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며 자해하게 됐을까
[김형욱 기자]
▲ 영화 <비닐하우스> 포스터. |
ⓒ 트리플픽쳐스 |
문정은 비닐하우스에서 기거하며 소년원에 가 있는 아들과 함께 사는 날을 꿈꾼다. 은퇴한 시각장애인 교수 태강네로 출근하며 요양보호사로 치매를 앓는 그의 아내 화옥을 돌보는 일을 한다. 문정은 비닐하우스에선 자신의 뺨을 때리는 행위를 하염없이 이어가는 반면, 태강네 집에선 두 노인을 돌보며 태강한테서 자동차도 빌리곤 한다.
한편 문정은 자조 모임에 참석하는데 그곳에서 순남과 친해진다. 순남은 3급 장애인으로 지정 보호자의 도움으로 살고 있는데 차마 말 못 할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다. 문정이 그녀에게 무심코 말한, 도망치지 말고 해결해 보라는 한마디에 순남은 바뀌려고 노력하면서 문정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문정은 순남을 돌볼 여유가 없다. 문정은 순남이 귀찮아진다.
어느 날, 태강이 오랜만에 회식으로 길게 자리를 비웠고 문정이 화옥을 목욕시키려 할 때 대뜸 화옥이 문정을 쥐고 흔들기 시작한다. 노인에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평소부터 화옥이 종종 문정을 크게 나무랄 때가 있었다. 이번엔 그 강도가 심했고 문정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화옥이 밀쳐 넘어지며 머리를 다치고 말았다. 문정이 119에 신고하려던 찰나 아들한테 전화가 걸려오고, 문정은 화옥을 유기하기로 한다.
긴장감이 함께하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영화
영화 <비닐하우스>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 15기 이솔희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2022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왓챠상, CGV상, 오로라미디어상)을 차지하며 크게 화제를 뿌렸다. 제27회 뉴욕아시안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영화제에 초청되어 화제를 이어갈 거라 생각되는 영화다.
이솔희 감독은 중 1 이후 외국 생활을 하고 대안 학교를 다녔고 대학 졸업 후 상업영화 연출부 생활을 잠깐 하곤 바로 영화아카데미에 진학했다고 한다. 결코 흔하다고 할 수 없는 인생 굴곡인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인생을 접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영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경험이 밑바탕된 것이리라.
<비닐하우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의 긴장감과 함께한다. 더불어 한낮에도 어두침침한 느낌이 주인공 문정의 현 상황과 닮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문정의 이전 삶을 일절 보여 주지 않고 알려 주지 않는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녀는 도대체 왜 스스로의 뺨을 그토록 가열하게 때리는지 말이다.
대척점에 있는 두 집
제목이기도 한 '비닐하우스'는 당연히 영화의 주요 공간이다. 문정의 척박한 현 상황을 보여 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녀의 아들 말마따라 이혼 전에 놀러 오곤 하던 곳이었다니, 이혼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다. 그녀가 비닐하우스에서 살게 된 직접적인 이유라든지, 그녀의 아들이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 간접적인 이유라든지 말이다.
영화에는 비닐하우스와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공간이 나온다. 문정이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두 노인(시각장애인, 치매)을 돌보는 '태강네 집'이다. 그곳에서 문정은 비록 피고용자로 일하고 있지만 그녀가 없으면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니 태강이 그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극진히 대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문정은 그곳이 진짜 '집' 같다. 그녀가 진정 바라는 집의 모양.
집이라는 게 뭔가. 어느 성인의 말씀처럼 내 몸 하나 발 뻗고 누일 수 있는 곳이 집이라면 세상천지가 내 집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시대인가? 집을 투자용, 과시용 등의 욕망 투사 목적으로 쓰는 게 아니면 다행일 것이다. 극 중에서 문정은 그저 아들과 둘이 함께 살, 집다운 집을 원한다. 크지 않아도, 미래 투자 가치가 높지 않아도, 누구한테 자랑할 만하지 않아도 좋다. 비닐하우스처럼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않을 정도면 좋다.
따로 전개되는 1대 1 관계들
문정을 중심으로 각자 따로 전개되는 1대 1 관계가 독특하다. 문정과 아들, 문정과 화옥, 문정과 태강, 문정과 순남, 문정과 태강 제자 등 모든 관계가 복잡하진 않지만 결코 수평적이지 않다. 의외로 문정이 약자이지만도 않다. 들여다보면 그녀가 모든 관계에서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점이 의외다.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하고, 화옥과 태강을 보살펴야 하며, 순남에겐 인생을 바꿀 만한 조언을 건네고, 태강의 제자에겐 차갑게 타박을 준다.
그럼에도 그녀가 약자인 것처럼 보이고 암울해 보이는 이유는 비닐하우스에서 산다는 점과 그녀가 혼자 있을 때면 어김없이 자해를 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녀를 둘러싼 현상과 본질 모두 그녀를 불안하게 한다. 또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불안감을 깃들게 한다. 주지했듯 그녀가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게 되었고 왜 자해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을 충격적이고 치명적이다.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여러 인생의 한 단면을 싹둑 잘라 보여 준 것뿐이지만 한데 엮어지니 손 쓸 틈이 없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 가운데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면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미시적인 선택이 거시적인 역사를 뒤바꾸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또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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