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자력 사고 '금지구역'을 드나드는 사람들

조영준 2023. 8. 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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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84] 다큐멘터리 <체르노빌 : 지옥의 묵시록>

[조영준 기자]

 
 다큐멘터리 <체르노빌 : 지옥의 묵시록> 스틸컷
ⓒ EBS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발전소의 원자로 4호기에서 비정상적인 핵반응이 일어나면서 열이 냉각수를 열분해 시키고, 그로 인해 발생한 수소가 원자로 내부에서 폭발함으로써 일어난 참사였다. 폭발은 원자로 4호기의 천장을 파괴했고, 핵반응으로 생성된 다량의 방사선 물질은 외부로 누출되었다. 지금 우리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고 부르고 있는 사건이다. 당시 누출된 물질에 의한 방사능의 총량은 5.3 엑사베크렐로 추정되며,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에 의해 분류된 사고 등급 가운데 가장 심각한 등급인 7등급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계 브라질 출생인 이아라 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체르노빌 : 지옥의 묵시록>은 거의 최초로 인류에게 핵발전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체르노빌 참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자료와 푸티지를 통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보여줌과 동시에 37년이 지난 지금 그곳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를 그려낸다. 이 지역의 금지 구역을 불법으로 드나드는 '스토커'라는 이들의 존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 작품이 가진 특별한 점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체르노빌 인근을 관광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모습과 더불어 안전을 경시하는 현세대의 어리석은 태도가 강조된다.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의 시선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사고의 흔적과 그 참사의 경고를 잊어버린 듯한 지금을 향하고 있다.

02.
"시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서 유해한 방사능이 유출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서 모든 시민에 대한 임시대피가 불가피합니다."

체르노빌에서 2.5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 프리피야트는 발전소를 위해 만들어진 계획도시다. 이 도시가 세워질 때 정부는 자연과 기술이 함께 공존하는 유토피아와도 같은 모습으로 홍보했고, 이주해 온 시민들은 모두 그런 도시에 자부심을 느꼈다. 핵발전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들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이렇게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해 본 일도 없었다. 그저 화석연료보다 더 좋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곳, 그 에너지를 통해 국가의 기간산업과 모두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다고만 믿었을 뿐이다.

사고 직후, 프리피야트를 포함해 발전소 인근 30km 근방의 모든 주민을 대피시키고 온 도시를 2시간 만에 급박하게 비울 때에도 이렇게 위급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가는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정보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주민들에게도 약간의 필수품과 3일 정도의 식료품만 챙겨 도시를 떠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의 대피가 평생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사고는 예정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발전소의 설계 자체에서부터 결함이 존재했다는 것이 추후 조사에 의해 드러났고, 원자로 외부에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방사능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격납장치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사고 직전까지 이어진 기술적인 문제로 인한 긴급 정지 또한 71회로 적지 않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이러한 결함과 사고를 감추고 체르노빌 발전소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로 홍보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무엇보다 막대한 양의 핵폐기물을 해결할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체르노빌 : 지옥의 묵시록> 스틸컷
ⓒ EBS
03.
문제는 지금 세대가 이곳 체르노빌 지역을 그저 투어 장소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방문 금지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이 여행 허가 구역으로 전환된 이후 하루에 400명에서 많게는 1000명까지도 이 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체르노빌 관련 당국에게는 이 일이 괜찮은 수익 사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곳을 관리하고 제한하는 일을 하는 직원들의 월급 역시 관광 산업의 수익으로 채워진다. 한편, 방문객들에게는 일반적인 도시나 자연이 아닌 위험한 환경을 찾는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물론 현재 관광객들이 찾는 지역의 방사능 수치는 30여년 전에 측정된 것보다 천 배는 적은 수치에 해당된다. 허가된 그룹마다 방사능 측정기를 소지한 가이드가 있어서 특정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그 수치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곤 하는데, 보통의 경우에는 일반 도시에서 2-3일 동안 측정한 양을 합한 정도거나 비행기를 타고 2시간 정도 비행했을 때 일반인이 노출되는 양과 거의 비슷한 정도다. 이를 근거로 이 지역이 (접근 금지 구역을 제외한 허가 지역에 한해서) 이제 안전하다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위험하다는 이들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곳이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원자 입자들은 크기가 모두 다르고 이동 속도도 제각각이기에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각 지역의 상황이 지금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방사능을 이유로 오랜 시간 방치된 숲지대와 초원지대 등지에서 늑대 무리나 큰 야생 동물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위험도 상존한다. 이들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시간 동안 이 지역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생각하며 생존해 왔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을 침입자로 인식하여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방문객들의 호기심과 무분별한 훼손도 문제가 된다. 이곳에 남아 있는 물건들은 모두 사고의 역사이자 유물에 해당하고 이 장소를 기억하게 하는 요소들인데, 방문객들에 의해 망가지고 오염되면서 어떤 지역은 너무 많이 변해버리기도 했다.

