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파로 치매 진단, 한의사도 가능" 대법 판결에 의협 강력 반발
한의사도 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파킨슨병 등을 진단해도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는 앞서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을 합법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파기 환송)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어서 의료계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정의롭고 당연한 판결”이라고 환영했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국민 건강을 외면한 불합리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는 광고를 냈다가 한의사 면허자격을 정지당한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면허자격 정지를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 상고심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0년 한 일간지에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고,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 뇌파계 진단기기는 환자의 두피에 전극을 부착해 뇌의 전기적 활동 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로, 주로 뇌종양이나 간질 등의 질환을 진단할 때 활용된다. 보건복지부는 한의사가 뇌파계를 활용한 것은 ‘면허 외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2012년 A씨에게 자격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고 A씨는 이듬해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한의사 뇌파계 사용 가능”
1심 법원은 뇌파계 활용이 한방 의료행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복지부 손을 들어줬으나, 2심 법원은 이를 뒤집고 A씨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2016년 나온 2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뇌파계 사용에 특별한 임상경력이 요구되지 않고 그 위해도도 높지 않은 점에 비춰 보면,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날 대법원 판결은 2심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12월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을 허용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영향을 준 것이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관해 판단 기준이 새롭게 구성될 필요가 있다”며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관련 법령에서 해당 의료기기 사용이 금지되는지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있는지 ▶한의학적 원리의 적용·응용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상고심 재판부도 이런 기준으로 사건을 검토했으며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반대해 온 의협은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이 각 의료직역의 축적된 전문성과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면허의 경계를 파괴해 버리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며 “이번 판결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협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뇌파계는 원래 간질과 같은 경련성 질환을 진단하는 데 이용하는 기기로, 뇌파계만으로 파킨슨병이나 치매를 진단하면 오진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뇌파계 기기 자체의 안전성보다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주관이 더해지는 등 위험이 있기 때문에 ‘위해도가 낮다’는 법원의 판단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의사에 초음파 기기 이어 뇌파계도 인정…의협 반발
한의사 단체는 초음파에 이어 뇌파계 사용까지 인정해주는 판결이 나오자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한의협은 입장문에서 “현대 진단기기는 양의계의 전유물이 아닌 한의학의 과학화와 현대화에 필요한 도구”라며 “이를 적극 활용해 최상의 치료법을 찾고 실천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당연한 책무”라고 밝혔다. 오진 등 위험성에 대한 우려에 대해 한의협 관계자는 “면허를 따는 순간 뇌파계 등의 의료기기를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모든 의료인에게 똑같은 상황”이라며 “의료사고 문제는 개별 의료인의 숙련도 문제인데, 의사와 한의사를 구분하며 의료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한 텃세”라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 관련 파기환송심도 오는 24일로 예정된 상황이어서 의료계의 갈등은 확산될 전망이다. 한의협의 한 관계자는 “큰 틀에서 법원이 허용해줬다면,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 등 실무적인 부분은 정부에서 규정해줘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정의가 안 된 상태”라며 “당국이 하루빨리 관련 제도 마련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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