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로 한 증여계약 무를 수 있지만…[생활 속 법률 이야기]
A씨는 B마을회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마을회관 부지로 증여하기로 했다. 그 대신 B마을회는 A씨 증여로 인해 그 부근에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A씨 숙모에게 3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구두 계약(부담부증여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B마을회는 이 같은 계약에 따라 A씨 숙모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는 등 자신의 의무를 이행했다. 그러나 A씨가 마음이 바뀌어 “민법 제555조에 따르면,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구두 증여의 경우에는 해제가 가능하다”면서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증여한 토지를 자신에게 인도하라는 토지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씨의 주장은 법적으로 타탕한 것일까?
우리 민법에 따르면, 계약은 일방의 청약과 상대방의 승낙에 의해 성립한다. 따라서 계약은 반드시 서면에 근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구두 합의로도 유효하게 계약이 성립한다. 다만 구두 계약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계약 당사자가 명확히 확정되고, 각 당사자의 계약상 의무 내용이 특정되는 등 객관적으로 양 당사자의 합의 내용이 무엇인지 명확해야만 한다. 이런 요건만 갖추면 구두 합의도 하나의 계약으로서 적법, 유효하게 성립한다.
다만 민법 제555조는 “증여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각 당사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다”고 해, 구두로 증여계약이 성립한 경우 양 당사자가 언제든지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A와 B마을회 사이에 증여계약이 성립했다고 하더라도, 구두로만 증여계약이 성립한 경우에는 A와 같이 “구두에 의한 증여는 언제든지 해제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단순한 증여계약이 아니라 B마을회 또한 A로부터 증여받는 대가로 일정한 의무를 부담하기로 약속했고(법률상 용어로 부담부증여), B마을회는 이미 자신의 의무를 이행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단순 증여가 아닌 부담부증여는 수증자(증여를 받는 사람)가 이미 자신의 부담을 이행한 경우에도 “구두 증여는 해제할 수 있다”는 민법 제555조를 적용한다면 수증자에게 너무 부당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까?
수증자, 부담 이행 완료했다면 구두 증여 해제 안 돼
위 사례는 최근의 실제 사건 사례다. 대법원은 판결을 통해 A의 청구를 기각하고 B마을회에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부담부증여계약에서 증여자의 증여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수증자가 부담의 이행을 완료한 경우에는, 그런 부담이 의례적, 명목적인 것에 그치거나 그 이행에 특별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지 않는 등 실질적으로는 부담 없는 증여가 이뤄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각 당사자가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임을 이유로 증여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대법원 2022년 9월 29일 선고 2021다299976판결)
대법원은 이와 같이 판단한 이유로 4가지를 제시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 2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수증자가 부담 이행을 완료했음에도 증여자가 증여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법 제555조에 따라 부담부증여를 자유롭게 해제할 수 있다고 본다면, 증여자가 아무런 노력 없이 수증자의 부담 이행에 따른 이익을 그대로 보유하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② 민법 제555조에서 말하는 해제는 일종의 특수한 철회인데, 부담부증여에서 수증자가 증여자의 증여 의사를 신뢰해 계약 내용에 따른 부담 이행을 완료한 상태임에도 증여자가 민법 제555조에 따른 특수한 철회를 통해 손쉽게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나게 할 경우 법적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결국 상대방 부담이 수반되는 구두 증여의 경우, 상대방이 이미 그 부담을 이행했다면 구두 증여라 하더라도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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