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라이크’ 법원서 첫 모방 인정… 게임 생태계 바뀔까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1민사부(권오석 부장판사)는 18일 엔씨가 웹젠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중지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심에서 “원고(엔씨)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청구를 인용한다”고 선고했다. 그러면서 “R2M 이름으로 제공되는 게임을 일반 사용자들이 이용하게 하거나 선전·광고·복제·배포·전송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웹젠은 R2M의 서비스를 중단하고 엔씨에 1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과 이에 딸린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엔씨는 지난 2021년 6월 웹젠이 리니지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모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엔씨는 “단순히 게임 규칙을 모방한 것을 넘어 주요 콘텐츠와 유기적 관계까지 따라 했다. 세부적인 수치까지도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언급한 주요 모방 요소는 캐릭터, 아인하사드 축복, 무게 시스템, 인형 시스템, 변신 시스템 등 6가지다.
그러자 웹젠은 “6개 규칙과 UI(유저 인터페이스)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것은 다중역할접속수행게임의 개발 과정을 무시한 것”이라며 “(R2M은) 1987년 나온 초창기 컴퓨터 역할수행게임(RPG) ‘넷핵’(Nethack)의 규칙을 차용했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게임 규칙이 유사하다고 이를 저작권 침해라 주장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재판부는 리니지M의 주요 시스템에 대해 “이미 존재하던 게임 규칙을 변형하거나 차용한 것으로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거나 설령 독창성·신규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엔씨 측의 저작권 침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웹젠이 부정경쟁방지법이 금지하는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해 엔씨의 손을 들어줬다.
업계는 이번 법원 판결이 불러올 바람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간 게임업계 내 표절 논란은 지속적으로 불거졌으나, 저작권 침해 인정을 받은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게임 시스템이 독창적인 창작물로 인정받기 보다는 ‘장르의 유사성’ 정도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리니지’에 대한 저작권 침해 주장은 기각됐지만, 법원이 모방을 통한 부정경쟁행위는 인정하면서 게임업계의 무분별한 게임 베끼기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연스레 ‘리니지라이크’ 게임 개발 및 운영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리니지라이크는 리니지와 유사한 게임성을 지닌 게임들을 일컫는 말이다. 리니지 IP가 흥행보증 수표로 거듭나면서, 최근 몇 년간 국내 게임 시장에는 리니지와 유사한 게임들이 쏟아졌다. 엔씨가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은 이러한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이 매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리니지 IP에 대한 무분별한 피로감을 야기한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장 지난 4월 엔씨로부터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한 MMORPG ‘아키에이지 워’ 역시 승소를 장담하기 힘들어졌다. 당시 엔씨는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하고 엑스엘게임즈가 개발한 아키에이지 워가 ‘리니지2M’ 콘텐츠와 시스템을 다수 모방했다며 피해 사례를 조목조목 짚은 바 있다. 아키에이지 워는 출시 직후 구글 플레이 최고 매출 순위 2위에 올랐고, 현재(18일)까지도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5위를 기록하는 등 장기 순항 중이다.
엔씨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기업의 핵심 자산인 IP 및 게임 콘텐츠의 저작권과 창작성이 법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이번 판결이 게임 산업 저작권 인식 변화에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도 IP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와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엔씨는 청구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항소를 이어갈 계획이다. 웹젠 역시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장을 제출하며 추가 다툼을 예고했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이 미칠 게임 문화 전반에서의 변화도 기대하고 있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법원 판결은 게임의 창작물로서의 권리를 인정한 사례”라면서 다소 늦었지만 콘텐츠 생태계와 게임 생태계를 위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줘야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 창작자는 ‘디지털아티스트’다.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은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게임 창작을 하나의 예술로써 존중하는 성숙한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개발자뿐만 아니라 게이머들도 게임을 단순히 무료로 즐기는 콘텐츠로 생각하기보다, 마땅히 값을 치러야 할 창작품으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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