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독서 붕당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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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朋黨政治)'라 함은 조선 중기에 나타난 국가 운영의 한 형태로, 뜻이 다른 세력끼리 당을 나눠 서로 논쟁하며 정치하는 것을 말한다.
먼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으니 작심하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자 한다는 건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 오늘도 역시 책 얘기를 하겠다.
이에 B는 세상엔 책이 많으며 지식도 빠르게 변하기에 자기개발서처럼 잘 정리된 책으로 되도록 효율적인 독서를 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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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朋黨政治)’라 함은 조선 중기에 나타난 국가 운영의 한 형태로, 뜻이 다른 세력끼리 당을 나눠 서로 논쟁하며 정치하는 것을 말한다. 먼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으니 작심하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자 한다…는 건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 오늘도 역시 책 얘기를 하겠다.
모든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책이라는 물건을 다루는 가게야말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사람마다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읽는 목적과 방법도 천차만별이라 독서 모임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 내용과는 별개로 읽기라는 근본적인 행위를 가지고도 충분히 논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안다. 헌책방은 자주 그런 논쟁이 벌어지는 장소다. 딱히 독서 모임이 아닌데도 가끔은 서로 모르는 손님들끼리 ‘독서 붕당’으로 갈려 목소리가 높아지곤 한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에는 한 손님이 우리 가게에서 책을 둘러보다 고전 분야를 따로 모아 둔 책장이 있는지 내게 물어본 게 발단이었다. 그를 A라고 하자. A는 동서양의 숱한 고전이야말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조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또 다른 손님 B가 끼어들었다. B는 고전이 좋긴 하지만 대부분 분량이 너무 길고 지루한 게 단점이라고 했다. 그는 200쪽 안팎의 자기개발서를 읽으면 금방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왜 1000쪽이 넘는 ‘모비 딕’이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따위의 책에서 찾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비꼬았다.
이 말은 당연히 A의 심기를 건드렸다. A는 고전을 읽어야 지혜로워지고 자기개발서는 가벼운 지식만 있을 뿐이라고 반론을 펼쳤다. 이에 B는 세상엔 책이 많으며 지식도 빠르게 변하기에 자기개발서처럼 잘 정리된 책으로 되도록 효율적인 독서를 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에서 중론을 펼친 손님이 한 명 더 등장한다. C는 고전으로 배울 수 있는 것과 자기개발서로 습득 가능한 부분이 각각 있기에 균형 있게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A, B는 잠시 화해하는 분위기가 됐다. 그러나 이어서 C가 균형 있는 독서를 위해서는 무슨 책이든 많이 읽어야 한다며 전자책 옹호론을 내놓자 평화는 깨졌다. A, B는 전자책은 진정한 의미의 책이 아니라며 한마음으로 C를 공격했다. C는 두꺼운 고전을 맨날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냐고 A에게 물었고 이때는 B와 동맹이 됐다. 이에 A가 책의 지혜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지적하자 C도 거들었고 이번엔 B가 수세에 몰렸다.
조선시대 붕당정치에 버금가는 이런 독서 논쟁을 보고 있으려니 나는 중간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난처할 뿐이었다. 결론은 허탈하게도 세 사람 모두 책을 한 권도 사지 않고 갔다는 거다. 붕당이고 정치고 다 좋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책방 주인장 처지에서라면 누가 됐든 일단은 책을 사 주는 사람 편에 서고 싶은 심정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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