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딱지 붙일 것"... 경찰의 '관객 수 조작' 수사, 도 넘었다

하성태 2023. 8. 18. 17: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영화 '비상선언'으로 영화계 수사, 어느 평론가의 일침

[하성태 기자]

먼저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하자면, 지난해 한 독립영화전용관에서 영화제 이름을 빌린 특별 상영회를 직접 개최하고 진행했다. 멀티플렉스 내 상영관 1개관을 4차례에 걸쳐 대관한 행사였다. 전체로 따지면 6~70% 좌석이 찼다. 4회 상영은 성공적이었고, 그 기록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남았다. 물론 예매와 현매를 포함해 극장에서 티켓을 발권한 관객의 숫자만이 기록됐다.

그렇다. 통합전산망은 아무리 관객이 객석을 꽉 채웠다고 하더라도 발권을 한 관객들만 숫자로 기록한다. 실 관객 수와 통합전산망 관객 수가 일치하지 않는 셈이다. 극장 대관 행사의 종류는 그래서 티켓의 발권 유무로 나눌 수 있다. 극장 개봉 영화의 경우, 티켓을 발권해야 통합전산망 상 누적 관객수를 더할 수 있다. 독립예술영화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인 공동체 상영 또한 되도록 티켓을 발권하는 것도 그래서다.

언론이나 배급사를 대상으로 하는 언론·배급 시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배급사가 적개는 1개관에서 많게는 몇 개관까지 대관을 하고 전석의 티켓을 발권한다. 언론 시사도 개봉 전 시사회 형식이지만 발권을 했기에 통합전산망 누적 관객 수에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언론 시사는 매번 만석일까. 그럴 리 없다. 참석한 기자가 적을수록 빈 좌석이 늘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통합전산망엔 그 빈 좌석들도 누적 관객 수에 포함된다. 배급사 측이 전석의 티켓을 발권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실 관객 수와 통합전산망 관객 수가 불일치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업계 관행이자 모든 배급사와 제작사들이 같은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급의 영역은 전적으로 투자와 자본의 영역이다. 시사회를 크게, 많이 여는 쪽이 시사회를 통한 누적 관객수 부풀리기에 유리하다. 개봉 전 시사 형태를 배급사들이 버리지 못하는 요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홍보용 관람권의 유혹도 바로 그런 요인 중 하나에 해당한다.

구구절절 통합전산망과 실 관객 수의 불일치나 영화계 관행을 설명한 건 짐작하다시피 경찰이 이 관행을 문제 삼고 나서서다. 지난 16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멀티플렉스 3개사와 배급사 24개 업체 관계자 69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전례 없고 광범위한 수사가 아닐 수 없다. 수사의 출발점부터 짚어보자.

<비상선언>으로 촉발된 영화계 수사
 
 '비상선언' 개봉 당시 서울 시내 영화관
ⓒ 연합뉴스
 
시작은 <비상선언>이었다. 작년 8월 개봉한 <비상선언>을 둘러싼 테스트 발권 및 역바이럴 논란이 1년 후 영화계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수사로 번진 것이다. 먼저 작년 8월 일부 누리꾼들은 쇼박스가 배급한 <비상선언>을 대상으로 일부 누리꾼들이 관객 수 조작(사재기) 의혹을 제기했다. 새벽 시간대 다수 멀티플렉스에서 <비상선언>의 비상식적인 매진 사례가 속출했다는 의혹이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논란이 거세지고 언론이 취재에 나서자 쇼박스 측은 "내부 테스트를 위해 발권한 표가 공식 집계됐다"고 해명에 나섰다. 심야 상영 이벤트를 위한 테스트 발권이란 설명이었다. 이 같은 해명에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비상선언>이 <한산: 용의 출현> 등 타 한국영화들과 치열한 박스오피스 1위 경쟁을 벌이던 시점이었다.

이어 쇼박스는 역바이럴 의혹을 제기했고, 경찰에 수사까지 의뢰했다. 역바이럴은 온라인 상 좋은 입소문을 통해 마케팅을 하는 기법으로 역바이럴은 그 반대말이라 할 수 있다. 즉, 경쟁작과 연관된 특정 회사가 악의적으로 <비상선언>에 대한 악평들을 온라인 등에 유포했다는 주장이었다.

