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입으면 골프장 입장 불허? [정현권의 감성골프]
지난주 경기도 서하남 인근 골프장에서 동반자가 필자의 복장을 보더니 던진 말이다. 이날 4명 가운데 2명이 반바지 차림이었다.
“한여름에 긴 바지를 입는 것보다 2도 정도 차이 나는 것 같습니다. 편하다기보다 건강 차원에서도 권장할 만해요.”
드레스 코드를 강요하는 우리나라 일부 전통 골프장을 지적했다. 실제로 반바지 차림으로 입장했다가 제지당한 사례도 들었다.
“이건 공식 발표입니다. 내일부터 반바지를 입어도 됩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비 오면 우산을 쓰듯이 더울 때 반바지를 입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후원하는 LIV 골프의 수장 그렉 노먼이 지난해 9월 트위터에서 반바지 차림 허용을 전격 발표했다. 반바지 복장으로 경기하는 걸 허용하겠다는 의미로 전 세계 골프 매체가 관련 기사를 올렸다.
단 무릎 길이의 단정한 차림에 스타킹이나 레깅스를 받쳐 입으려면 단색이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당시 WGC멕시코챔피언십에서 필 미컬슨이 반바지를 입고 시원하게 샷을 날렸다.
이어 두 달 뒤 디오픈이 150년 넘게 지켜온 반바지 금지 원칙을 해제했다. 연습 라운드에 한정됐지만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골프 본산 영국에서의 이 결정은 골프 복장 대변신을 예고했다.
투어 선수들도 반바지를 환영한다. “반바지 차림이 좋아요. 선수들은 지구에서 가장 더운 날씨에 플레이를 하죠. 우리는 태양과 함께 걷는데 많은 경기가 한여름에 열립니다.” 타이거 우즈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얼마 전 열린 PGA 투어 파머스인슈어런스에서 샘 라이더(미국)의 자주색 트레이닝복이 화제로 떠올랐다. 정숙하고 격식 있는 PGA 대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진한 자주색에 발목이 훤히 드러나는 헐렁한 바지였다.
원칙적으로 PGA 투어에서 트레이닝복을 입을 수 있다. PGA가 바지 길이에만 규정만 두기 때문이다. 2016년 리키 파울러가 처음 트레이닝복을 시도한 이후 에릭 반 루옌이 따라 입었다.
90년 만에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 PGA와 달리 KPGA는 길이에 대한 규정도 까다롭다. KPGA는 오직 연습 라운드에서만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다.
프로암 대회에선 금지된다. 이마저도 7~8월 열리는 대회에 한정되고 골프장과 협의해야 한다. 반바지 길이 역시 무릎보다 짧으면 안 된다.
국내에서도 반바지 차림을 허용하는 골프장이 계속 늘고는 있다. 골프 부킹 플랫폼 XGOLF에 따르면 ‘반바지 캠페인’에 참여하는 골프장이 2014년 10여곳에서 올해 260여곳으로 증가했다.
그래도 한여름에 반바지를 제지하는 골프장들이 있다. 이들 골프장은 전통과 권위를 들먹이며 ‘단정하고 매너 있는 복장’을 강요한다. 반바지를 아예 허용하지 않거나 허용하더라도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신도록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반바지를 입고 골프를 하는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잡혔다. 우리 주말 골퍼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정장 차림을 고수하면서도 알까기를 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조된다. 스코어를 속이고 카트를 몰고 그린까지 올라가는 진상 매너로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미국의 일반 골프장은 아마추어들에게는 복장에 관해 노터치다. 오거스터 등 소수 회원제를 빼고는 반바지는 물론 티를 입어도 무방하다.
“스코틀랜드는 물론 미국에서도 반바지 차림이 일상화됐어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보세요. 반바지 입고 퍼팅 후 몸 쓰는 장면이 얼마나 편하고 재미있어요. 골프 대중화라는 추세에도 맞고 사치 스포츠라는 오명도 벗는다고 봐요.” (김태영 한국대중골프장협회 부회장)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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