04.
체르노빌 지역을 관광 산업으로 이용하고 있는 관련 당국조차 일부 지역을 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역시, 아직까지 이곳이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방사능의 존재 여부와 농도 수준은 지금까지도 측정기를 켜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는 알 수가 없다. 느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지금 당장 괜찮다고 하더라도 10년 후에 암에 걸릴지 어떨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매우 확정적인 정보이며, 그간의 많은 피해자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버려진 건물이나 접근이 금지된 장소를 탐험하려는 이들은 존재한다. 스토커(불법 방문자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정해진 규정까지 어기면서 여전히 고농도의 방사능이 측정되고 있는 제한구역까지 들어간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맹목적으로 믿는 모습까지 보이는데, 가령 방사능이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맹신하는 식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대담한 사람이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자 하거나 과거 소련의 정책이나 기술 수준과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고 파헤치기 위해 이런 위험한 행동을 한다. 스토커들은 자유를 억압받지 않기 위해 이런 행위를 하고 있으며 벌써 하나의 하위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들 중 대다수는 그들의 부모가 사고 수습자였던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체르노빌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30만 명이 넘는 작업자가 투입되었다. 처음에는 특수 로봇을 투입해 방사능 폐기물을 청소했으나 일을 모두 마치기도 전에 높은 방사능 수치 때문에 이들 로봇에 고장이 발생했고, 그 자리를 사람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오염 제거에 나선 이들을 '바이오 로봇'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사고가 일어난 봉인 시설 꼭대기로 뛰어올라가 오염된 흙을 서너 삽 퍼내고 다시 도망쳐 나오는 식으로 작업이 이어졌다고 한다. 방사능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방호복조차 주어지지 않은 환경에서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당시의 수습 노동자들은 방사능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고 투입되었고, 그저 돈을 많이 주는 일이었기에 그 일을 했다고 말한다. 지금, 위험지역으로 향하는 '스토커'들의 목적에 단순히 스릴과 자유만이 놓여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괜한 기분일까.
 
 다큐멘터리 <체르노빌 : 지옥의 묵시록> 스틸컷
ⓒ EBS
05.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없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이 영화가 바라보는 체르노빌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은 관조적이지만 결코 모호하지는 않다. 분명 이 지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습에 대한 것이고, 이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과거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고 당시 프리피야트 부시장을 역임했던 알렉산드르는 금지구역에 불법으로 들어가는 이들에 대해서만 반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국가적으로 이 지역을 관광 산업화 하는 움직임 역시 옳은 방식인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남는다.

사고의 크기와 지나온 시간의 길이에 비하면 결코 길지 않은 러닝타임이지만 이 작품 속에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지옥과도 같은 공간의 아픔과 슬픔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5년이 걸렸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던 이 발전소의 거대한 비극은 언제쯤 완전히 정화될 수 있을까. 인간의 욕심과 상처가 공존하는 한, 그 일은 아직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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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작품은 2021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된 바 있는 작품입니다. 현재 EBS 다큐멘터리 전용 플랫폼인 D-Box를 통해 유료로 관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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