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가 아닌 길거리로…작가·배우들 “AI·생태계 위협” 피켓을 들다 [할리우드가 멈췄다①]
할리우드의 불빛이 꺼졌다.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이 지난달 14일부터 기본급 인상 및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배우의 권리 보장 개선을 외치며 파업에 나섰다. 지난 5월 미국 영화 및 방송 프로그램 작가로 구성된 미국작가조합(WGA)이 넷플릭스, 디즈니, 디스커버리-워너 등 대형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영화·TV제작자연맹(AMPTP)을 상대로 처우와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것에 동참한 것이다.
이들은 넷플릭스,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 디즈니 등 다른 제작사 및 OTT(Over The Top) 대기업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였고, 프랜 드레셔 SAG 회장은 "탐욕스러운 과대망상증 환자들에게서 이 상황의 지배권을 가져오지 못하면 우리 모두 생계를 잃을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기를 감지한 할리우드 톱스타들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할리우드 배우 조합의 파업 명령이 떨어진 지난달 영국 런던의 영화 '오펜하이머' 시사회 중,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실리안 머피 등 배우들이 사진만 찍고 행사장을 떠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배우들은 피켓에 사인을 하러 갔다"라고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7월 15일에는 조 샐다나, 니콜 키드먼 등이 파라마운트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라이어니스: 특수 작전팀' 행사에 불참을 통보했고, 키스 스탠필드, 티파니 해디시, 오언 윌슨, 제이미 리 커티스, 대니 드비토, 로사리오 도슨, 재러드 레토 역시 디즈니 신작 '헌티드 맨션' 시사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의 글로벌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었던 톰 크루즈도 파업의 영향을 받아 일본을 방문하지 않았다. 톰 크루즈와 일본을 함께 방문 예정이었던 사이먼 페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SAG가 파업을 시작하게 돼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의 홍보 투어도 종료됐다. 일본에 갈 수 없게 돼 우리가 오기를 기다려준 일본 팬들에게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이처럼 작가 조합의 파업에 배우 약 16만 명이 합류하며 역대 최대 동반 파업이 시작, 미국의 영화 TV, 방송 제작이 대부분 중단됐으며, 배우들은 영화, 드라마, 시사회, 시상식, 인터뷰, SNS 등 작품 홍보 활동에 손을 뗐다.
영화·TV제작자연합과 세 번의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3개월째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상징인 화려한 할리우드는 마비됐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배경은 OTT의 커진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다. 극장과 TV 방송 산업구조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위주로 중심 추가 옮겨지며 노동 환경이 불리해진 것은 물론 공정한 수익 분배가 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OTT가 약해져 가는 영화와 TV의 틈을 파고들며 시장을 확장, 높은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작가와 배우의 수입은 줄었다는 것이 작가, 배우 조합의 주장이다.
OTT가 유리한 환경 속에서도 시즌의 에피소드 수를 줄이고,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인건비를 축소시켰는데도, 시청자가 OTT 시리즈를 얼마나 봤는지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아, 제대로 된 재상영분배금과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우 에릭 에델스타인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쥬라기 월드'가 케이블 채널에서 재방송될 때마다 받는 금액이 지난 분기에 1400달러였지만, 같은 기간 OTT에서 방영돼 받은 분배금은 40달러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SAG-AFTRA가 공유한 문서에 따르면 배우들은 지난 2년 동안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보상하기 위해 올해 기준 요율을 11% 인상하고 향후 2년 동안 8% 인상을 원했다. 하지만 AMTPT는 올해 5%, 향후 2년 동안 7.5%의 제안으로 평행선을 걷고 있다.
파업의 또 다른 쟁점은 앞서도 언급한 AI 활용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빠르게 발달하고 AI 기술을 도입하면서 작가와 배우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대본 생성형 AI 챗GPT로 작성이 가능해졌고, 배우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생성할 수 있게 됐다. 작가들과 배우들은 AI 기술에 대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배우들은 자신의 얼굴이나 목소리가 AI로 인해 무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실어증으로 은퇴한 브루스 윌리스를 AI로 합성한 광고가 배우 측과 합의도 없이 만들어져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마블 스튜디오가 '완다비전'의 수십 명의 엑스트라 배우들이 촬영 현장에서 얼굴과 신체를 스캔한 것으로 드러났다. 알렉산드리아 루발카바는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지시받은 표정 연기를 했고, 스캔을 시작한 지 15분 만에 디지털 복제가 완료됐다고 미국 현지 매체 NPR를 통해 밝혔다. 알렉산드리아는 마블 측에서 스캔을 한 배우에게 하루치 보수를 지급하고, 배우들의 디지털 복제를 허용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AMPTP는 엑스트라의 디지털 복제에 대해 "해당 배우가 고용된 프로젝트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외의 사용에는 본인의 허락과 최소한의 사용료가 필요하다는 규정을 제안하고 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포브스는 2007년 작가 조합 파업 결과 21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이번 동반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3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LA 경제가 영화·TV 프로그램 제작에 따른 고용과 소비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으로, 영화·프로그램이 창출하는 고용 효과는 TV배우와 감독 외에도 무대 제작자, 요리사, 회계사,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300명에 달한다.
SAG-AFTRA 재단은 배우들의 긴급 지원 신청이 30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히며 파업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단역 배우들을 위한 긴급 재정 지원 프로그램을 위해, 할리우드 최고 연봉을 받는 배우들로부터 15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여기에는 메릴 스트립, 오프라 윈프리,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휴 잭맨, 드웨인 존슨, 니콜 키드먼이 재단에 100만 달러 이상 기부했다.
메릴 스트립은 "웨이터, 청소부, 타이피스트로 일하던 시절, 심지어 실업수당 대기줄에 섰던 시간까지 기억난다. 이번 파업 투쟁에서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분들을 응원할 수 있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직업에서 인간성과 인간적 존엄성, 심지어 우리 직업에서 인간을 빼내기 위해 혈안이 된 저 막강한 기업들에 맞서 함께 굳건히 설 것이다"라고 이번 파업에 지지와 연대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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