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가 되는 법' 김범의 변화무쌍한 변신술 #요즘전시
리움미술관이 올봄 성황리에 개최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君子志向》전이 막 내린 블랙박스와 그라운드갤러리 공간에서 김범의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을 선보인다. 어느덧 중견작가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의 최대 규모 단독 전시이자 국내에서 1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을 아우르는 총 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그간 만나볼 기회가 귀했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작가의 지난 30여년간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1963년생인 작가는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미술계에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보이는 것’과 ‘실체’ 간의 간극이 빚어낸 인지적 간격에 대한 탐구를 이어 나가며 한국 동시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관습을 비트는 해학과 재치, 절묘한 유머 감각, 농담처럼 툭 던진 이미지 뒤로는 의미심장한 풍자를 섞어 ‘바위가 되는 법’ 너머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법을 제안한다.
2010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을 통해 김범 작가의 작품세계를 처음 접했다.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는 법을 연마하다가 이내 읽다 말다 곱씹어 다시 보기를 반복하느라 모퉁이가 꽤나 헤진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가 떠올랐다.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거나 들여다보았을 존 버거의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의 대장정은 이 같은 두 문장과 함께 시작한다.
동명의 BBC TV 강연 시리즈(1972)를 바탕으로 지어진 책에서 존 버거는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법이라 알려진 기존 방식의 편협함을 지적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보기를 권유한다. 출간된 지 50년 가까이 되었지만, 명쾌한 통찰력은 오늘까지 수많은 미술애호가에게 길라잡이가 되어주었다. 보는 행위는 즉각적이면서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하지만 자라는 어린이는 차차 어른이 되고, 배움으로 얻은 앎과 지식, 사회를 살아가며 무심코 쌓아온 편견과 선입견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에 이른다. 노을 녘, 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실제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임을 아는 것이다.
김범 작가의 정수를 고루 담은 이번 개인전의 이름은 1996년 펴낸 아티스트 북 〈변신술〉의 4장의 제목(4. 바위가 되는 법)에서 따왔다. 생명체가 변화하여 본래의 모습과 다른 그 무언가 된다는 것이 그 생명체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일이라 여기는 작가가 나무, 문, 풀, 바위, 냇물, 사다리, 표범, 에어컨이 되는 법을 차례로 알려주는 지침서이다. 예술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인식 전환에 있어, 〈변신술〉은 개인적으로도 큰 자극을 주었다.
오랫동안 은둔하며 조용히 작업을 전개하던 김범 작가는 왜 우리에게 바위가 되는 법을 제안했을까. 더위가 한풀 꺾여 이런저런 생각을 키우고 가꾸기 좋은 초가을, 리움미술관을 찾아,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재치, 우아함으로 주의 깊게 관찰하고 천천히 보면서 “변화를 향한 기구한 노력과 과감한 결단”을 거름 삼아 진정한 ‘내가 되는 법’을 고찰해보면 어떨까.
장소리움미술관
일시 2023. 7. 27 - 2023. 12. 3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