갈수록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 상의 입소문이 영화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대이니 만큼 영화계 내에서 암암리에 제기됐던 이러한 역바이럴 의혹이 공식화된 것은 업계 내에서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찰 수사의 초점은 배급사들의 '박스오피스 조작'에 맞춰졌다. 경찰은 이들 배급사가 지난 2018년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특정 상영 회차를 '전석 매진'이라 허위 발권했고, 이를 통합전산망에 입력해 영화진흥위원회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봤다.

이미 지난 3월부터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이후 언론들은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 보도만 보면 업계 관행과 마케팅 경쟁이 뒤섞인 배급사들의 일부 행위가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적지 않았다.

후원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대관 상영이나 후원 상영의 경우 영화를 지지하고 홍보에 동참하기 위해 관람권만 구매하고 실제 관람을 하지 않는 관객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마케팅 비용을 소진해야 하는 제작사나 배급사 입장에선 수익과 상관없이 일종의 '영혼 보내기' 상영회라도 강행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멀티플렉스 좌석이 비는 새벽 상영이 벌어지는 상황이 그런 경우다. 상업영화의 경우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무료 관람권 배포로 인해 발생한 마케팅 비용 손실을 보전하고자 새벽 시간대 극장을 잡는 경우다.

영화계는 경찰 수사가 이런 관행들을 감안하지 않는 것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24개 배급사면 상당한 수다. 경찰이 개별 배급사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만큼 어떤 영화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불법이라 규정했는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적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어느 영화평론가의 일침
 
 영화 <그대가 조국>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홍보&마케팅 용(크라우드 펀딩)으로 영화사가 극장에게 단체 표 구매한 것 중 실제로 사용하지 않은 티켓(관객들의 노쇼)을 종영일 새벽에 매출 처리한 것 인 바 이것은 공개적으로 극장과 영화사가 협의해서 진행하는 것이어서 조작이라 할 수 없음에도(극장에 매출이 잡힌 것임에도) 영화계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려 한다. 나중에는 좌파 딱지를 붙일 것이다. 이것이 언론인가. 언론은 그 내부를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17일 오동진 영화평론가가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주장한 내용 중 일부다. 오 평론가는 그러면서 "무엇보다 저것이 정녕 구속이니 수사니 해 가며 범죄행위 취급할 일인가"라며 "극장이 자율적으로 하는 일을 법으로 재단하려 한다"는 일침을 놨다. 이와 관련해 오 평론가의 주장에 공감한 어느 페이스북 사용자의 댓글이 눈길을 끈다.

"<그대가 조국>, <노무현입니다>, <문재인입니다> 등의 영화흥행은 다 조작이다 라고 하고 싶은 거겠죠."

실제로 다수 언론은 <그대가 조국>의 관객수 조작 의혹에 포커싱을 맞췄고, 지난 3월 이후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업계 관행에 크게 관심 없는 언론이나 포털 모두 <그대가 조국>을 앞세운 기사를 양산하고 포털에 주요하게 배치했다.

이를 통해 영화계는 불법이 판치는 업계로 비치고, <그대가 조국>은 팬덤과 제작사가 합작해 관객 수를 부풀린 대표적인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전락했다. 이게 과연 온당한 비판인지, 아니 그에 앞서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언론 플레이에 나설 일인지 심히 의문이다.

이제 공은 검찰에게 넘어갔다. 적극적인 불법 행위가 있다면 수사하고 처벌하는 게 맞다. 하지만 어디까지 불법인지를 판단하는 잣대가 공정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우려가 나온다.

영화계 블랙리스트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다. 거대 배급사를 포함해 24개 배급사면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이 같은 광범위한 경찰 수사를 겪은 배급사나 영화계 모두 물리적이면서 심리적인 위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영광과 K-콘텐츠의 밑바탕이 된 영화계가 맡은 작금의 현실이 이 정도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