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인 나는 '바비'의 성공이 기쁘지 않다 [양민영의 한 솔로]
[양민영 기자]
▲ 영화 <바비> 스틸 이미지. |
ⓒ 워너 브러더스 |
바비가 주인공인 페미니즘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미용실 밈이 떠올랐다. 일종의 라이벌 관계인 두 여성 중 누가 더 아름다운지 겨루는 싸움이 벌어지고 그 싸움에서 이기고자 연대하는 걸 여성의 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비가 주인공인 페미니즘 영화도 마찬가지다.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모순형용이 아닐 수 없다.
바비는 1959년에 탄생한 이후 줄곧 페미니즘에 반하는 존재였다. 흠 없이 아름다운 마론 인형 하나가 여성 청소년들의 신체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작가 애너 퀸들렌이 1994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 따르면 바비의 신체 치수를 사람의 몸으로 환산했을 때 가슴둘레 101㎝(39.7인치), 허리둘레 45㎝(17.7인치), 엉덩이둘레는 80㎝(31.4인치)다.
이를 바탕으로 진행한 애리조나대학 연구 결과를 보면 10대 백인 소녀의 90%가 자기 체형에 불만을 갖는다. 이들이 완벽하다고 여기는 이상적인 몸은 키 170㎝, 체중 45㎏의 긴 머리 여성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의 모든 여자 아이가 바비처럼 되기를 꿈꾼다. 이런 바비가 어떻게 페미니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그 무렵 <바비>가 성인의 지갑을 털기 위해 대충 만들어 낸 영화가 아니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히려 배우 마고 로비가 주연을 맡으며 제작에도 참여했고 할리우드에서 여성 서사를 가장 잘 쓴다고 인정받는 그레타 거윅이 연출한, 야심 가득한 프로젝트였다.
기대와 의문을 갖고 상영관을 찾은 날은 무더위가 절정이었다. 냉방이 과했는지 텅 빈 상영관이 한층 더 썰렁하게 느껴졌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영화 <바비>의 흥행이 저조하다는 보도를 체감했다. 양팔을 감싼 채 밖으로 나오면서 마냥 좋아할 수 없는 '바비'를 몇 번이나 곱씹었다.
바비가 페미니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건, 아름다움을 제외하면 어떤 적대감도 없이 여성을 하나로 연결시킬 이슈가 없어서였다. 모든 여성의 삶에는 어릴 때 공주가 되고 싶던 기억, 탁월하게 아름다운 여성을 선망한 기억, 조금이라도 더 마르고 싶던 기억이 녹아 있다.
이는 남성들이 빈번하게 느끼는 남성 집단을 향한 프라이드나 연대 의식에 비하면 여러모로 불충분하고 궁극적으로는 해롭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연대해 여성의 성을 찬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인 건 분명하다. 또 비슷한 이유로 여성에게 완벽한 꾸밈과 끊임없는 소비를 권장하는 <보그> <엘르> 등의 패션 매거진이 페미니즘 대중화에 앞장설 수 있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실패했지만 바비라는 아이콘은 지금도 건재하다. 영화의 성공으로 그레타 거윅은 여성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10억 달러 클럽에 가입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어떤 페미니스트 관객은 <바비>의 성공을 마냥 기뻐할 수 없다. 그동안 여성 인권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바비는 진즉에 사라지고 새로운 아이콘이 그 자리를 차지했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 지난 7월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바비>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마고 로비가 퇴장하며 인사하고 있다. |
ⓒ 이정민 |
바비가 주인공인 바비랜드에서도 켄은 무엇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능력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켄이 좌절하는 유일한 대목은 바비에게 사랑받지 못하다는 것뿐이다. 그는 현실 세계의 여성처럼 부당하게 차별당거나 핍박받지 않는다. 반면에 바비랜드의 주류인 바비는 그토록 완벽한 외모에 뛰어난 사회성과 능력까지 겸비하고도 끊임없이 무엇이 되어야 한다(바비는 패션모델로 데뷔해서 의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우주인으로 전직을 거듭했다).
지난 세기 동안 여성은 열등하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깨달았다, 여성이 열등하다는 편견 때문에 차별당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또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가졌고 일부는 남성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런데도 여성이 차별당하고 착취와 폭력의 타깃이 되는 건 순전히 여성이라는 성 때문이다. 이는 여성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알고 있는 진실이다.
잠깐 동안 진실이 위안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곧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만약 여성이 열등한 탓에 차별당한다면 우리가 처한 비참한 현실을 설명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반대의 진실이 밝혀지고도 여성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는 거대한 부조리로부터 탈출할 방법이 우리 여성들에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행히 그레타 거윅은 방법을 제시했다. 여성 집단의 연대가 여성 개개인의 능력 향상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페미니스트 바비들은 가부장제에 세뇌된 바비를 켄과 분리시키고 그들을 각성시켜 깨어나게 한다. 그리고 켄을 분열하게 만들어 전쟁을 유도한다.
그런데 이 힘겨운 투쟁의 종착지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다. 게다가 가부장제를 퍼트리고 바비랜드의 헌법 질서를 어지럽힌 켄은 끝내 처벌받지 않는다. 도리어 켄은 바비의 도움으로 자아를 얻고 새로 태어난다. 이로써 여성은 잘못을 용서하는 존재, 또 남성에게 입은 피해를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다.
할 수 없이 바비가 인형에서 인간이 되기를 선택한 결말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그동안 세상의 기준에 맞추고자, 능력을 증명하고자 행했던 노력과 시도, 그 숱한 실패를 부끄러워 말자는 메시지에 위로받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결국 누구를 위한 페미니즘도 아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바비'의 한계는 가볍고 무해한 밈이 되어 현실에 스며든다. '바비'와 콜라보한 100여 개의 기업이 내놓은 상품이 세상을 온통 핑크로 물들였다. 또 완전히 죽은 줄 알았던 바비코어룩(선명한 핑크 컬러에 1980년대의 레트로하고 페미닌한 스타일)이 부활했고 셀카를 올리면 바비의 얼굴로 바꿔주는 필터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쯤에서 알고 싶다. 돌아온 바비가 세상을 점령한 동안 정작 '바비'의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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