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의 힘이 막강한 벨기에 정치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브뤼셀에 도착한 것은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옅은 비가 내리는 브뤼셀의 날씨는 여름답지 않게 추웠습니다.
파리에서 국경을 건너 벨기에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쓰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모두 쉥겐 협정에 가입한 국가이기 때문에, 별도의 출입국 심사도 없습니다. 제가 정말 국경을 넘어온 것이 맞나, 순간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 비 오는 브뤼셀의 거리 |
ⓒ Widerstand |
현재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16세기까지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 식민 지배에서 먼저 독립한 것은 네덜란드였죠. 1568년에 식민지 17개 주 가운데 7개 주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7개 주는 주로 개신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을 믿고 있던 스페인에 대한 반감이 당연히 더 클 수밖에 없었겠죠.
이때 반란에 참여한 7개 주가 후일의 네덜란드가 됩니다. 80여 년의 전쟁을 거친 뒤의 일이었습니다. 주로 가톨릭을 믿고 있던 나머지 10개 주는 한참 뒤, 프랑스 혁명 이후에야 벨기에로 독립하게 되죠.
▲ 벨기에의 독립을 그린 왕립미술관의 회화 |
ⓒ Widerstand |
현재 벨기에 인구의 55%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합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36% 정도죠. 나머지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모두 사용하는 인구죠. 여기에 인구 비율은 1% 미만이지만 독일어를 사용하는 인구도 있습니다. 1차대전 이후 벨기에가 독일로부터 가져온 지역에 사는 이들입니다.
▲ 벨기에 왕궁 |
ⓒ Widerstand |
하지만 벨기에 정치의 특징은, 지방정부의 힘이 막강하다는 것입니다. 벨기에의 지방정부는 세 지역으로 나뉩니다. 플란데런, 왈롱 그리고 브뤼셀이죠. 플란데런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지방입니다. 왈롱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방이죠.
브뤼셀은 인구 대다수가 프랑스어를 사용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모두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이중언어 지역입니다. 이 세 지방정부에서 교통, 관광, 보건 등의 구체적인 사무를 담당합니다.
이 정도라도 독특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저 강력한 지방자치를 가진 국가 정도겠죠. 하지만 벨기에에는 지방정부와 별도로 '언어 공동체 정부'가 존재합니다. 네덜란드어 공동체, 프랑스어 공동체, 독일어 공동체가 존재하죠.
네덜란드어 공동체는 플란데린 지방과 브뤼셀의 일부 네덜란드어 화자를 포괄합니다. 프랑스어 공동체는 왈롱 지방과 브뤼셀을 포괄하죠. 독일어 공동체는 소수의 독일어 화자를 대변합니다. 이 공동체 정부에서는 언어와 지역 문화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합니다.
지방정부와 언어 공동체의 경계가 거의 일치하는 플란데린은 별도의 의회까지 꾸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어 공동체는 '왈롱-브뤼셀 연방'이라는 공동체 정부와 의회를 가지고 있죠. 독일어 공동체 역시 '오스트벨기엔'이라는 공동체 정부와 의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 그랑 플라스의 동상 |
ⓒ Widerstand |
하지만 그 와중에도 벨기에는 하나의 국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년 넘는 무정부 상태에도 벨기에라는 국가와 정부의 형태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수백 일의 협상 끝에, 중앙정부를 구성해 냅니다.
▲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
ⓒ Widerstand |
물론 공식적으로 수도라는 지위가 부여되지는 않았지만, 유럽연합의 행정부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브뤼셀에 위치해 있습니다. 유럽의회의 제2청사도 브뤼셀에 위치해 있죠. 브뤼셀이 유럽연합의 수도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입니다.
▲ 유럽의회 앞의 국기 |
ⓒ Widerstand |
그 과정이 지난하고 힘들 것은 물론입니다. 처음부터 쉽고 평탄한 과정만을 예상하고 모인 것은 아닐 테니까요. 때로는 연합이 만들어낼 미래를 의심하고, 부정하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벨기에라는 연합처럼, 유럽연합 역시 오랜 기간 위기의 시대를 거쳐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수백 일의 진통 끝에도, 결국 합의를 만들어내는 것이 의회정치가 수행하는 역할이지요. 유럽연합이라는 국가연합의 역할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브뤼셀에 머무는 내내 비와 바람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세찬 바람이 부는 골목을 걸어가며 생각했습니다. 브뤼셀은 위기와 극복이 늘 함께하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브뤼셀이아말로 유럽연합의 수도라는 이름에 가장 적절한 땅일지도요. 언젠가 이 바람이 그치고 보일, 브뤼셀의 맑은 하늘을 상상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솔직히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동관, 아들 학폭 의혹 부인
- 윤석열이 컴백시킨 김관진, '군 댓글공작' 징역 2년
- 대구시가 콕 찍은 '악성 민원인'입니다
- 또 쫓겨난 정연주 "무도한 윤석열 대통령 집단과 다시 싸우겠다"
- "총선 때문에 오염수 조기방류 요청? 일본판 총풍 사건"
- [단독] '친자 확인 의무화' 꺼낸 이준석, 또 젠더 갈라치기?
- '김대중 1차 망명'이 한국사에 남긴 '나비효과'
- 양파 들고나온 시민들 "까도까도 의혹, 이동관 임명 안 돼"
- 대전 관저동 신협에 헬멧 쓴 강도... 3900만원 챙겨 도주
- 거짓말 하면 사퇴한다는 이동관, 문제의 청문회 발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