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이 먼저 알아본 유재선 감독…'잠', 한 순간도 눈 뗄 수 없다 [D:현장]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극찬 받은 유재선 감독의 '잠'이 국내에서 베일을 벗었다.
18일 서울시 광진구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는 유재선 감독, 배우 정유미, 이선균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 '잠'의 언론배급시사회가 열렸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다.
유재선 감독은 '은밀하게 위대하게', '옥자'의 연출부, '버닝'의 영문 자막 번역으로 이력을 쌓고 장편 '잠'으로 데뷔했다.
'잠'은 지난 5월 21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 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데뷔작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은 유재선 감독은 "영화 크레딧이 올라간 후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셨던 게 기억이 난다. 칸에 초청돼 뛸 듯이 기뻤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봐주실지 몰라 영화제 프리미어 한 달전까지 두려웠고 긴장됐다. 다행히 영화가 끝나고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유재선 감독은 '잠'의 기획의도와 몽유병을 소재로 삼은 것에 대해 "몽유병에 피상적인 관심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인터넷이나 괴담으로 사람을 헤치는 몽유병 환자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자극적인 소재가 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몽유병 환자의 일상이 어떨까 궁금해졌다. 또 몽유병 환자의 옆을 지키는 사랑하는 가족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싶었다"라며 "몽유병의 흥미로운 점은 보통 장르영화의 경우 주인공이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도망가거나 멀어지는 게 주된 이야기의 구조인데 저희 영화는 위협의 대상이 가장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대상이기 때문에 멀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게 만들고 싶었던 이유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앞서 봉준호 감독은 유재선 감독의 '잠'을 본 후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라고 칭찬한 바 있다. 유 감독은 "그런 칭찬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라며 "봉준호 감독님은 닮고 싶은 롤 모델이기 때문에 제 영화를 보기만 하셨어도 뛸 듯이 기쁜데 호평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하다. 감독님께서 '끝까지 긴장감이 늦춰지지 않아서 좋았다'고 하셨고, 또 두 배우의 열연에 감탄하셨더라. '소름 돋는다'와 '미쳤다'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유미는 사랑하는 남편이 잠들면 몽유병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자, 두려움에 떨지만 다시 가족을 되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수진 역을 맡았다.정유미는 사랑스러운 면모부터 광기 어린 모습까지 변화가 큰 연기를 보여줬다. "연기하면서 딱히 힘든 건 없었다. 매일매일 찍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잘 마치려고 했다. 감독님의 머릿 속에 있는 생각대로 잘 연기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이선균은 잠들면 이상한 행동을 저지르는 현수로 분했다. 이선균은 몽유병을 앓을 땐 기괴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공포로 몰아간다. 특히 잠결에 냉장고에서 생고기, 계란 등을 꺼내 먹으며 섬뜩함을 안겼다. 그는 "초반에 감정적으로 힘든 연기를 정유미가 도맡아 하기 때문에 나는 냉장고에서 먹는 신만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 '고래사냥'을 보고 안성기 선배가 생닭을 먹는 장면을 충격적으로 봤는데 대본을 봤을 때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 장면이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고마웠다. 조금 더 기괴하게 찍고 싶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더럽지 않게 앵글을 잡아준 것 같다. 효과적으로 찍어 다행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잠'의 프로듀서가 푸드 사이언티스트 중 아는 사람이 있어 안전하고 먹을 만 하게 제작해 줬다. 연출, 제작팀이 직접 먹어보며 배우에게 맛보게 해도 되는 상태인지까지 계속해 줬다. 그 두 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첩첩산중', '옥희의 영화', '우리 선희'에 이어 '잠'으로 네 번째 호흡을 맞췄다. 정유미는 "세 작품을 함께 했지만 회차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은 회차가 많은 작품에서 연기해 보고 싶었다. 유 감독님의 첫 영화로 같이 호흡을 맞추게 돼 너무 기뻤다"라고 이선균과 재회한 기분을 전했다.
이에 이선균은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서 함께하며 일상적인 연기를 하다 보니 이번에도 편하게 호흡이 잘 맞았다. 10년 전부터 함께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드라마나 장르적인 영화에서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다. 감독님께서 아마 우리가 했던 일상적인 연기를 보고 캐스팅한 것 같다. 이번 영화가 집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시작하는 장르영화다보니 나와 정유미가 한다면 조금 더 현실에 붙어있는 장르영화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저희도 그 의도에 맞춰 즐겁게 촬영했다"라고 덧붙였다.
첫 장편영화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는 유재선 감독은 "어느 감독님은 자기 영화를 보면 다시 찍어야 할 것 같단 생각에 고문이 따로 없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마음인지 정확히 알 것 같다. 이 경험을 통해 배우거나 성장하지 않았으면 그 생각조차 안 들었을 것 같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라며 "다음에는 배우들, 스태프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 조금 더 능숙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나리오를 쓰고 후반 업까지 하는 내내 철칙은 재미있는 장르영화를 만들자였다. 시나리오를 쓸 당시 제가 오래된 여자친구와 결혼이 임박했던 시기라, 결혼에 관한 화두가 많이 녹아있다. 나의 의식과 상관없이 두 주인공도 결혼한 부부로 설정했다. 문제가 닥쳤을 때 부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올바른 결혼생활이 무엇인가란 나의 생각이 담겼다. 관객의 나의 결혼관에 동의하거나 알아차릴 필요는 없지만 그런 화두에 대한 대답을 얻어내고자 무의식적으로 쓴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무엇보다 관객들이 재미있기 봐주셨으면 한다"라고 바랐다. 9월 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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