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생명의 감수성을 잃어버린 사회
지난 3일 1명이 숨지고 13명이 부상당한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 현장인 경기 성남시 서현역은 내가 평소 출퇴근하는 곳이다. 사건 당일에도 지방 출장을 가지 않았더라면 퇴근길에 그곳을 지났을 것이다. 범인이 질주한 차에 치이고 그가 휘두른 칼에 찔린 피해자들은 바로 내 이웃이고, 내 가족이 그 피해자였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최근 서울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과 대전에서 제자가 학교를 찾아가 스승에게 칼을 휘두른 사건을 비롯해 살인예고 글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국민이 공포에 떨고 있다. 집 나서기가 무서울 지경이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해온 대한민국의 치안은 어디로 갔는가.
정신질환자 사법입원제 도입,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 도입, 공중협박죄 신설 등 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해법들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엄벌 정책만으로는 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 강력범죄의 근저에는 사회적 고립, 좌절된 욕망, 경제적 불안정 등 다양한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20여년 전부터 무차별 살상범죄를 겪어온 일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 법무성은 2013년 일명 ‘도리마(길거리 악마)’ 무차별 살상범죄자 52명의 범행 동기 등을 기록한 ‘무차별 살상사범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법무성은 “범인의 공통적 특징은 생활에 대한 희망이나 의욕을 잃고, 그로부터 생각이 극단적 방향으로 편중되면서 좁은 시야에 의한 생각에 사로잡혀버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사회안전망 확충과 고립된 시민들과 함께하는 자원봉사자 모임 지원 등을 통해 공동체성이 결여된 사회·문화·경제적 토양을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버렸다. 대규모 인명 사고가 발생해도 안타깝다고 생각할 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근본적인 성찰이 없다. 15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대표적이다. 올여름 14명이 사망한 청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생명이 숨진 사고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는 국가의 존재 이유다. 일반 국민들도 희생자들이 내 이웃이고, 나도 잠재적 피해자라는 생각으로 공감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낮은 생명 감수성은 최근 사라지는 영아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소중한 생명을 키우기 어렵다는 이유로 영아들을 버리고 죽이기까지 한다. 불가피한 이유로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 국가가 책임지고 양육해야 한다.
예수님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다. 한 사람의 목숨도 소중하거늘 그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 사회는 공동체성이 있는 것일까. 성경은 “우는 이들과 함께 울라”(롬 12:15)고 했다. ‘악의 평범성’을 주장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와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가 생명의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공감과 사랑에서 비롯된다.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는 “당신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며 창자가 끊어짐을 느끼셨던 예수님의 마음으로 우리도 피조물이 당하는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함께 공감하는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비박스 홍보대사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도 “인간의 생명은 존귀한 것이다. 특히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생명운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먼저 너희 크리스천들이 분노하고 좌절한 이들을 작은 형제로 받아들여 사랑으로 보듬고 치유하고 있는지 물으실 것이다.
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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