

조지프 글라우버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 수석 연구원은 “높은 쌀 가격은 특히 아시아의 주요 쌀 소비국들의 가난한 가정들의 식량 인플레이션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쌀은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 국민의 총 칼로리 섭취량의 60~70%를 차지한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 사무차장은 지난달 러시아가 흑해 곡물 협정 종료를 선언한 직후 “곡물 가격의 급등은 잠재적으로 기아를 위협하고 수백만명에게 더 나쁘다”며 “일부는 굶주릴 것이며 많은 사람이 이러한 결정의 결과로 사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69개국에서 약 3억6200만명이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의 아리프 후사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부채가 큰 국가의 경우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금리도 상승하고 있어 곤경에 빠질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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