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도시’ 속 예수] 거의 다 잊어버리더라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한 번 책을 읽고 세세한 그림뿐 아니라 단어 하나까지 모두 기억하는,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면 당신의 기억력은 평균치에 못 미칠 수도 있다. 어차피 읽어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굳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것 말고 다른 활동을 통해 시간을 더 효율성 있게 활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1981년 젊은 목사 존 파이퍼는 매주 수많은 시간을 TV 시청에 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고작 몇십 분에 지나지 않는 주일학교 성경공부 시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는 당시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거룩한 만남의 가치를 간과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그 만남이 내포한 ‘시간의 양으로 측량할 수 없는 순간’과 ‘지속적이고 변화시키는 통찰의 능력’을 바라보라는 촉구였다.
파이퍼 목사는 독서를 예로 들었다. “나는 읽은 책의 99%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책 전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인생을 바꾸는 것은 책 전체가 아니라 문장입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처한 현실이나 진실을 새롭게 보도록 하는 통찰력, 어떤 강력한 도전을 받는 것, 또는 사라지지 않던 오랜 딜레마에 대한 어떤 해결책입니다.”
읽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게 핵심이 아니다. 나를 통찰력으로 놀라게 하는, 잘 짜인 한 문장은 나머지 99%를 얼마든지 고생해서 읽도록 만들 충분한 가치를 가진 축복이라는 게 파이퍼 목사의 말이다. 하지만 기억할 점이 있다. 인생을 바꾸는 새로운 통찰력을 주는 문장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머지 99%의 독서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일 설교 요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교인을 만날 때면 목사는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요점을 기억하도록 하는 게 설교의 목표인가. 교회를 나서는 교인이 하나의 통찰이나 문장 또는 예화만 기억해도 의미 있는 설교가 아닐까. 목회자가 본문을 다루는 방식, 즉 그 의미를 주의 깊게 설명하고 좋은 예화로 장식하고, 더 넓은 기독교 가르침의 세계에 비추어 보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향해 나아가도록 설교를 다듬는 모든 과정은 보이지 않는 형태로 교인들의 영적 생활을 구성한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오스틴 카티는 “뇌에 단지 정보를 업로드하는 것이 독서의 주된 이유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휴대전화 사진 앱 필터를 그 비유로 들었다. “독서의 핵심 목적은 읽은 내용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렌즈를 꾸준히 다듬는 것이다. 읽은 것의 90%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읽은 내용은 우리 속에 들어온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내 속에서 자리를 잡았는지도 의식하지 못하는 깊이로 말이다. 책은 그렇게 우리의 필터를 강화한다.”
CS 루이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평생 책을 사랑하며 읽은 사람이라도 작가 덕분에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크게 확장되었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자기 자신으로만 만족하는 사람, 따라서 항상 자기 잠재력 아래에서 사는 사람은 감옥에 갇힌 것과 다르지 않다. 나의 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게는 다른 사람, 저자의 눈이 필요하다.”
독서가 주는 효과는 단지 세세하게 기억하는 내용이나 밑줄 그은 문장을 훨씬 뛰어넘는다. 독서는 나의 필터를 강화한다. 내가 인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마음에 울려 퍼지는 지식과 통찰력을, 그리고 독서가 아니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지혜와 폭을 제공한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읽었다는 게 중요하다.
트레빈 왁스 휘튼대 외래교수
◇트레빈 왁스는 ‘라이프웨이 크리스천 리소스’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 부학장이며 휘튼대 외래 교수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우리 시대의 6가지 우상’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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