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보기 전 이것만 공부하세요
[서부원 기자]
광복절과 겹친 탓일까. 이른 아침 시간이었는데도 영화관은 스크린 바로 앞줄만 제외하곤 만원이었다. 개봉 당일 관객 수로는 역대 최고라는 55만 명을 찍었다는 후문이다. 영화 <오펜하이머> 이야기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다.
명불허전, 러닝타임 3시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기 싫었던지 도중 화장실을 드나드는 관객도 거의 없었다. 순간을 놓치면 앞뒤 맥락이 끊길까 우려한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들의 대사가 죄다 녹음하고 싶을 만큼 주옥같았다.
압권은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운 원자탄 실험의 폭발 장면이다. 터져 나오는 거친 불길에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현장감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니, 감독의 열정과 역량에 탄복할 따름이다.
▲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이미지. |
ⓒ 유니버설 픽쳐스 |
기실 줄거리는 식상하게 느껴질 만큼 단순하다. 원자탄을 만든 천재 물리학자의 인간적 고뇌와 전쟁의 승리조차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영화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작품이기에 아인슈타인이나 존. F. 케네디와 같은 실존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오펜하이머의 고뇌는 엄청난 인명 살상을 저지른 가해자라는 죄의식에 기인한다. 트루먼 대통령 앞에서 '자기 손에서 피 냄새가 난다'며 수소폭탄 개발 요구를 거절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원자탄 투하 명령을 내린 미국 대통령을 학살자로 낙인찍는 고백이어서다.
하지만 영화에선 원폭으로 인한 피해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원자탄이 투하된 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폐허를 보여줄 법도 하건만, 배우들의 담담한 대사로 대신하고 있다. CG 등 영상 기술이 모자라서일 리 없고, 외려 의도적으로 회피한 듯하다.
이 영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국가는 누가 뭐래도 일본일 것 같다.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원폭 피해를 경험한 나라 아닌가. 1945년 8월 15일을 '패전일'로 부르지 못하고 '종전일'로 규정하는 그들에게 원폭은 굳이 들추고 싶지 않은 아픈 과거다.
듣자니까, 일본에서는 아직 개봉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황폐화한 모습을 묘사하지 않았다"거나 "과학자의 고뇌를 그리는 데 중점을 둔 탓에 원폭의 위험을 환기하는 걸 간과했다"는 일본 내 언론의 평가가 이어졌다.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본의 그러한 반응이 새삼스럽진 않다. 미국의 시각에서 제작된 영화다 보니, 자칫 '패전'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데다 원폭을 서둘러 결정할 만큼 제국주의 시절의 패악이 극심하다고 여겨질 우려가 크다. 감독은 한사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관객들은 이구동성 '다큐멘터리보다 더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트루먼 정부의 장관이었던 스팀슨이 원자탄을 투하할 일본의 도시들을 선정하는 장면도 일본인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줄 듯하다. '아내와 신혼여행을 갔던 도시여서 교토는 제외한다'는 대사가 귀에 거슬릴 테다. 그는 1920년대 이후 다섯 명의 대통령을 보좌한, 명실공히 '미국 제일주의자'다.
우리에게도 적이 부담스러운 대목이 있다. 물론, 상업 영화로서 배급사가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한 전략이었을 테지만, 개봉일이 하필 광복절이어서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곧,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미국의 원폭 덕분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는 점이다.
나아가 두 차례의 원폭이 식민지 조선을 위한 미국의 결단인 양 거짓 포장될 우려도 없지 않다. 실제로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유를 말해보라고 하면, 기성세대는 물론, 아이들조차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원폭을 들먹인다. 원폭이 없었다면 해방은 요원했을 거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도시 이름을 모르는 이도 없다. 두 도시가 지닌 다른 수많은 특징에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당장 원폭을 떠올린다. 36년 동안 우리에게 저지른 일제의 만행에 대한 미국의 일벌백계 응징이라고 여기며, 일부에선 통쾌하다는 느낌마저 숨기지 않는다.
미국은 그렇게 우리에게 은인의 나라가 됐다. 5년 뒤 6.25 전쟁까지 겪으면서 '영원한 우방'으로서 미국에 대한 신뢰와 권위는 더욱 굳건해졌다. 누구든 '아메리칸드림'을 꿈꿨고, 미국에 대한 비판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랬다간 '빨갱이'로 내몰려 치도곤당하기 일쑤였다.
미소 냉전이 지속되고 분단이 고착화하면서 미국의 위세는 날로 커져만 갔다. 우리에게 미국은 늘 '민주주의의 종주국' 그 이상이었다. 순식간에 수만 명을 살상한 원폭조차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한 합당하고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며, 우리가 앞서 미국을 두둔하기 바빴다.
그러나 그것은 '짝사랑'이었다. 영화에서도 누누이 강조되듯, 원폭은 첨예한 미소 갈등 속에 소련의 영향력을 억누르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었을 뿐, 우리의 해방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 분할 점령을 위해 38도 선을 긋자고 먼저 제안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분단될지언정 한반도를 소련의 영향권 내에 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 영화 <오펜하이머> 관련 이미지. |
ⓒ 유니버설 픽쳐스 |
요컨대,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 해방 전후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가면 좋겠다. 만약 해방이 원폭 덕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인식을 지니고 간다면, 장면 속 펄럭이는 성조기에 가슴 뭉클한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인에 빙의되어 천재 물리학자의 인간적 고뇌에 공감하며 가슴 조일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미국의 원폭이 없었어도 일제의 패망은 시간문제였고, 김구가 이끌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이 일제를 향해 선전포고하고 일전을 앞둔 상태였다. 일명 '독수리 작전'으로 불린 국내 진공 작전의 예정일은 1945년 8월 20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원폭은 우리에게서 참전국의 지위를 빼앗아간 셈이 됐다.
그뿐 아니었다. 8월 11일 일제가 항복할 것이라는 소식에 중국 옌안에 있던 조선독립동맹의 주석 김두봉은 휘하의 조선의용군에게 국내 진격을 명령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조선 건국동맹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와 청년, 민중들이 일제에 맞서 해방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다.
되레 갑작스러운 원폭으로 일제의 패망이 예상보다 빨라져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이 물 건너갔다. 나아가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도모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게 숨통을 틔워준 꼴이 되고 말았다. 미국도 소련도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는 별 관심이 없었음을 방증한다.
마치 실과 바늘처럼 원폭과 해방을 한데 묶어 강조할수록 선조들의 치열했던 독립운동의 핏빛 역사가 왜소해지고 만다. 몇몇 철부지 아이들은 원자탄 두 방으로 끝낼 일에 그토록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독립운동사에 '가성비'를 들이대는 강퍅한 현실이다.
감독의 말마따나, 영화 <오펜하이머>는 천재 물리학자의 파란만장한 생애에 대한 감독의 해석일 뿐이다. 과학적 발견으로 야기된 도덕적 문제에 천착하다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됐던 그에게 보낸 거장의 헌사다. 기우겠지만, 세계적 극찬을 받는 영화에 몰입되어 원폭이 미화되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항일투쟁의 역사가 별것 아닌 걸로 치부될까 솔직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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