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영어로만 작성하도록 한 난민인정신청서는 위헌"
[윤성효 기자]
▲ 난민인정신청서. 붉은선 테두리 안에 보면 신청자는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와 영어로 작성해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
ⓒ 윤성효 |
헌법재판소(아래 헌재)가 난민법 시행규칙에 따라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와 영어로만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 '난민인정신청서'에 대한 차별·평등권 침해 여부를 심판하고 있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얀마 출신 A씨가 박미혜·김형일·임수진·장철순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해 지난 5월 헌재에 냈던 헌법소원심판청구에 대해, 최근 헌재는 해당 사건을 제3지정재판부(재판장 정정미·이종석·문형배 재판관)에 배정하고 심판 회부했다.
2015년 5월 입국했던 A씨는 한국 정부로부터 E-9 비자를 받아 체류해 왔다. 이후 그는 미등록 상태로 체류하고 있다가 올해 2월 불법체류자로 단속되어 창원출입국사무소에 보호되었다. 단속하는 과정에서 A씨는 휴대전화기를 출입국사무소 공무원들한테 압수당하기도 했다.
그는 출입국사무소 보호 중이던 지난 3월 난민인정 신청을 했고, 이후 출국명령을 받아 석방되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난민인정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올해 2월 법무부령으로 개정된 '난민법 시행규칙'의 별지 제1호 서식 가운데 "모국어로 난민인정신청서를 작성한 경우 (신청자 스스로) 한국어와 영어로 번역하여 제출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모국어인 미얀마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작성해 접수했다.
이에 A씨와 변호인들은 한국어·영어로만 작성하도록 한 난민인정신청서와 단속 과정에서 휴대전화기를 압수 당한 행위에 대해 차별이고, 신체자유·평등권 등 기본권 침해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들은 심판청구를 통해 "휴대전화 압수와 규칙은 신체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였다"며 "현재 A씨의 기본권 침해행위는 종료되었으나 동일한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것임은 자명하며, 반드시 헌법적 해명이 필요한 사항이므로 기본권 침해의 현재성이 인정된다"고 전했다.
'보충성'과 관련해서도 이들은 "휴대전화 압수는 권력적 사실행위로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그 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종료된 행위로서 소송의 이익이 부정될 가능성이 많아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는 외에 달리 효과적인 구제방법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보충성의 원칙에 대한 예외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했다.
'규칙의 위헌성'에 대해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자와 영어 이외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자를 구분하여 후자에게만 모국어로 난민인정신청서를 작성하는 경우, 영어 또는 한국어 번역본을 난민인정신청서와 함께 제출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여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차별대우는 단순히 난민인정신청서를 접수하는 행정기관이 영어 이외의 언어에 대한 번역의무를 난민인정신청인에게 전가하여 행정업무의 편의성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는 차별대우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 헌법재판소. |
ⓒ 권우성 |
변호인단은 휴대전화 압수와 관련해 "출입국사무소 소속 공무원에게 체포된 상태였으므로,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며 "공무원들이 체포 이후 휴대전화 사용을 시도하지 않은 청구인으로 부터 휴대전화를 압수한 행위는 이미 체포된 청구인에게 압수를 통한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것 이외에 어떠한 공익적 목적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또 "공무원들에게 체포된 상태였으므로 청구인에게 출입국관리소 도착시까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거나 변호인의 조력을 요청하는 목적 이외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청구인의 기본권을 보다 적게 침해하는 수단이 있음에도 체포와 동시에 휴대전화를 압수한 행위는 침해의 최소성에도 위반된다"고 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을 창원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서 출입국관리소장으로 정정하고, 변호인한테 난민인정신청서 사본과 접수증 사본, 출국명령서, 휴대전화 압수 경위 등 추가 소명을 요구하는 보정서를 냈다.
이철승 경남이주민센터 대표는 "한국정부가 난민협약에 가입해 있음에도 지금까지 보면 난민 인정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사회 평균에도 한참이나 모자라고 인색하다"라며 "그 근본 이유가 신청 단계부터 굉장히 하기가 힘들도록 해놓은 절차들이 문제였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이주민 인권단체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어 왔는데,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라며 "헌재에서 본안 심판에 회부되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만약 이번에 위헌 판결이 나온다면 우리나라의 난민과 관련된 새로운 사회환경 변화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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