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법' 지지부진에 아들 버린 친모 "사망보험금 다 갖겠다"

임병도 2023. 8. 1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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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보험금 나누라는 법원 중재안마저 거부... '구하라법'은 아직도 국회 문턱 못 넘어

[임병도 기자]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구하라법 및 선원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어선을 타다 실종된 김종안씨의 친누나 김종선씨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들이 죽자 50여 년 만에 나타나 보험금을 챙기려는 친모가 고인의 누나와 사망보험금을 나누라는 법원 중재안마저 거부해 논란이다. 

고 김종안씨는 2021년 1월 거제 앞바다에서 선원으로 일하다 어선 침몰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김씨 앞으로 사망보험금 2억3000여 만 원과 선박회사 합의금 5000만 원 등 총 3억여 원의 보험금이 나왔다. 

그런데 김씨가 2살 때 사라졌던 친모가 54년 만에 나타나 보험금을 받으려고 했고, 김씨의 친누나인 김종선씨는 이를 지키기 위해 법적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친모가 50여 년 만에 나타났어도 유산 상속 1순위는 부모가 맞다고 판결했다.

김종선씨는 지난해 12월 CB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우리를 버리고 떠난 뒤로는 단 한 번도 연락하거나 오지 않았다. 오빠가 사망했을 때도 연락은 왔지만 오지 않았다"면서 "왜 안 왔겠냐? (사망한) 오빠는 결혼하고 조카가 있었으니 안 온 거다. 반면 동생은 미혼이라는 걸 다 알아보고 실종 13일 만에 재혼해 낳은 딸·아들·사위와 같이 와서 상속 1순위라고 주장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고 김종안씨의 유족과 친모 사이의 보험금 분쟁이 격화되자 부산고법 2-1부는 최근 화해권고결정을 통해 친모에게 고 김종안씨의 사망보험금 일부인 1억 원을 친누나인 김종선씨에게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법원이 결정한 1억 원은 수협이 법원에 공탁한 김씨 사망보험금 2억3000여 만 원 중 약 40%에 해당한다. 

가족 간의 법적 소송을 마무리하자는 법원의 중재안이 나왔지만 친모는 이를 거부하고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종선씨는 "50년 넘게 연락 한번 없다가 아들의 사망 보험금을 두고 소송전을 치르면서도 친모는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았다"면서 "법원의 화해권고결정도 백번 양보하고 배려했는데 무슨 권리로 거절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구하라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높았지만... 아직도 통과 불투명 
 
 2019년 사망한 고 구하라씨와 친오빠 구호인씨
ⓒ MBC실화탐사대 갈무리
 
"낳아줬다는 이유로 다 부모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저희를 버리고 친권까지 포기한 사람이 동생이 일궈낸 재산을 가져간다는 게… 법이 너무 부당하더라고요." (구하라씨 친오빠 구호인씨. 2020년 4월 1일 MBC실화탐사대 인터뷰 중에서) 

고 김종안씨 사망보험금 사건을 가리켜 '선원 구하라법'이라는 말이 있다. 2019년 사망한 가수 구하라씨 사건을 계기로 추진되는 '구하라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구하라씨의 생모는 20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구씨의 사망 이후 나타나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당시 구씨의 친오빠인 구호인씨는 양육의 의무를 저버린 부모에게는 사망한 자녀의 유산을 받지 못하게 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구호인씨의 주장은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고, 당시 20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률만 5건이 발의될 정도로 정치적 관심도 높았다. 하지만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민주당 서영교 의원을 시작으로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부양의무 이행기준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일각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구하라법이 통과되지 못한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하지만 '구하라법'은 연관된 법률과 오랫동안 이어진 사회 통념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간단하게 처리할 수가 없다.  

민법에서는 자식이 사망할 경우 살해나 유언장 위조 등의 결격사유만 없다면 상속 1순위는 친부모라고 규정하고 있다. 부양의무와는 상관이 없다 보니 자녀를 버린 친부모도 유산을 받을 수 있다. 

국회에 발의된 '구하라법'은 상속인의 결격 사유에 '보호·부양의무를 소홀히 했을 경우'를 포함한다. 자녀를 버리고 떠난 친부모의 경우 상속인 결격 사유에 해당해 유산을 받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이다. 

'구하라법'은 자녀의 사망으로 인한 상속인 자격을 따지지만 민법상 상속에는 부모가 사망했을 때도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상속을 혈연, 즉 피붙이로서의 관계만 따진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아도 상속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매년 2000건이 넘는 '상속재산분할 심판청구' 소송이 발생한다. 상속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명확한 부양기준이 없다면 상속권 분쟁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도 2018년에 "부양의무 이행을 따질 경우 명확한 판단이 어렵다"면서 "법적 분쟁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 연합뉴스
 
법적 판단 기준의 어려움과 복잡한 상속권 분쟁에도 '구하라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단순히 고 구하라씨와 고 김종안씨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2년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28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전사한 군인의 사망보상금 절반을 받아 공분이 일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10년 전 이혼한 친부가 보험금 절반을 수령했다. 2020년에는 순직 소방관의 친모가 30여 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와 퇴직금을 수령해 갔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복잡하고 난감하다는 변명이 아니다. 불합리함을 없애기 위한 발빠른 노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법을 불합리하다고 느끼면 공의(公意)로써의 가치를 상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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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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