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할이라는 패러다임에 던지는 한 방

변성현 2023. 8. 1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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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 에서 패러다임 개념을 주창하며 과학이 객관적 결론을 낸다는 환상을 깨트렸다.

과학적 방법론 자체는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과학자들도 사람이라 한 시대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패러다임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자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러한 법칙을 반증하는 현상들을 무시해왔고, 애초에 수컷에 연구가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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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루시 쿡 지음 <암컷들>

[변성현 기자]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 개념을 주창하며 과학이 객관적 결론을 낸다는 환상을 깨트렸다. 과학적 방법론 자체는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과학자들도 사람이라 한 시대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패러다임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상식처럼 통용되는 이 사실이 생물학에도 적용 된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문명의 시작만큼이나 오래된 성역할에 대한 편견이 그 패러다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그 당연한 것을 못 보고 있었다.
 
 암컷들 -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 루시 쿡(지은이), 조은영(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
 
책 표지가 아주 잘 보여주듯 <암컷들> 진화생물학계의 오래된 편견을 전복시키려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으로부터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성에 적극적이고 군림하는 수컷, 성에 소극적이고 지배당하는 암컷이라는 그 편견 말이다.

수컷 고유의 특성이 암컷과 자원을 통제하고, 투쟁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는 본성이라는 신화는 다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도킨스가 난자와 정자의 크기 차이가 이미 기다리는 암컷과 능동적인 수컷의 정체성을 정하였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과학자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러한 법칙을 반증하는 현상들을 무시해왔고, 애초에 수컷에 연구가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여성 연구자들이 현장을 뛰어다니며 전통적 성관념을 전복시키는 다양한 생물의 암컷들을 연구했다. 그 결과들은 또다시 과학계에서 박해당하다 증거의 누적으로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사실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수컷과 구별되지 않는 생식기를 가지는가 하면, 수컷을 선택하고,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고, 수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무리를 이끌고, 경쟁자를 잔혹히 처단하는 암컷들. 더 나아가 동성 배우자와 평생을 보내고, 수컷 없이 번식을 하는 사례들, 거기에 수시로 성별이 바뀌는 어류들까지. 자연은 인간의 편견에 손 들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과학계는 지배하는 수컷 패러다임의 예외사항이 동물계에서 발견되면 마치 인간남성의 존엄성이 공격 당하는 것마냥 거부 반응을 일으켜왔다는 것이 코미디다. 자연은, 진화는, 편견없이 진행된다. 암컷, 수컷을 구분하지않고 생존에 유리한 방향을 찾아 나아간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종종 연구결과가 말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건 순수하게 자기가 믿고 있는 대로 자연이 움직일 것이라는 큰 오만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내용 자체로도 아주 재밌는 책이면서 동시에 패러다임을 돌파하기위해 싸워온 멋진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까지도 덤으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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