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 성폭행 피의자, 4개월전 '너클' 준비…피해자 현장서 심정지
대낮에 서울 시내 야산에서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의 피의자 최모(30)씨가 4개월 전 금속 너클을 구매하고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을 파악해 범행 장소로 정하는 등 사전에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피해 여성은 경찰 등이 현장에 출동했을 당시 이미 심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18일 최씨에게 강간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최씨는 조사 과정에서 “(여성을) 강간하고 싶어 범행을 했다”고 동기를 밝혔다. 전날 낮 12시 10분쯤 등산객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검거된 직후 “나뭇가지가 떨어져 여성이 넘어졌다”고 말하는 등 범행을 부인했지만, 다시 진술을 바꾼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최씨는 이미 4개월 전에 범행에 사용할 금속 재질의 너클을 온라인에서 구매했고, 범행 장소 역시 미리 물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해당 공원이 집과 가까워 운동을 위해 자주 방문했고, CCTV가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실제로 등산로 초입의 공원에는 5대의 CCTV가 설치돼 있었지만, 범행이 벌어진 장소는 CCTV가 없는 ‘사각지대’였다.
구체적인 범행 과정도 드러났다. 최씨는 범행 당일인 17일 오전 9시 55분쯤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주거지에서 출발해 1시간 뒤 사건 현장 인근에 도착했다. 공원 주변 CCTV에는 슬리퍼 차림에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은 채 골목을 배회하는 최씨의 모습이 포착됐다. 등산로를 서성이던 최씨는 일면식도 없던 피해자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산 중턱까지 따라갔고, 저항하는 피해자의 안면부 등을 너클을 착용한 주먹으로 공격했다. 이후 인근을 지나던 시민의 신고로 구급대와 경찰이 출동했고, 구급대는 오후 12시 29분쯤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피해자는 심정지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폭행의 정도가 매우 심해 범행 동기와 준비 과정 등을 추가로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경찰은 최씨의 병원 진료 기록과 인터넷 검색기록 등을 살펴보고 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최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지냈으며, 부모와 같은 집에 거주 중이다. 최씨의 가족은 "(최씨가)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경력이 있지만, 현재는 치료를 받고 있지는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최씨 검거 직후 마약류 복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간이시약 검사도 진행했지만 결과는 음성으로 나타났고, 범행 당시 음주 상태도 아니었다.
이날 사건 현장을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이런 유형의 예상 밖 범죄들이 자꾸 일어나는 점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둘레길과 산책길 등에 강화된 범죄예방디자인(셉테드·CPTED)을 도입하고 인공지능형 CCTV를 다량 설치해 감시 사각지대를 줄이겠다”고 했다. 이어 “최근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최대한 줄어들 수 있도록 예방책을 강구하는 특별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가동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자, 구급대 도착 때 이미 심정지…“현장 CPR 후 병원 이송”
한편 이날 익명 기반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피해자가 의식불명 상태인 것과 관련, 구급대의 병원 이송이 지나치게 늦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구급대는 경찰의 신고 공유가 이뤄진 오전 11시 48분으로부터 약 40분이 지난 오후 12시 29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피해자가 이미 심정지 상태라 현장에서 심폐소생술(CPR)을 우선 실시한 뒤 곧장 병원으로 옮겼다. 다만 인근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점은 신고 이후 1시간 30분가량이 지난 오후 1시 13분쯤이었다. 피해자 발견 장소가 구급차의 직접 접근이 어려운 야산 중턱이었던 탓이다.
이에 대해 소방 관계자는 “사건 현장이 산 중턱에 위치해 장비를 준비해 뛰어 올라가야 했고, 심정지의 경우 현장에서의 빠른 조처가 이뤄진 후 이송해야 하다 보니 다소 병원 도착 시간이 늦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구급 차량이 현장 인근에 도착한 건 오후 12시 1분쯤이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역시 “이번 사건처럼 두부 손상이 의심되면 두개골 안의 피가 뇌를 압박할 수 있어 1분, 1초가 소중한 건 맞지만, 심정지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먼저 대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피해자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송 지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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