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키지 않는 미국 정부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김선흥 2023. 8. 1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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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조선 여인에 대한 이야기

[김선흥 기자]

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1885년 봄 모든 것이 깜깜절벽처럼 암담한 가운데 가장 큰 낙과 위로는 개인적으로 조선인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날 좋아하고 나 또한 그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공무에 있어서는 외교부서 관리들과 일하면서 항상 곤란을 겪지요.

조선 관가에는 일본으로 도망간 푸트 공사에 대해 깊은 불신과 의심이 퍼져 있습니다. 반역자들과 푸트 공사가 공모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조선의 외교 부서가 미국 정부에 깊은 원망심을 품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나는 그들의 불신과 원망을 누그러뜨리려 애를 썼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고 자평합니다.

혁명에 실패한 진보파들의 뜻을 냉소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외교관으로서 주재국의 어떤 정파에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입니다. 그런 나의 사고 방식과 입장을 조선 정부가 어느 정도 믿어주는 것 같더군요. 

당시 조선 땅에서 겪었던 기이하고도 희한한 일들을 다 늘어놓는다면 천일야화로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한 해 전 내가 이 땅에 발을 들인 이래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늘 듣는 말이 있습니다.

"복구福久 나으리! 왜 여자를 얻지 않는 거요. 처를 얻기 싫다면 첩을 얻으면 될 게 아니오. 심사가 울적하고 몸이 안 좋은 것은 모두 여자가 없기 때문이오. 오직 그 때문이라오. 위대한 아메리카의 대통령(Dai tonyo or Tae-ton-yung)의 말씀에 의하면, 나으리는 우리를 돕기 위해 만리 길을 건너 왔소. 조선 땅의 음식이 맞지 않을 터이므로 아내를 데려올 수는 없을 것이오. 우리를 위해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나으리에게 우리로서는 조선 배필을 맺어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중매를 설 사람을 한 명 지정하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는 백 번도 더 들었습니다. 지방 여행 중에는 현지 관리들이 밤에 여자를 들여주려고도 했습니다. 불원천리 여기까지 오셨는데 쓸쓸히 지내도록 할 수는 없다면서.

어느 날 어떤 곳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지요. 아리따운 두 여성이 방에 들어왔는데 늘 그렇듯이 내 모습을 보자마자 기겁을 하는 거였어요. 그도 그럴 것이 남자가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것도 해괴한데 또 그 머리 색깔이 주황색깔이라니.

그럴 때면 내가 인간 족속임을 믿게 해 주려고 애를 써야했소. 친지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손거울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또한 웃으며 한국말로 수작을 하였지요. 그러면 그네들은 가까스로 안심을 합니다.
  
두 여성은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 둘 중에 한 명은 특히 예뻤습니다. 분위가가 무르익어 가는데 그녀가 불현듯 손을 뒤로 뻗치더니 놋쇠 요강을 끌어당기지 않겠어요? 지체가 있는 여성이나 관리들이 출타할 때 하인들이 들고 가는 그런 요강이었습니다.

나로부터 불과 1미터 앞에 앉은 그녀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요강을 옷 아래로 끌어넣더군요. 이내 요강 울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그 소리를 들으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거였어요. 오, 맙소사. 나는 정말 놀랐습니다. 그녀는 나의 표정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곧 방을 떠났습니다. 나는 조선 여인과는 연분을 맺지 못햇습니다.  

이제 이야기 머리를 돌려야겠습니다. 제물포에 입항한 미국 군함 트렌턴호는 달포가 넘도록 내게 보고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군함이 외국에 입항하면 공사관에 신고하는 것이 관행이고 의무인데 Phythian 함장은 내 계급이 낮다고 여겨 임무를 방기하고 있는 게지요.

보호할 의무가 있는 공사관과 아무런 소통을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는 또 잔꾀를 부립니다. 초년병 하나로 하여금 내게 사신을 쓰도록 한 것입니다. 젊은 친구가 자신의 이름으로 내게 보내온 서한에 의하면, 함장이 자기더러 내게 편지를 보내 조선의 정보를 요청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함장이 해군 제독에게 조선 상황에 대한 보고를 하겠다면서 내게 정보를 요청애 온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내게 요청하지 않고 초년병의 사신을 통해서 말입니다. 내게 보고는 하지 않으면서 나의 봉사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대신 제독에게 직접 보고서를 보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왜 내가 이렇게 직접 보고서를 보내게 되었지를 소명할 겁니다.    

조선은 관존민비의 왕국입니다. 지배층이 하층민을 겁주고 윽박지르고 부리고 쥐어짜면서 지탱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한양의 집안이나 거리는 하인과 하급관리가 상전과 벼슬아치의 위세를 높이기 위해 내지르는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고관이 행차를 하면 한 무더기의 하급자들이 간단없이 악을 써댑니다. "저리 치워라 저리 치워라". 사람이 가까와 지면 날카롭게 외칩니다. "곁으로 서라, 곁으로 서라Keturoh s'ora! Keturoh s'ora!" 또는 "게 앉거라!Ke-an-kura!" 

나는 공사관에서 일인십역을 해야 합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나는 공사관 업무의 세세한 일을 모두 혼자 처리해야 합니다. 열두 명의 하인을 고용하고 있으며 수비병은 15명입니다. 조선식으로 기강이 잘 서 있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예컨대 무슨 일이 있어 공사관의 대문을 열고 싶으면 내가 집사에게 "문 열어라! Mun yorura!"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집사는 크고 높은 목소리로 "문 열어라"라고 외칩니다. 그 소리를 들은 모든 하인들은 동시에 "녜이위이 Nyer-wi"라고 외칩니다.

그 소리는 길고 큰 외침인데 처음엔 낮게 시작해서 높이 올라갔다가 고함소리로 끝납니다. 그러면 문이 열립니다. 이렇게 조선식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발이 모두 조선인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조선이 아니라 미국 정부입니다.

"나는 엄청 황당합니다. 우리 정부가 거듭 약속을 해 놓고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종 임금은 미국이 약속한 고문과 군사 교관 파견을 애처러울 정도로 요청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습니다. 조선으로서는 다른 나라로부타라도 지원을 받아야 할 형편인데도 미국에 묶여 있기 때문에 다른 방도를 낼 수도 없습니다. 저는 이 일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왜냐면 미국 정부의 약속을 제 입으로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가 시련의 원천입니다." - 1885. 6.4일자 편지에서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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